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자폐인사랑협회 회장, 법무법인 케이씨엘 대표변호사 김 용 직

"자폐성 장애인들을 대변하는 단체 없어 만들게 돼
적절한 조기 개입, 근로기회 제공, 신탁지원센터 꼭 필요
어려운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보듬는 법조인 되길"

매년 4월 2일에는 유엔이 정한 세계 자폐인의 날을 기념해 에펠탑, 피라미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등 50개국 3000여 곳의 명소에서 파란등 켜기 캠페인(Light it up blue)이 이뤄지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김용직 변호사는 “요즘에는 이 배지를 달고 다닌다”면서 나에게도 파란등 켜기 캠페인 배지를 건네주었다.

김 변호사에게는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이 있다. 아들의 장애를 알게 된 이후 장애인 등을 위한 공익활동에 더 자유롭게 전념하기 위해 평생 하려던 판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자폐성장애인의 대부라 일컬어지며, (사)한국자폐인사랑협회 회장,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공동대표, 대한변협 부협회장 등을 맡아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김 변호사를 지난 4일 만나보았다.

(사)한국자폐인사랑협회 설립을 주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중고등학교 때 한 신부님을 만나게 됐는데 복지 쪽에 관심이 많은 분이셨다. 이것이 인연이 돼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군법무관을 할 때부터 사회복지법인의 이사로 관여하게 됐다. 복지계에는 일찍 발을 담근 셈이다.

이후 판사로 임관했을 때 아들이 자폐성 장애라는 것을 알게 됐고, 선배 법조인 등을 도와 관련 사회복지법인을 만든 뒤, 좀 더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복지 관련 일에 나서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개업을 하게 됐다.

당시에는 자폐성 장애의 개념도 없던 시절이었고, 뇌성마비, 시각장애 등 다른 대부분의 장애의 경우 그를 대변하는 단체가 있는데 반해, 정작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폐성 장애인을 대변하는 단체가 없어, 뜻있는 분들의 도움이 받아 협회 설립에 나서게 됐다. 정작 아들을 위해서라면 관련 시설을 만들거나 복지법인의 설립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너무나 어려운 주변의 현실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어려운 전체를 위해 일하면 자연스럽게 우리도 덕을 보는 것이기도 했고, 인식을 개선하고 제도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단체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협회를 만드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외국의 선례 등을 찾아보고, 집 사람이 직접 미국 자폐증협회의 연례행사에 참석하는 등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친 결과 1년여의 준비 끝에 마침내 2006년 1월 창립총회를 할 수 있었다. 당시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열기가 대단해 앞날이 밝다는 분에 넘치는 찬사도 받았다. 그 찬사를 늘 생각하면서 더 마음을 다 잡았고, 상근 직원 한 사람밖에 없는 상태에서 열의 있는 부모님들과 전문가들과 함께 2박3일간이나 하는 큰 규모의 캠프를 진행했다. 장애 당사자, 부모 형제, 자원봉사자 등 1000여명이 모이는 큰 행사였다. 지금 하라고 해도 어려울 것인데, 사고 한번 없이 매년 무사히 잘 해냈다. 아마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서 하늘이 도운 것이 아닌가 싶다. 첫해의 행사를 본 보건복지부 고위관계자가 인가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웃음).

자폐인 단체 중 정부에서 인정한 유일한 사단법인으로 전국에 지부도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담, 자립, 교육, 연구 등에 관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운영은 어떻게 되고 있나.

현재 협회의 1년 예산은 7억원 정도다. 자폐성 장애인들의 가족, 친지 뿐만 아니라 뜻이 있는 일반인 후원자들도 적지 않다. 다만, 시설을 별도로 갖고 있지 않아 정부 지원은 많이 않은 편이어서 살림살이가 늘 쉽지 않다. 그나마 변호사를 개업하여 열심히 한 것이 어려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기업들, 함께 일하는 법무법인 케이씨엘 동료 변호사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많이 줬다. 너무 공익적인 일에 많이 관여하는 나에게 늘 격려해 주고 재정적으로도 도움을 준 것이 이 분들이다. 깊이 감사할 따름이다. 변호사 업계가 점점 어려워지지만 그래도 공익적인 일을 하기는 가장 좋은 직업이 아닌가 싶다. 여러 변호사님들도 많은 봉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사랑협회가 예전보다는 많이 컸지만 아직도 매우 어렵다. 협회 홈페이지도 방문하시고 조금씩 힘을 보태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10년이 되면 쉬워질 것으로 알았는데, 솔직히 더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장애 당사자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을 돌봐야 하는 가족들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을 위한 사업에는 무엇이 있는지.

다른 보통 장애의 경우 그 장애인 당사자를 돕거나, 기자재 등을 이용하면 가족들의 부담도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된다. 그러나 자폐성 장애의 경우 의사소통이 어렵고 혼자서 독자적인 활동이 어렵기 때문에 거의 하루 종일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부모 중의 한 사람은 전담 보호자로 나설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의사소통도 원활치 않으니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래서 잘못하면 가정파괴의 주범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정도다. 사랑협회라는 이름도 사랑으로밖에 치유할 수 없다는 뜻에서 붙인 것으로 자폐는 그만큼 어려운 장애다. 다만, 진정한 사랑으로 대하면 소통도 가능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협회 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는 분들이 많다.

협회의 큰 사업 중 하나가 가족에 대한 지원사업으로 비장애 형제나 부모를 위한 가족휴식지원서비스, 주말 산행, 지역별 캠프, 문화공연 초청 등 여가·문화지원 서비스 등을 하고 있다.

발달장애인법 제정에 기여했다고 들었다. 제정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기존 장애인복지법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사랑협회를 운영하면서 시범사업 등을 벌이고 있고, 여러 전문가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매뉴얼도 만들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제대로 된 전파를 하려면 법과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사랑협회에 관여하는 여러 법조인들과 전문가들과 함께 오래 전부터 자폐성 장애인을 위한 법률 초안을 만들었었다. 법 제정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소수인 자폐성 장애인만을 위한 법안을 마련하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이에 자폐성 장애인보다는 덜 하지만 역시 의사능력이 원활하지 못한 지적장애인도 보호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두 장애를 포괄하는 발달장애인으로 범위를 넓혀 사랑협회 등 관련 단체 4개가 합심해 발달장애인법제정추진연대를 만들었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법 제정을 이뤄냈다.

발달장애인의 특수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기존 장애 관련법이 있으니 특별조항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쉽게 말하지만, 기존에 있던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신체적인 장애를 위주로 한 법으로 지적인 문제가 있는 자폐성 장애를 비롯한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데에는 큰 한계가 있었다.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구제를 받는 발달장애인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자기의 의사를 제대로 주장할 수 없는 사람들이니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가 일반인은 물론 국회에서도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법을 추진하게 된 것은 특별히 내 아들이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폐성 장애 등 발달장애가 가장 어려운 장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일 어려운 것, 안 되는 것을 더 보듬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유일한 기준이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 외에 구상하는 것이 있으신지.

우선 첫 번째로 자폐성 장애는 조기개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기개입을 통해 예후가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찍 적절하게 개입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의 자폐 관련 비영리단체인 오티즘스픽스와 연결해 ABA에 기반을 둔 치료프로그램을 저비용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PST)을 모색 중이다. ABA 치료는 행동분석을 통한 집중프로그램으로 자폐영유아들에게 매우 효과적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일반 부모들에게는 너무나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제대로 실행이 될 경우 기대하는 바가 크다.

두 번째로는 성인인 자폐성 장애인들에게 근로 기회를 줄 수 있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우선, 헌법상으로도 근로는 의무이자 권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꾸준한 훈련으로 그들에게 적합한 정도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나름대로 일을 하게 되면 기능이 향상됨은 물론 이상행동도 많이 예방할 수 있게 되고, 궁극적으로 자긍심과 생활자립도가 높아진다. 따라서 중한 정도에 관계없이 일할 수 있는 기회의 부여는 매우 중요하고, 그들에 대한 인격 존중과도 맥을 같이 한다. 또한 이는 사회적으로 그냥 부양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든다고 생각한다. 현재 자폐성 장애인의 고용률은 0.1% 도 제대로 안 된다. 적절한 근로의 기회를 꼭 제공하고 싶다.

세 번째로는 성년후견인제도와 신탁제도를 연계한 신탁지원센터 설립이다. 현실적으로 현재 성년후견인제도만으로는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실질적 지원방안이 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도 거의 이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탁제도를 함께 활용하여 부모나 당사자의 의사를 반영하고, 사랑협회 같은 공신력이 있는 단체가 나서면 해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조만간 신탁 및 의사결정 지원센터를 발족하려 한다. 많은 지도와 지원을 바란다.

‘베트남 여성의 아들 약취 사건’의 국선변호를 맡게 된 계기는?

봉사하는 차원에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국선변호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대법원에서 위 사건을 사법사상 최초로 중계방송하기로 결정하면서, 당시 변협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던 내가 사건을 맡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첫 공개변론을 앞두고 PPT자료도 준비하고 동료 변호사들과 열심히 준비한 덕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키코’ 관련 재판 또한 맡게 돼 공개변론 1, 2호 사건에 모두 참여하게 되는 분에 넘치는 영광을 누렸다.

법조인을 꿈꾸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모가 사주신 세계위인전 중 링컨 위인전을 읽고, 변호사라는 직업이 뭔지도 모른 채 변호사에 대한 꿈을 가졌다. 이후 법대 면접을 볼 때 어려운 사람을 돕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 왔다고 하니 칭찬을 해주시더라(웃음).

후배 법조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

제일 어려운 것, 제일 안 되는 것을 우선적으로 보듬는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 요즈음 법조계가 어렵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직업보다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도 쉽고, 경제적으로도 낫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법조인,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법조인이 되길 바란다. / 인터뷰 변협 홍보과

김용직 변호사는?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행정고시 22회(1978) ▲사법시험 22회(1980) ▲2013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한국선수단 단장 ▲現 법무법인 케이씨엘 대표변호사, (사)한국자폐인사랑협회 회장, 한국장애인단총연맹 공동대표, 대한변협 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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