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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法情]시냇물을 마시다 배터져 죽은 개 이야기
이영진 변호사  |  yjlee@kangho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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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호] 승인 2015.11.09  09: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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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가 일찍 잠자리에 드는 날엔 포상으로 동화책을 읽어준다. 주로 짧은 단편동화인데, 요즘은 탈무드나 이솝우화를 읽어주고 있다. 시냇가에 다다른 배고픈 세 마리의 개가 있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시냇물 속의 고깃덩어리, 들어가 건져오기엔 물이 깊고 포기하자니 너무나 먹음직스런 그 고깃덩어리는 어찌 어찌하면 금방 손에 잡힐 것만 같다. 세 마리 개 중 똑똑한 놈이 좋은 생각이 났다며 시냇물을 마셔 물이 얕아지면 건져먹자고 한다. 다들 좋은 생각이라며 시냇물을 들이마시기 시작한다. 한참 후, “펑”, “펑”, “펑”! 끝.

뭐 이런 이야기가 다 있나 하는 순간 둘째는 깔깔깔…. ‘아아…웃으면 안 되는데…잔인한 이야긴데 왜 이렇게 우습지?’ 하며,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오래 전 사건이 떠오르면서 입맛이 씁쓸해졌다.

그는 나와는 아무 연고도 없이 그저 길을 가다 간판을 보고 사무실에 들어온 상담고객이었다. 소송을 해도 질 것이 뻔한데도 끝까지 소송을 하겠다고 한다. 나중에는 상담료도 받지 않을 테니 돌아가라고 했으나 한 마디로 고집불통이었다. 져도 좋으니 소장만 내달라고 했다. 이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자식된 도리가 아니라고 하면서… . 그가 하고자 하는 소송은 고인이 된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한 행정소송이었다. 아무리 봐도 인정되기 힘든 주장이고 사건이었다. 그러나 상담을 하는 동안 나는 그의 감정에 동화되어 같이 억울해졌고 그의 인간적인 회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굿을 하는 의미로라도 소송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최소한의 착수금과 형식적인 성공보수약정을 하고 소장을 접수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는 소장이 접수된 이후부터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그런 기대가 그 시점에 생긴 것인지 아니면 상담을 하러 올 때부터 품고 있었던 것인지 난감했다. 승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마음을 비우고 진행하자 아무리 다독여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어느새 ‘져도 좋으니 소장만 내달라고 했던 소송’은 ‘반드시 이겨서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소송’이 되어 있었다. 급기야 ‘변호사님이 95% 패소한다고 하지 않았냐? 그러면 5%의 승소가능성은 있는 거 아니냐? 5%의 가능성을 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겠다’며 분기탱천해 있는 그를 보자, 나는 슬그머니 무서워지면서 꽁무니를 빼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용을 쓰고 있었다.

있는 증거, 없는 증거 다 들이대며 불필요하다 싶은 변론까지 하느라 시간을 무진장 끌며 진행을 하였으나 변론종결이 되기까지는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고 5개월이 조금 넘었을 때 당연히 전부기각판결을 선고받았다. 너무 나를 들들 볶았던 것이 미안했던지 아니면 너무 긴장되어 선고내용을 들을 수 없어서였는지 모르겠으나, 선고기일에 그는 오지 않았다.

나는 이 선고내용을 어떻게 전할지 너무 고민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이런 나에게 기가 막혔다. 패소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지만 당신의 마음 속 미련이나 회한이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장을 제출해서 다투어는 보겠다며 시작한 소송이었으며 사건의 성격과 예상되는 결과에 대하여 의뢰인에게 충분히 설명을 했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소송이었는데, 어찌 이런 난처한 상황에 빠졌을까? 혹시 내가 그에게 조금이라도 기대를 심어준 것은 아닐까? 패소 가능성이 100%라고 하면 너무 낙담할까 싶어 95%라고 한 것이 패착이었나? 오래오래 고민을 하던 내가 있었다.

그는 시냇물 속 고깃덩어리를 잘하면 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시냇물을 마시자고 제안한 똑똑한 개였고, 나는 건질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를 위해 같이 마셔준 멍청한 개였다. 멍청한 개로 지내던 시절의 나는 변호사 직업이 참 힘들다고 푸념도 자주 했었다. 남의 분쟁에 끼어들어 같이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며 감정소모가 너무 많다. 어떤 의미에서 변호사도 감정노동자다. 가지가지 해괴한 설까지 풀어가면서 말이다.

문득 그 시절의 내가 그립다. 의뢰인의 감정에 동화되어 냉정을 잃고 끌려 다녔던 초년병 시절의 그 열정이 그립다. 몇 해 전부터 나는 판사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냉정하게 사건을 정리하고, 의뢰인의 말도 가려 듣고,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구분도 칼 같은 지금의 나는 ‘져도 좋으니 소장만 내달라’는 의뢰인이 절대로 져도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오히려 다른 사무실에서 숱하게 퇴짜맞은 뒤 자신을 위해 무모하게 도전해 줄 순진한 변호사를 찾고 있는 의뢰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경계한다. 이제는 노력해도 멍청한 개가 될 수 없을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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