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가 시작되면서 국회의 2016회계연도 예산안 심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작년에는 12년 만에 처음으로 예산안을 헌법 시한(12월 2일) 내에 통과시켰다. 올해는 정부 여당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방침에 따라 국회 일정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져 처리시한을 준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작년에 시한 내에 예산안이 처리된 것은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의 예산안 자동상정 조항 덕이 컸다. 국회선진화법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유일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

예산국회 기간은 국회 구성원들에겐 가장 힘든 기간이다. 예산안이 9월 초에 제출되지만 국정감사 기간이 있어서 실질적인 상임위 예비심사는 10월 중순에나 가능하다. 실질적으로 한달 남짓한 기간에 상임위 예비심사와 예결위 심사를 마쳐야 하니 의원들은 여야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지리한 회의와 각종 예산요구 민원에 시달려야 한다. 이를 지원해야 하는 의원실 보좌진이나 국회 공무원들도 진이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이 기간은 가뜩이 비판을 많이 받는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가장 가혹하게 눈총을 받는 때이기도 하다. 졸속, 부실, 밀실, 누더기, 중복, 비효율 예산심의라는 비난과 조롱이 언론매체에 홍수를 이룬다. 작년을 빼곤 헌법이 정한 시한을 지키지 않는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아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픈 지적은‘쪽지예산’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의원들이 예결위 위원이나 예결소위 위원들에게 자신의 지역구 등의 예산을 증액시켜달라는 쪽지를 준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실제로 예산심사를 하는 소위원회에서 보면 쪽지들이 보좌진을 통해 의원들에게 계속 들어온다. 요즘에는 쪽지 대신 카톡으로 보낸다고 해서 카톡예산이란 말도 회자되고 있다.

쪽지예산이란 말에는 국가예산을 국회의원들이 끼리끼리 맘대로 주무른다는 뉘앙스가 깊게 담겨 있다. 국민의 혈세를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맘대로 낭비한다는 인상을 준다. 국회와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뿌리 깊은 상황에서 쪽지예산이란 말은 언론이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데 가장 손쉬운 용어일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여지가 있다. 국민 중에 자신이 뽑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예산심의를 하는 와중에 점잔을 빼며 가만히 앉아 있기를 바라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모두 다 지역구 의원이 어떻게 해서든 한푼이라도 더 자신의 지역으로 끌어와서 지역을 발전시키기를 바랄 것이다. 쪽지를 넣지 않는 의원은 지역구민의 입장에서 보면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의원이다.

또한,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라는 것도 순수하게 경제적 타당성과 합리성, 공정성에 기초하여 국가재원을 배분한 것은 아니다. 예산편성 단계에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정치적 의지와 고려가 반영되고, 심지어 야당 실세들의 요구사항도 어느 정도는 담기게 된다. 또한, 정부 관료들이 책상 위에서 통계수치와 문서 등을 위주로 짜는 예산안만이 합리적이라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오히려 지역구 자치단체와 주민들, 각종 이익단체의 예산요구 민원에 시달리는 의원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더 시급하고 더 중요한 사업에 예산을 배분하는 더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다.

의원들이 상호 협상과 주고받기를 통해 예산을 배분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자연스런 정치과정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포크배럴(porkbarrel)이니 로그롤링(logrolling)이니 하면서 의원간 나눠먹기와 담합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이런 정치행태는 의회민주주의를 하는 곳이면 어디에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언론에서 쪽지예산이란 명목으로 비판을 하는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예산안이 통과된 이후에 쪽지예산의 주범으로 지목된 의원들이 획득한 예산액과 함께 신문지상에 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해당 의원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좋은 홍보효과도 없을 것이다.

제한된 국가재원을 배분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산심의는 아무리 공정하고 투명하게 한다 해도 비난과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또한 우리 국회는 제도적으로 한달 남짓한 짧은 기간에 행정부에서 편성한 예산안을 심의해야 하는 시간적 한계도 갖고 있다.

물론 이런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국회의 예산심의가 좀 더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또한 당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탓에 일부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에 예산이 집중되는 것도 시정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쪽지예산으로 대표되는 국회의 혼탁한 예산심의 과정이 갖는 정치적 불가피성을 좀 더 성숙된 태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언론에서 국회의 예산심의 과정에 과도하게 이상적인 잣대를 들이대어 이를 희화화하는 것은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현장은 속성상 언제나 시장 바닥 마냥 시끄럽고 어지럽다. 민주주의는 또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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