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5. 7. 16. 선고 2015도2625판결[소위 원세훈 판결]

1. 국가정보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많은 사건으로 점철된 선거였다. 이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국가정보원의 대통령선거 개입이다. 국가정보원이 조직적, 계획적으로 여당 후보인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야당 후보인 문재인 후보를 반대해 온 사실이 적발되었다. 그것도 대통령 선거 1주일 전인 2012년 12월 11일 발각되었다.

국가정보원은 국가최고정보기관이다. 국가정보원의 업무는 국가정보원법에 의하여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법에서 정치관여행위 역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는 금지되고 위반하는 경우 처벌된다. 국가기관으로서 불법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의무는 윤리적 의무를 넘어서 법적인 의무이다. 그리고 국가정보원의 선거기간 정치관여는 국정원의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선거의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위법선거운동이다.

국가정보원의 불법대선개입은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평석 대상 판결은 국가정보원의 불법대선개입에 대한 판결이다. 피고인은 원세훈 국정원장, 이종명 제3차장, 민병주 심리전단장 등이었다. 이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불법대선개입이 정치관여행위를 금지한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했는지와 위법한 선거운동에 해당하여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는지 여부였다.

이에 대한 판단은 심급마다 달랐다. 1심은 국가정보원법 위반은 유죄, 공직선거법 위반은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은 국가정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모두 유죄로 보았다. 대법원은 항소심이 공직선거법 위반의 증거로 본 파일의 증거능력을 부인함으로써 공직선거법 위반이 유죄인 것에 의문을 표하면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2. 쟁점은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 여부
이 사건은 사실관계가 복잡하다. 항소심에서도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일부 무죄를 선고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평석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공직선거법 위반의 주요 증거로 사용된 파일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이다. 본 파일은 국정원 직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전문증거였다. 따라서 작성자의 진정성립 인정이 필요한데 작성자가 이를 부인하여 증거능력 인정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여기에 적용할 수 있는 증거능력 규정은 형사소송법 제315조이다. 이 파일이 형사소송법 제315조 제2호의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에 해당한다고 보면 증거능력이 있게 된다. 그러면 위법한 선거운동의 증거가 되어 공직선거법 위반이 유죄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만일 이 파일이 통상문서가 아니라면 증거로 사용할 수 없어 공직선거법 위반은 1심과 같이 무죄가 될 가능성이 크다.

3. 사실관계
피고인 원세훈, 이종명, 민병주는 국가정보원 지휘계통을 거쳐 심리전단 소속 4개 사이버 팀 70명 직원과 외부 조력자로 하여금 대선과 관련된 특정 정당 또는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의견을 표시하게 했다. 위 지시를 받은 심리전단 소속 직원들은 ① 2012. 8. 22.부터 2012. 12. 17.까지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된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글에 찬성 혹은 반대 클릭을 했고, ② 2009. 2. 14.부터 2012. 12. 13.까지 인터넷 사이트에 특정 정당 또는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글을 게시했으며, ③ 2011. 1. 12.부터 2012. 12. 19.까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혹은 반대하는 글을 트윗 또는 리트윗하였다. 이 행위는 1심도 인정한 내용이다.

쟁점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이다. 검사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의 이메일 계정에서 이메일에 첨부된 파일을 수집하여 법정에 출력물로 제출했다. 이 파일이 425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이다. 국정원 직원은 검찰에서 자신이 파일을 작성했다고 했으나 법정에서는 착오였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따라서 이 파일은 형사소송법 제313조 제1항 규정에 따라 작성자인 심리전단 직원의 진술로 성립의 진정함이 증명되지 않아 증거능력이 없게 되었다. 하지만 항소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위 파일이 형사소송법 제315조 제2호 및 제3호에 의하여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4.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두 파일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출처를 명확히 알기도 어려운 매우 단편적이고 조악한 형태의 언론기사 일부분과 트윗글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시큐리티 파일의 내용 중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계정은 정보의 근원, 기재 경위와 정황이 불분명하고 그 내용의 정확성과 진실성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 파일에 포함된 이슈와 논지 및 트위터 계정에 관한 기재가 취득 당시 또는 그 직후에 기계적으로 반복하여 작성된 것인지도 알 수 없다는 점, 업무수행 과정에서 작성된 문서라고 하더라도 위 두 파일에 포함된 업무관련 내용이 실제로 업무수행 과정에서 어떻게 활용된 것인지 알기 어렵다는 점, 두 파일과 같은 형태의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두 파일에는 업무와 무관한 개인적 필요로 수집된 정보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두 파일이 업무를 위한 목적만으로 작성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내용 역시 아무런 설명이나 규칙없이 나열되어 있어 어디까지가 이슈와 논지이고 어디부터가 작성자 자신이 심리전단 활동을 위하여 인터넷 등에서 모아 놓은 기사 등인지 애매하고 기재 내용만으로는 그것이 트위터 계정 또는 그 비밀번호라는 사실조차로 알기 어려운 트위터 계정을 모아 놓은 것이어서 ‘굳이 반대신문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고도의 신용성의 정황적 보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5. 평석
(1) 통상문서의 중요성 대두
형사소송법은 전문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전문법칙을 선언하면서도 그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315조 제2호는 전문법칙의 예외 중 당연히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증거를 인정한다. 그 중에 쟁점이 되는 것은 제2호의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이다. 그 예에는 상업장부, 항해일지, 진료일지, 금전출납부, 전표, 통계표, 전산자료 등이 있다. 상업장부 등은 보통 범죄사실의 인정여부에 관계없이 자신에게 맡겨진 사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계속적, 기계적으로 만든 문서라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문서작성의 기계적 반복성으로 허위 개입의 여지가 적다는 점을 고려하여 소송경제적 측면에서 전문법칙의 예외를 설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통상문서에 대한 설명은 더 이상 구체적이지 못했다. 업무가 불법적인 업무를 포함하는 것인지, 업무만을 기록해야 하는 것인지, 문서의 작성 방식이 반드시 관계되는 내용을 모두 기재해야 할 정도로 기계적이어야 하는지, 문서의 형태가 일반적인 업무용 문서와 같아야 하는지 등에 대하여 엄밀한 분석은 없었다. 문서가 대부분인 컴퓨터로 작성되기 때문에 작성자의 진술로 진정성립을 인정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통상문서의 증거능력 문제는 유무죄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통상문서의 요건에 대한 엄격한 해석을 시도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2) 통상문서의 업무의 범위
통상문서의 업무 범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하나는 불법적인 업무도 통상문서의 업무에 포함되는가 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통상문서가 오로지 업무만을 기록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불법적인 업무내용을 기록해도 통상문서로 인정된다는 것은 대법원이 이미 성매매업자가 영업내용을 입력한 메모리카드의 증거능력을 인정함으로써 해결된 문제이다(2007. 7. 26. 2007도3217).

통상문서가 오로지 업무만을 기록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이번 판례는 두 파일에 업무와 무관한 개인적 필요로 수집된 정보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증거능력을 부인했다. 하지만 이렇게 보면 업무상 공식적으로 작성되는 문서 이외에는 통상문서로 인정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회의시마다 작성한 다이어리는 비록 개인의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주된 내용이 업무에 관한 것이라면 업무상 작성된 통상문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판결은 통상문서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힌 문제가 있다.

(3) 통상문서의 작성방식
통상문서의 작성방식은 기본적으로 기계적, 반복적으로 작성되어야 한다. 상업장부, 항해일지, 금전출납부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작성자의 평가가 불필요한 경우이다. 그러나 업무에는 작성자의 평가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신문이나 소식지에 모든 이슈를 정리할 수는 없고 작성자가 내용을 선별해야 한다. 이렇게 선별된 문서라고 하더라도 업무의 성격에 비추어 보면 업무용 통상문서임이 틀림없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파일에 포함된 이슈와 논지 및 트위터 계정에 관한 기재가 취득 당시 또는 그 직후에 기계적으로 반복하여 작성된 것인지도 알 수 없다는 점과 업무수행 과정에서 작성된 문서라고 하더라도 파일에 포함된 업무관련 내용이 실제로 업무수행 과정에서 어떻게 활용된 것인지 알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통상문서임을 부인했다. 그러나 쟁점이 된 국정원의 업무가 이슈 중 중요한 것을 선별하는 것을 포함하는 이상 업무상 통상문서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면에서 이번 판결은 통상문서의 작성방식에 지나친 제한을 가한 문제가 있다.

(4) 통상문서의 형태
통상문서의 형태는 제한이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것은 이미 대법원도 확인한 바 있는 것이다. 대법원은 수첩도 통상문서로 보았다(1996. 10. 17. 94도2865). 통상문서의 업무의 성격이 불법업무를 포함하고 기재내용이 업무 만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두 파일과 같은 형태의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통상문서임을 부정했다. 대법원은 마치 국정원이 문서를 만든다면 문서 형식이 정형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불법행위가 금지된 것을 알면서 불법행위를 감행한 피고인과 그 직원들이 문서를 정형적, 보편적인 형태로 만들 리 없다. 이 부분 판단 역시 잘못된 판단으로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전문법칙의 예외가 확대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예외가 원칙을 흔들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기업이나 단체 등이 범죄를 저지르면서 기계적, 계속적으로 작성한 문서의 증거능력을 통상문서가 아니라고 배제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평석 대상 판결은 통상문서의 범위를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는 있지만 범위를 좁혀 오히려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실을 부인하는 결과를 낳은 점에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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