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송은 의료법학적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사실학문으로서의 의학과 규범학문으로서의 법학은 근본적으로 학문적 차이가 있다. 의학과 법학이라는 다른 학문을 연계하여 연구하는 것이 의료법학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여건상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ity)라는 단어조차 생소하였고, 때문에 의료법학이라는 학문의 발전이 늦었다.

이를 방치하는 사이 의학은 사회적 제동을 받지 않은 채 생체실험, 유전자조작, 인간복제 등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데까지 가속되었다. 독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E. 벤다 형법교수가 1984년부터 의학자들과 함께 벤다위원회를 운영한 끝에 1990년 독일배아보호법을 제정한 후, 같이 했던 위원들에 대하여 “앞만보고 달리는 의학에 대해서 법학이 사회적 제동수로서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한 것처럼, 과학적 입장에서 사회적 책임을 망각할 수 있는 사실행위에 대하여 규범적 제재가 필요하게 되었다. 법학이 의학에 개입하게 된 중요한 계기이다. 임상의료현장에서 시험적 치료행위, 나아가 과잉부당의료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은 비단 진료수익확보 이외에도 학문적 호기심이나 연구목적을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학과 의료에 대한 이해가 의료소송을 제대로 수행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법조인으로서는 폐쇄적으로 진행되는 의료인양성교육과 의료업 수행과정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의료인들과의 학회활동을 통하여 의학과 의료임상현실을 배우는 것이 한 방법이다.

사실 법조인이 의료인과 공동학회활동을 하기 시작한지가 얼마 되지 않고, 초기의 학회활동은 의료인들의 참여거부로 매우 힘들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1990년 초반만 하더라도 의사가 변호사와 세미나나 포럼을 공동운영 한다는 것은 금기시되는 시절이었다. 1993년 ‘의료법학포럼’을 만들 때 우선 A대학 출신 산부인과 전문의들을 설득하여 의료소송변호사, 의료법학자들을 중심으로 매달 의료판례평석을 중심으로 한 학제간 토론을 시작하였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처음 우려와 달리 의료법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참여대상이 법의학, 내과, 외과, 마취과 전문의, 재조법조인은 물론 보건경제학자까지 확대되었다. 이 포럼은 한국의료법학회와 대한의료법학회의 월례집담회로 발전하여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2년 창립된 한국의료법학회는 회원이 500여명으로 매달 2번째 금요일 저녁에, 1999년 창립된 대한의료법학회는 회원이 약 450명으로 매달 세 번째 토요일에 월례집담회를 열고 있다. 한국의료법학회는 의료인의 비중이, 대한의료법학회는 법학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특징을 가지나, 학회활동은 의료관련 판례, 법제, 정책, 건강보험제도 등 보건의료법 전반을 다루고 있다.

발표와 토론은 의료법학에 전통한 의료법학자와 의료인, 공무원, 건강보험공단 및 심사평가원 임직원 등이 참여한다. 의료소송 전문변호사도 큰 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의료소송의 트렌드와 이슈는 물론 임상현장이나 보건정책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의료법학은 단순 학제간 연계에서 생명의료윤리, 생명의학특허, 법심리학 등 생소한 학문영역과의 통섭학문으로 발전하고 있다. 고대학문은 철학, 법학, 의학이 한 학문이었으나, 현미경 발명 등 자연과학이 발달하면서 의학은 더욱 세분화되면서 많은 문제를 노출시키고 인체를 인격권이 아닌 치료객체로 본다는 비난을 받고, 전체적 치료방향을 놓치는 경우까지 발생하였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학문의 통섭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에 윌슨은 1998년 ‘통섭:지식의 대통합’이라는 저서를 편찬하여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의료법학은 통섭학문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전형적인 영역이다. 학문영역이 넓어지는 것은 그만큼 소송이나 법률자문영역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 의료소송 이외에 건강보험과 민간실손형의료보험, 인체유래물신약, 장기동종이식과 이종이식관련 생명윤리법제연구, 유전자조작 및 인간복제연구, 의료윤리법학교육 등 다양한 대상이 의료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들의 시장으로 개척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의료법률 이외에 통섭학문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의료법학회, 교육기관, 개인적 스터디그룹 등에의 참여가 의료소송에 입문하는 첫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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