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었더니 / 스승님은 약초를 캐러 가셨어요 / 이 산속에 계신데요. / 구름 깊어 어딘지 알 수 없어요.

당나라 가도(賈島,779~843)의 ‘이 산중에 있으련마는’이라는 시는 은자의 탈속적인 은서(隱棲)생활을 동경하여 읊은 것입니다. 필자도 ‘언제 속세와의 인연에 빗장을 걸고 산중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농옹(農翁)이든 초부(樵夫)이든 어옹(漁翁)이든 정년이 따로 없고 농촌이나 산촌, 어촌에서 천수를 다할 때까지 일합니다. 보통사람들은 정년에 몰리면 퇴직합니다. 자격증을 가진 사(士)부류는 정년이 없습니다. 중학교 동기인 약사는 오늘도 조제하고 약을 팝니다. 희수에 이른 세무사는 지금도 기장료를 챙깁니다. 10여년 전에 실크로드에 갔을 때 만난 대구에서 개업했다는 75세의 소아과의사는 막걸리통을 짊어지고 와서 식사대신 마시면서 관광하는데 지금도 소아과진료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정년이 없으니 명의대여의 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공옹(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노인)에 이른 변호사는 언제 천수를 맞을 것인가 궁금합니다. 환갑이나 진갑이면 일응 노령에 진입하는 기준이며 77세의 희수, 88세의 미수이면 장수(長壽)의 복을 타고 난 것입니다.

며칠 전 고등법원 복도에서 만난 후배 L은 “자연생명이 연장되었는데 80세까지는 해야 되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합니다. 지공의 변호사 중 백발을 휘날리면서 법정에 출입하는 자, 사건이 없어도 문을 닫지 못하고 집에서 수혈을 받아 생명을 연장하는 자, 사건 한건을 선임하면 황금 보듯이 정성을 다하는 자 등 천차만별 군상입니다. 그러나 주위의 친구들은 한두명씩 변호사업계에서 사라집니다. 인천의 탁월한 D변은 황각각막증상이 와서 기록을 볼 수 없어 변호사업을 접었다고 하고, 대학동기 H여사는 손주를 봐주러 미국으로 갔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서럽습니다. 늙음의 징표는 백발과 검버섯, 허리굽음입니다. 백발을 물들여 흑발로 바꾸든가, 성긴 머리에 가발을 덮어 늙음을 감춥니다. 얼굴의 검버섯을 제거하기 위하여 성형외과에 다닙니다. 허리가 굽는 경우는 교정할 수 없습니다. 동양화에 노옹이 지팡이 짚고 동자손에 술병을 들게 하고 산속을 걸어가는 속세를 떠난 모습은 보기에 좋지만 현실에서 허리 굽은 노옹은 변호사로서의 죽음입니다.

백발이 성성한, 얼굴에 검버섯이 핀, 허리굽은 노변호사를 선임할 리 없습니다. 지금도 옛날 당사자는 선임하기 전에 그 연치(年齒)에 사건을 맡아서 처리할 수 있느냐고 지레 걱정입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당사자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열심히 사건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지만 선임단계에서 문제입니다. 자연적으로 선임료는 하향곡선을 긋습니다. 싼 선임료로 연치를 상쇄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공옹에 이른 변호사는 생존을 위하여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는 물, 멎지를 않네. 소리 소리 우짖은들 지는 꽃을 어이하리?

자연에 순응하여 집착이나 고집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늙을 로(老)의 긍적적인 의미는 오래됨, 익숙함, 지혜로움, 슬기로움, 경험이 풍부함 등으로 노실(老實 ; 성실하다, 정직하다), 노붕(老繃 ; 상처가 아물다. 경험을 쌓아 원숙해지다)같은 단어가 있습니다(노년의 풍경, 김미영외 지음, 글항아리 196쪽).

지공옹의 변호사는 많은 사건을 다루어 사건의 맥을 집어내는 슬기로움, 지혜로움은 탁월합니다. 법조 반평생동안 다룬 사건을 부지기수입니다. 여기서 얻은 경험은 날(生) 지식에 미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건강이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중풍 맞은 것처럼 어눌한 발음으로 법정에서 변론하면 당사자는 고개를 돌립니다. 당사자에게 책(責)을 잡히지 않기 위하여 상담시에도 큰소리로 이야기하고 법정에 올라갈 때도 당사자가 따라 오지 못할 만큼 빠른 보폭으로 올라가 당사자를 헐떡이게 만듭니다. 아내는 아침에 당당하게 출근하였다가 저녁에 파김치가 되어서 들어온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자면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은 타고나야 하지만 후천적으로 항상 운동을 해야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헬스클럽에서 달리기와 근력운동을 하고 저녁시간은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모임을 삼갑니다. 주말마다 꼭 골프를 쳐서 걷기운동을 합니다. 스코어는 잊은 지 오랩니다. 오로지 변호사 일을 위하여 올인합니다. 누가 왜 사느냐고 물으면 이태백의 소이부답(所以不答)입니다.

골방에 내팽개쳐진 서러운 신세가 되기보다 스스로 절제된 생활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스스로 즐겁고 당사자에게 법서비스를 하니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닌가. 이제 늙음에 비례하여 사건이 줄어듭니다. 온갖 짓을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늙음을 슬퍼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낙천지명(樂天知命)할 것입니다. 다사로운 그 옛날의 영광을 차마 잊지 못하는 끈질긴 미련은 병들게 합니다. 다 내려놓고 삽니다. 사람이 그칠 때를 알아야 하는데(知止)….

노옹의 변호사는 사건이 떨어질 때 천수(天壽)를 맞는 것이며 변호사로서의 제삿날입니다. 각 노옹의 천수는 각자 자기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오늘도 천수를 연장하기 위하여 갈기를 세우고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한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하여 독하게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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