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얼마 전 있었던 한·일정상회담에서 아베총리는 여전히 과거사에 대해 편향된 의식을 드러내고 있었다. 국내외의 여러 사정을 바라다보고 있자니 9월 연변지역을 여행한 기억이 새록새록하여 여기에 적어 본다.

‘여행의 기술’의 저자 알랭드 보통은 ‘여행을 하듯 생활하고, 생활하듯 여행하라’고 했다. 우리의 생활이 여행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고 황홀하겠는가?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알랭드 보통도 여행을 하듯 생활하라고 하였을 것이다. 사람이 보는 세상은 제각각이다. 해서 같은 사물이나 현상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느껴지는 것이 다르다. 이를 철학에서는 ‘관점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연변기행에서 일행들은 적어도 뜨거운 민족애와 우리 조상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공통으로 느꼈다는데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화와 역사를 대하는 여행객의 마음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행에 올랐다.

한자와 한글을 병기한 상점이 즐비한 연변은 마치 우리나라의 어느 소도시를 방불케 했다. 만나는 사람들 면면도 고향사람인듯하다. 연변대학 사범분원에서의 제4회 연변지용 백일장 개막식은 일행들이 모두 연단에 올라 백일장에 참석한 학생들과 상견례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이 모두 한핏줄이라고 생각하니 목구멍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백일장에 참석한 학생들이 주어진 주제 ‘부모’ 등에 열중하는 동안 일행은 민족시인 윤동주의 삶이 깃들어 있는 대성중학교를 방문하였다. 윤동주 시비에서 사진을 한장 찍자니 감회가 새로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명동촌으로 이동하여 윤동주 생가를 둘러보는 와중에 드리워진 저녁 석양은 자연스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둘째날은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대인 도문으로 이동하였다. 노 젓는 뱃사공은 보지 못하였지만 대나무 형태의 조그만 유람선에서 일행은 두만강의 흐린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사실 모든 일정 구석구석이 기록에 남기고 싶은 것들이었다. 두만강 물을 페트병에 담아 가져오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셋째날 몇 번의 차량 옮겨타기를 통해 오른 백두산은 우리에게 천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희뿌연 연무가 일행의 기대를 헛되이 하려나 싶은 순간 어디선가 일진광풍이 불어와 우리에게 천지를 허락하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다들 천지를 배경삼아 사진을 찍기 바쁘고, 언젠가 남북이 통일될 것이라는 작은 희망도 불태워 본다.

넷째날 일행은 광개토대왕비와 마주하였다. 그 웅장함에 다들 숙연해지는 분위기였다. 장수왕릉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어찌 저렇게 돌을 정교하게 잘라 무덤을 만들었을까?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였던가. 일본이 ‘안보법안’을 통과시켜 이제 다시금 전쟁이 가능한 국가가 되려하고, 중국이 동북공정에 힘을 쏟는 것을 보면 우리가 아니 우리의 후손들이 역사의 무게를 제대로 느끼고 감내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러워진다. 광개토대왕비를 올려다보며 대왕의 기개를 한껏 들이마시자니 광개토대왕비가 답답한 유리막에 갇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것이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과 오버랩되는 것은 무슨 이유란 말인가?

마지막날 우리는 모두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여순감옥에 들렀다. 그냥 의사의 결기가 내 온 몸을 감싼다. 해설자의 해설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 일행 모두가 뜨거워지는 가슴을 어쩌지 못하고 탄식과 한탄을 쏟아내었다. 의사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쓴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글자가 가슴을 후벼판다.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떠진 기분이랄까.

레오폴드 폰 랑케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밝혀내는 것이 역사가의 사명이라고 하여 객관적 사실을 강조하고, 에드워드 핼릿 카는 과거의 사실을 보는 역사가의 관점과 사회 변화에 따라 역사가 달리 쓰일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이제 정치권의 정략적 싸움으로 전락된 느낌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역사가의 주관적 견해가 가미될 수밖에 없는 작업이라면 역사교과서를 매개체로 하여 시대적 배경과 올바른 역사관을 제시하는 거시적 역사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치권도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교과서 집필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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