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3년 5월 항공자위대 기지에서 731이라는 숫자가 선명한 전투기에 타고서 엄지를 세우며 웃는 사진이 있었다. 총리 취임 6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이 한장의 사진은 일본이 2차대전 중에 저지른 반인류적 범죄를 조금도 반성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731부대는 1932년부터 하얼빈에서 화학세균전을 준비하던 부대다. 그곳에서 ‘적어도’ 몇천명의 한국인과 중국인이 산 채로 실험을 당했다. 이 천인공노할 범죄를 일본인들이 조금이라도 뉘우쳤다면 731이라는 숫자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숫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떡하니 전투기에다 그 숫자를 그려놓았다. 만약 731이란 숫자가 여느 숫자처럼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면 일본인들은 세계로부터 조소와 비난을 받아야 한다. 물론 그들도 731부대의 죄악은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아베 신조도 우연이라고 둘러댔다. 그가 자신의 외조부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범죄를 전혀 알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는 왜 수많은 전투기 중에서 그 숫자가 그려진 비행기에 탔을까? 만약 그것이 의도된 것이었다면 그가 세운 엄지는 무슨 뜻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소름이 끼친다. 아베 신조가 누구인가? 나는 그의 외조부인 전범 기시 노부스께와 그를 연좌(連坐)시키고 싶지는 않다. 그가 기시 노부스께의 후광을 받았는지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외조부와 연좌시킬 필요도 없이 그는 우리의 적(敵)이 됐다. 이 사진만으로도 적어도 전범 외조부 급이 된 것이다.

아베 신조의 ‘침략’은 2012년 12월 취임 직후부터 시작됐다. 시마네현이 2005년에 만든 ‘다케시마의 날’에 차관급 정부대표를 파견한 것이다. 그때부터 아베 신조는 한국을 가지고 놀았다. 가끔은 북한을 지렛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아베는 침략의 정의도 새로 내놓았다.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가 얼마나 방자(放恣)하며 우리를 우습게 본 것인지는 그의 행적이 말해준다.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야스쿠니 신사에 부총리를 보내다가 2013년 말에는 스스로 신사에 참배했다. 2014년 1월에는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했다. 6월에 나오는 국방백서도 마찬가지였다. 4월에는 각의(閣議)가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외교청서를 결의했다. 이쯤이면 우리에 대한 노골적인 도발이었고 드러내놓고 보낸 멸시였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기껏 주한 일본대사도 아닌 공사를 불러 항의하는 정도였다. 하긴 우리 역대 정부는 일본의 오만함에 제대로 대응한 적이 없었다. 위안부 문제로 각을 세웠던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게 특별해 보일 정도다. 당시 노다 총리는 주일 한국대사관에 친서를 보내 항의했다. 우리 정부는 더 이상 대응하지 않았다. 자국 영토를 국가원수가 간 걸 두고,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정부의 태도가 일본이 한국을 더욱 우습게 보게 했다. 우리 정부 스스로 약점을 만든 것이다. 그런 ‘전통’ 때문인지 한일관계가 삐걱댄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의 도발은 계속됐다. 그는 지난 3월 일본군 위안부는 ‘인신매매 희생자’라는 망언까지 내놓았다.

하긴 일본이 믿는 구석이 있었다. 국방비 절감에 목을 맨 미국이 일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된 것이다.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걸 넘어 종용했다. 덕분에 아베 신조는 공명당과 합세하여 안보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이 이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적어도 일본법상으로는 집단적 자위권을 근거해 한반도 상륙도 가능하게 됐다. 미국의 중국 견제에 편승하여 마침내 군사대국의 길이 열린 것이다.

미국은 과거와 확연히 다르게 한국을 대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뿐 아니라 온 국민이 느낄 정도로 미국은 한일문제에 있어서 일본 쪽에 기울었다. 과거사 문제가 그랬다. 미국은 중립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과거처럼 일본을 몰아세우지 않았다. 한발 더 나가 오바마 대통령은 드러내놓고 우리에게 일본과의 화해를 종용했다. 그러는 데는 우리 정부의 중국친화적인 태도도 한 몫을 했다. 게다가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 타결은 미일이 더욱 밀착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 아베 신조가 한국을 방문했다. 이 정부 들어 처음으로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 회담의 성과라면 ‘위안부 문제 타결을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인가? 아베 신조는 물론 일본인은 아직 부끄러움을 모른다. 나는 아직도 아베 신조가 세운 엄지가 마음에 걸린다. 그는 정말 731이라는 숫자를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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