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사랑을 다 알까요. 언제쯤 세상을 다 알까요. 얼마나 살아봐야 알까요.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알 수 없는 인생이라 더욱 아름답죠~’ 정말 그랬다. 알 수 없는 인생이었다. 내게도 그런 날이 왔었다. 꿈에도 예측 못한 사건들이 차례차례 내 눈 앞에 펼쳐져 나갔다. 무거운 마음으로 운전을 하며 자유로를 달리던 어느 날 습관처럼 라디오를 켜고 아무 주파수나 돌렸다. 그 때 흘러나오던 가수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 노래 가사가, 그 선율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비에 젖은 종이뭉치를 꾸겨놓은 듯 눅눅하고 복잡한 마음에 마른 바람을 불어주는 것 같았다.

평상시에는 다른 일 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는 클래식 FM을 주로 틀어 놓았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흘러나올 땐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기록을 넘기던 골무 낀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춘 채 ‘살아야겠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속에서 우물거려졌다. 살아있음을 의심조차 할 수 없었고 참으로 태연하게 지내던 그 때 문득 그 말이 그냥 흘러나왔고 한줄기 생기가 도는 듯 했다. 그렇게 나는, 음악으로 위로를 받았다. 음악애호가라기보다는 라디오 애호가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라디오는 내게 꽤 오래 전부터 가까운 사이로 있었다. 부모님은 청소년기가 다 지나가도록 내게 TV 시청을 허하지 않으셨고 말 잘 듣는 맏딸이었던 나는 워크맨 이어폰에 의지해 라디오를 들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의 점심시간은 간밤에 보았던 드라마와 가요 순위 이야기가 주를 이뤘고 나는 그 대화에 낄 수 없는 소외감을 느끼며 다짐했었다. 독립을 하면 꼭 나만의 TV를 사서 밤이 새도록 마음껏 보겠다고 말이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부모님의 집을 떠나 아주 작은 나만의 방을 갖게 되었고 그 방의 크기는 점점 커져 집다운 집이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나의 공간을 적막하지 않게 해 주는 역할은 FM라디오가 맡고 있다. TV를 구입할 경제력은 진작 되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나는 TV를 사지 않았다. 그 시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불만스럽기만 했던 부모님의 교육방침은 결국 나를 형성해 갔고 이젠 내 의지가 되어버렸다.

이른 아침부터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7시 13분에서 14분 사이 날씨 예보가 나온다. 출근 준비를 하며 귀담아 들은 오늘의 낮 기온에 맞춰 그날의 옷차림이 정해진다. 서너 사람 면담을 마친 후 머리가 텅 비어버린 듯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즈음에는 명랑한 디제이가 신나는 음악을 틀어주는 채널이 나를 구원한다. 칼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한 날에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악이 나오는 프로그램과 함께 요리를 할 때도 있다.

친구와 무턱대고 떠난 순천 여행의 여정에도 라디오는 함께였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도로 위에서 보내는 네다섯 시간 동안 할 말이 없어질 때가 있다. 그 때 우리 대신 도란도란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 좋았다. 나는 세상에 있는 줄도 몰랐던 그런 음악들을 알아서 골라서 틀어주니 참 좋았다. 음악이 있어 살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도 없고 식견 부족한 나를 대신해 음악을 들려주는 라디오가 있어 너무 다행이다.

보통은 디제이의 음성보다 음악이 더 많이 나오는 걸 좋아하지만 때론 무심히 청취자들의 사연 소개에 귀 기울일 때도 있다. 주유소에서 일하며 라디오를 듣는 아르바이트생도 있고 택시 운전을 하시는 기사님, 꽃집을 하는 30대 여자, 때론 나이가 아주 많으신 할아버지뻘 되시는 분도 같은 방송을 듣고 계셨다. ‘아휴 힘들어’ 하며 지금 이 순간 내가 제일 피곤한 것 같이 얼굴을 찌푸리다가도 언제나,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 세상에는 정말 많구나 하며 겸손해진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방송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공평한 것도 있구나 싶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처한 상황도 모두 다르지만 어디에서 무얼 하든 같은 음악을 들으며 따로 또 같이 위안을 받는다니 말이다.

한때 와인에 흠뻑 빠졌었다. 동호회에서 알게 된 지인은 오래 전부터의 꿈이었다며 ‘빠빠베르(papaver)’라는 이름의 작은 와인바를 차렸다. 빠빠베르는 프랑스어로 양귀비 꽃을 말한다. 붉은 양귀비의 꽃말은 ‘위안’이란다. 와인은 위안이라고. 그 말이 참 좋았다. “와인은 위안~”을 외치며 열심히 마시고 다녔는데 그 시간을 돌이켜 정산해 보니 모든 사람이 맘 놓고 누릴 수 있는 소박한 위안은 아닌 듯했다. 동호회를 그만 나가면서 와인도 조금 시들해졌다. 술도 약해졌다. 업무를 마치면 총알같이 집으로 달려가 쉬는 게 제일 좋은 요즘 내겐 라디오가 제일 좋은 위안이고 취미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다시 태어난다면, 변호사는 한 번 해 보았으니 라디오 PD가 돼 보고 싶다고 실없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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