요즘은 퇴근 후 뉴스를 보는 것도 겁이 난다. 뉴스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전원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가는 “나는 당신을 모릅니다. 유관순은 없었습니다”라는 광고에 맞닥뜨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약 40초 분량의 공익광고를 처음 보았을 때는 어안이 벙벙했다. 자막은 한글이요, 내레이션도 우리말인데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송출한 것인 듯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황당한 것은 그 광고를 우리 교육부에서 만들었단다. 현재 중고등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역사교과서에 유관순 열사가 없다는 것. 그러므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자, 그럼 사실조사 들어가 보자. 1남 3녀 중 셋째인 나에게는 일곱명의 조카가 있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5학년, 고등학교 2학년, 대학교 3학년, 대학을 졸업하고 공익근무하는 녀석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니 딱이다. 사실조사는 싱겁게 끝났다. “너 유관순 누나가 누군지 알어?”라고 묻자 유치원생을 빼고는 모두 그런 당연한 질문을 왜 하냐며 웃는다. 우리나라 학생 중 유관순 누나와 이순신 장군을 모르는 사람도 있느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그럼 공익광고는 뭐지?

나의 1차 사실조사가 끝남과 동시에 교육부는 광고를 새로 편집했다. ‘유관순은 2014년까지 8종의 교과서 중 2종은 기술이 안 되었고 2종은 사진 없이 이름 등만 언급되었습니다’라는 자막을 하단에 끼워 넣었다. 그렇다면 2차 사실조사 들어가야 한다. 위 자막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팩트는 맞았다. 하지만 틀렸다. 팩트와 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확인해보니 진실은 이렇다. 초등학교에서는 인물중심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사건 및 시대중심의 역사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즉 초등학교에서는 초등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유관순 누나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가르치는 것이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수준을 높여 3·1 운동과 상해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독립운동을 심도 있게 교육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것이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검정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었다니 더 할 말이 없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것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강력 추진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자기모순적 행태다. 이들은 언젠가부터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절로 부르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명시되어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함을 천명하고 있다. 유관순 열사는 3·1운동의 아이콘이다.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이들이 유관순 열사를 내세워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운운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점입가경인 것은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홍보에 쓴 돈이 25억여원이라는 것. 그것도 예비비를. 정부는 지난 10월 13일 국무회의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예비비 44억원 책정을 심의·의결했다고 한다. 예비비가 무엇인가. 예측할 수 없는 예산지출로 인한 부족을 충당하기 위하여 마련해 두는 돈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가 찬성보다 많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정화가 정답이고 공익이라고 판단했고 무리하게 예비비까지 가져다 광고를 하고 있다. 이쯤 되면 한겨레 21에서 이 상황을 두고 지적한 바와 같이 요즘 젊은 친구들이 흔히 쓰는 신조어 ‘답정너’ 수준이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예비비가 되었든 정식으로 편성한 예산이 되었든 정부가 광고비로 쓰는 돈은 국민이 낸 세금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자료에 의하면 2003년 1352억원 규모였던 정부광고는 2014년 4698억원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내는 광고이므로 엄밀히 말해 광고주는 국민이다. 그렇다면 찬성보다 반대가 더 많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홍보에 25억여 원의 광고비를 지출한 것은 광고주인 국민에 대한 배임행위 아닌가. 대통령께서는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국정화를 관철시키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대통령의 말씀에 혼(魂)이 비(飛)하고 백(魄)이 산(散)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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