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에는 변협신문 편집회의를 한다. 신문 16면에 실을 기사와 투고 원고를 검토하고 편집방향을 정하는 회의다. 홍보과 직원 4명이 취재기자도 없이 신문을 만든다. 예산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매주 신문이 나오니 신통방통하다. 매주 있는 회의가 조금 부담은 되지만 신문을 제작하는 보람도 있고 원고를 고르는 쏠쏠한 재미도 있다. 편집위원으로 남의 글 뽑는 자리에 있어보니 어깨에 쓸데없이 힘이 들어갈 때도 있다. 완장차고 힘쓰는 자리가 이런 맛인가 싶다.

지난 주 저녁 편집회의에 참석했다. 한달에 한번은 간단한 저녁식사를 겸해 회의를 한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차 라디오에서 “야야야~내 나이가 어떠냐?”며 가수는 나이가 오든 말든 기죽지 말고 뭐든 해보라 한다. 약속장소에 가니 홍보과 직원들이 먼저 와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공보이사님이 오셨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편집위원들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공보이사님이 뜬금없이 물었다. “최 변호사님, 요즘 어떠세요? 그래도 변호사가 좋지요?” 변호사가 힘들다는 걸 뻔히 아실텐데 어째서 변호사가 좋냐고 물으셨을까. 어떤 비답을 원하시지? 질문 의도를 간파하기가 어려워 그냥 생각난 대로 대답했다. “네, 좋지요. 친구들은 죄다 명퇴다, 정년퇴직이다 해서 평일에도 청계산 북한산 헤매고 다니는데 강남 한복판 사무실에 매일 출퇴근 하고 가끔 돈도 버니 좋지요.” 정답도 명답도 아닌 답을 했다.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을 시작해 지난 주 이사하려고 방을 얻으려 다녔다. 부동산소개업소를 찾아 서울대 근처 아파트를 계약하게 되었다. 아파트를 소개한 공인중개사가 고향이 같은 대학 1년 선배였다. 소식이 끊어졌다가 20년 만에 만나 서로 놀랐다. 한때 대기업 A 항공회사 부사장 대우로 일했던 선배다. IMF 사태로 회사를 나왔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지만 그 후 보지 못했다. 선배는 시골중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우리나라 최고 명문고교인 K고교에 합격했는데 그때 내가 살던 고향에서는 선배가 명문 K고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라디오에서 고향뉴스(?)로 며칠간 방송됐을 정도였다.

전세계약서를 쓰고 차 한잔 하면서 선배가 말했다. 선배는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나온 후 앞으로 뭐하고 살까 고민하다가 100세 시대엔 자격증 있는 일이 필요할 것 같아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했다고 했다. “사실은 회사 그만두고 중개사를 하려니까 좀 창피하기도 했어.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 인생은 ‘뭐가 될 것인가?’만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뭐가 되는 것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공인중개사 자격증이야.”

‘맞아, 먼 길 떠나는 새들은 힘주고 날아가는 새가 한 마리도 없다고 했지.’

선배와 헤어진 후 집으로 오면서 자문해 보았다. 옛 말에 외길 인생 30년이면 명인이 된다고 했다. 변호사 30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나 역시 ‘뭐가 될까?’에 정신줄 놓고 살아왔다. 시간이 간다고 저절로 ‘사람’이 되는 건 아닌가 보다.

변협신문의 지난 글들을 읽다가 전(前) 공보이사가 쓴 ‘변호사가 사는 법’이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그도 변호사업계 걱정을 하면서 ‘사양산업’인 변호사의 정년은 “변호사 수입으로 품위로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때까지”라고 했다. 정말 그런가? 그 글처럼 수입이 정년을 결정한다면 왠지 내 변호사 자격증이 초라할 것 같았다. 나이 탓인지 가끔 기억이 깜박거릴 때가 있다. 나는 나이 더 들어 추석을 쇠면서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고 깜빡하면 ‘아, 정년이 왔구나’하고 그때쯤 물러날까 한다. 예전에 거지와 변호사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되기는 힘들어도 되기만 하면 그렇게 편하다고. 그런 편한 시절도 있었다. 요즘은 거지도 힘들지만 변호사도 힘들다. 변호사 누구에게도 힘든 시절이지만 스스로 이 어려움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포기한다면 강남 갔다 온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는 행운은 없을 것이다.

주말에 등산을 하다 보면 단숨에 산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긴 능선을 타고 오래 걷는 것이 산의 속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고 산기운을 흠뻑 맛볼 수 있다. 목표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못지않게 소중하다. 의뢰인들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때로는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하며 변호사 일에 회의를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는 아무런 잘못은 없다, 잘못이라면 변호사 일을 통해 내가 이루고, 되려고 했던 것들… 돈, 명예, 부, 높은 자리, 강남 아파트 그게 문제였다. 변호사는 판사 검사 뒤에 있는 병풍이 아니다. ‘정의의 붓으로 인권을 쓰는’ 보람을 맛볼 수도 있고 운 좋으면 영정 사진으로 액자 속에 들어앉아 혼자 빙긋이 미소 짓기 전까지 일을 할 수도 있다.

100세 시대에 이만한 자격증은 없다. 그냥 나 혼자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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