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5. 8. 13. 선고 2012다43522 판결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에 의한 동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적용을 부정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시 동의의 주체 및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

1. 사실관계

피고는 놀이공원인 A월드를 운영하는 회사이고, 원고들은 A월드 사업소에서 1, 2급 사원(이하 ‘간부사원’이라 한다)으로 근무하던 자들이다. 2007년 5월경 시행되던 피고의 취업규칙 제2조에는 ‘직원의 근로조건 및 일상복무는 법령으로서 정한 것 외에는 이 규칙과 이에 의하여 제정된 제 규정의 정한 바에 의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었고, 피고의 인사관리규정 제6조는 근로자들을 1 내지 5급 사원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피고의 취업규칙 내지 노동관행상 간부사원에게는 실장·부장·과장급 직책만을 부여하였고 ‘사원’ 직책은 부여하지 아니하였다. 피고 회사에 근무하는 3 내지 5급 사원은 능력에 따라 간부사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며, 모든 사원들은 위 인사관리규정의 적용을 받는 등 하나의 근로조건 체계 내에 있었다.

2006년경 A월드에서 수차례 안전사고가 발생하여 안전관리를 지적하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고, 거액의 재정손실이 발생하는 등 재정상태도 악화되었다. 이에 피고는 2007년 상반기에 A월드를 휴장하고 시설을 보수하는 한편, 경영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보직 부여 기준을 변경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과 피고는 2007년 5월경 일반직 1급 사원이 부임 가능하던 팀장 직위에 일반직 1, 2급 사원이 부임 가능하도록 하고, 일반직 2급 사원이 부임 가능하던 선임 직위에 일반직 1 내지 3급과 특수직 3급 사원이 부임 가능하도록 하며, 일반직 3 내지 5급과 특수직 사원이 부임 가능하던 팀원 직위에 일반직 1 내지 5급과 특수직이 부임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보직 부여 기준안’을 마련하였다.

또한 피고는 2007년 5월경 그동안 간부사원에 대하여 기본급 대비 일정 비율을 인사고과에 관계없이 상여금으로 지급하던 것(이하 ‘기존 상여금규정’이라 한다)을 2008년부터는 상여금의 일부를 성과상여금으로 전환하여 인사고과에 따라 차등해서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간부사원 급여체계 변경안’을 마련하였다.

피고는 2007년 5월 25일 원고들을 포함한 간부사원을 대상으로 위 ‘보직 부여 기준안’과 ‘간부사원 급여체계 변경안’에 관한 설명회를 개최하였고, 간부사원 총 74명 중 원고들을 포함한 64명은 “본인은 회사의 ‘보직 부여 기준안’ 및 ‘간부사원 급여체계 변경안’ 시행과 관련하여 제도개선 및 관련 사규개정에 대한 세부내용을 2007년 5월 25일 설명회를 통하여 충분히 숙지하였으며,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동의의 의사를 표시합니다”라는 내용의 동의서에 서명하여 피고에게 제출하였다.

피고는 2007년 6월경 위 ‘간부사원 급여체계 변경안’에 따라 급여규정을 변경(이하 ‘변경된 상여금규정’이라 한다)한 이후 동 규정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였고, 위 보직 부여 기준에 따라 원고들을 팀원으로 각 전보한다는 내용의 인사발령(이하 ‘이 사건 전보명령’이라 한다)을 하였다.

원고들은 이 사건 전보명령의 목적이 간부사원인 원고들을 팀원으로 강등시켜 원고들에게 모욕감을 주어 자진하여 사직하게 하려는 것이므로, 이 사건 전보명령은 사용자의 인사권을 남용한 것으로서 무효라고 하여 그 확인을 구하는 한편, 변경된 상여금규정은 원고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으로서 원고들에 대해 효력이 없으므로 기존 상여금규정과의 차액을 지급할 것 등을 청구하였다.

2. 하급심의 진행 경과

제1심은 이 사건 전보명령에 대해, 보직 부여 기준의 변경이 악화된 피고의 경영 상황 개선을 위해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이고, 새로운 기준에 따라 간부사원 중 일부가 팀원으로 전보되는 것은 불가피하며 인사고과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원고들을 전보대상자로 선정한 것이 부당하다거나 퇴사 강요의 수단으로 악용되었음을 인정할 사정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인사권의 범위 내에 있다고 판시하였고, 변경된 상여금규정은 간부사원에게 불이익한 변경임이 명백하나 간부사원들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가 있다고 보아 그 유효성을 인정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0. 8. 26. 선고 2009가합62599 판결).

항소심은 취업규칙의 변경에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직접적인 불이익은 간부사원들만 받는다 해도 장래에는 나머지 3 내지 5급 사원에게도 적용이 예상되므로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나 전체 일반직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요구된다고 하여, 동의는 부존재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다만 제1심과 유사한 취지로 취업규칙의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된다고 보아 제1심의 결론을 유지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2. 4. 13. 선고 2010나87995 판결).

3. 대법원 판결의 요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새로운 취업규칙의 작성·변경을 통하여 근로자가 가지고 있는 기득의 권리나 이익을 박탈하여 불이익한 근로조건을 부과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아니하지만, 해당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이 그 필요성 및 내용의 양면에서 보아 그에 의하여 근로자가 입게 될 불이익의 정도를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당해 조항의 법적 규범성을 시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종전 근로조건 또는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에 의한 동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적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 … 여기에서 말하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유무는 취업규칙의 변경 전후를 비교하여 취업규칙의 변경 내용 자체로 인하여 근로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의 정도, 사용자 측의 변경 필요성의 내용과 정도, 변경 후의 취업규칙 내용의 상당성, 대상조치 등을 포함한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상황, 취업규칙 변경에 따라 발생할 경쟁력 강화 등 사용자 측의 이익 증대 또는 손실 감소를 장기적으로 근로자들도 함께 향유할 수 있는지에 관한 해당 기업의 경영행태, 노동조합 등과의 교섭 경위 및 노동조합이나 다른 근로자의 대응, 동종 사항에 관한 국내의 일반적인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다만,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 그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의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변경 전후의 문언을 기준으로 하여 취업규칙이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되었음이 명백하다면, 취업규칙의 내용 이외의 사정이나 상황을 근거로 하여 그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이를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해석·적용하여야 한다(대법원 2010. 1. 28. 선고 2009다32362 판결 등 참조).”

“원심이 인정한 사용자 측의 변경 필요성의 내용과 정도, 변경 후의 취업규칙 내용의 상당성 등의 사정들을 감안하더라도, ① 피고의 변경된 ‘보직 부여 기준안’에 따라 1·2급 간부사원들이 종전에 3 내지 5급 직원들이 담당하던 업무를 맡을 수도 있게 되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징계의 일종인 강등과 유사한 결과를 초래하여 그 적용을 받게 되는 근로자들의 불이익이 결코 작지 않은 점, ② 취업규칙 개정의 필요성과 정도가 긴박하거나 중대하였다고 인정할만한 객관적인 자료도 부족하다고 보이는 점, ③ 여러 근로자 집단이 하나의 근로조건 체계 내에 있어 비록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 시점에는 일부 근로자 집단만이 직접적인 불이익을 받더라도 그 나머지 다른 근로자 집단에게도 장차 직급의 승급 등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의 적용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일부 근로자 집단은 물론 장래 변경된 취업규칙 규정의 적용이 예상되는 근로자 집단을 포함한 전체 근로자 집단이 동의주체가 될 수 있는데도(대법원 2009. 11. 12. 선고 2009다49377 판결 참조), 피고는 간부사원들 및 일부 3급 사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일부 사원들로부터만 동의를 받은 점 등을 함께 고려할 때, 원고들에 대하여 아무런 대상조치나 경과조치를 두지 않은 채 일방적인 불이익만을 감수하도록 한 이 사건 취업규칙 개정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4. 대상 판결의 해설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은 “사용자는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에 관하여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 조항은 사용자의 취업규칙 변경의 자유를 절차적으로 제한하여 근로자를 보호하고, 근로 조건의 결정과 관련하여 근로자의 참여권(의견제시권 및 동의권)을 인정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고 할 것이다.

동 조항 단서의 ‘동의’의 주체와 관련하여 많은 분쟁이 발생한 바, 대상 판결의 제1심은 동의의 주체를 변경된 취업규칙 규정의 직접적 적용을 받는 당사자인 간부사원으로 한정한 반면, 원심과 대법원은 하나의 근로조건 체계 내에 있는 경우 변경된 규정이 직접 적용되지 않는 나머지 다른 근로자 집단에게도 장차 직급의 승급 등으로 변경된 규정의 적용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장래 변경된 규정의 적용이 예상되는 근로자 집단을 포함한 전체 근로자 집단이 동의의 주체가 된다고 보았다. 복수의 근로자 집단이 있는 경우 대법원은 종래부터 직접적 적용여부보다는 근로체계의 단일성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동의의 주체를 판단해온 바, 근로기준법 제94조의 취지에 따른 타당한 판시라고 할 것이다.

또한 대법원은 동 조항 단서와 관련하여, ‘당해 조항의 법적 규범성을 시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면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에 의한 동의가 없다고 하여 변경된 취업규칙의 유효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왔다. 이러한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에 대하여, 이는 일본 판례의 답습이자 명문 규정을 정면으로 저촉하는 해석론이고 ‘합리성’이라는 개념의 추상성으로 인해 근로계약 당사자들의 예측가능성을 해하는 것이라는 등의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에 대상 판결이 인용한 2009다32362 판결에서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을 사실상 배제하는 것이므로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고 하여,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존재를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해석·적용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판시를 한 이래 대상 판결에서도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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