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일간지 소속인 A기자(여·38)은 법정 트라우마가 있다. 몇 년 전 취재를 위해 법정에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A기자는 당시 한명숙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1심을 취재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갔다가 정체모를 노인에게 머리채를 붙잡혀 끌려 다녔다. ‘정체모를 노인’은 “내가 월남참전 용사인데 네가 자리를 안비켜?”라며 A기자를 폭행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그 ‘정체모를 노인’ 주변에 몰려있던 다른 노인들은 ‘요즘 XX들은 버릇이 없어’ ‘죽여버려’라고 소리를 질렀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취재편의를 위해 기자들에게 10개석 정도를 제공했는데, 좁은 법정에서 앉을 곳을 찾지 못한 노인들이 자리를 선점하고 있던 기자들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었다.

노인들이 법정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동안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법정에 직원들이 배치돼 있었지만 노인들의 기세에 눌렀는지 쳐다보기만 했다. 결국 A기자는 동료기자들의 도움으로 겨우 ‘정체모를 노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지만 충격으로 인해 한참이나 일을 하지 못했다.

지금도 A기자는 “다시는 법정 근처에도 가기 싫다”라고 그때의 충격을 토로하곤 한다.

하지만 가해자는 전혀 처벌을 받지 않았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의 법정에서 기자가 폭행을 당했는데 공권력은 처벌은커녕 가해자를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보수단체의 시위현장에서 취재를 위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다가 휴대폰을 빼앗기고 멱살을 잡혔다. 누군가가 뒷통수를 가격했지만 이리저리 끌려 다니느라 가해자를 확인할 수 없었다. 주변에 서 있던 시민들의 도움으로 겨우 빠져 나왔지만 휴대전화는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나중에서 이리저리 채이며 길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던 휴대전화를 겨우 찾긴 했지만 이미 액정화면이 심각하게 깨진 뒤 였다.

더욱 화가 났던 것은 주변에 경찰관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필자를 폭행한 사람들이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이런 일들은 기자들에게 국한돼 일어나는 일은 아닌 듯 하다. 최근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시위를 벌이던 보수단체 회원이 경찰서장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문제가 되자 보수단체 측은 “경찰관인지 몰랐다”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경찰관이 아니면 때려도 된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해명이지만 아직까지 그 폭행사범이 처벌받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만약 보수단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경찰관을 폭행했어도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몇 년 전 광우병 관련 촛불시위에 참가했던 모 국회의원은 경찰관을 폭행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을 받았다. 또 ‘조선일보 광고불매운동’을 벌인 모 단체 관계자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러 나온 증인에게 항의를 하려다 처벌을 받기도 했다.

동일한 행동은 동일한 법적 평가를 받는 것이 법치국가다. 어떤 폭력이든 일률적으로 범죄로 처벌받아야 하는 것이지 어떤 정파성을 띠느냐에 따라 법적 평가가 달라진다면 법치국가라고 할 수 없다.

어떤 정파성을 가졌느냐에 따라 공권력이 달리 작동한다는 생각이 부디 필자의 오해였으면 좋겠다. 앞서 기술한 사건도 극히 일부의 사례이길 바란다. 하지만 당국도 '오얏꽃 아래에서는 갓끈도 고쳐매지 말라'던 성현들의 지혜를 다시 한번 상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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