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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실]파이를 키우려면
이유정 중앙일보 기자  |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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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호] 승인 2015.11.02  1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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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부터 중앙일보는‘위기의 로펌’시리즈 기획을 10회에 걸쳐 내보냈다. 로스쿨 도입으로 변호사 2만명 시대에 접어 들었고, 내년부터 법률시장이 3단계에 걸쳐 개방되면서 외국계 로펌들의 자문·송무파트 잠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대형로펌의 대표 변호사는 “법률시장 위기는 한국의 잠재 경제성장률이 둔화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잠재 성장률 둔화로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를 꺼리게 되고, 법률 수요도 줄어드는 거시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다른 대형로펌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위기는 변호사들 스스로 초래한 측면이 있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이 변호사, 저 변호사 비슷해 보이니 값이 싼 변호사를 찾게 된다.” 업계 최고로 손꼽히는 그의 솔직한 고백이 마음에 와닿았다. 한 외국 변호사는 “일단 영어가 되는 한국 변호사를 찾기 어렵고, 독점규제나 국제중재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를 찾기가 어렵다”고 꼬집었다.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선 “변호사들이 블루오션이 되는 영역에서 차별화될 수 있는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정부와 변협이 연구·개발(R&D)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제시해줘야 한다” 등의 제안이 이어졌다. 어느 쪽이든 간에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 법률시장의 체력 강화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있다. 순수 변호사보다 판검사 출신 ‘전관(前官)’들이 변호사 업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펌들은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전관들을 영입한다. 현직 인맥이 되는 전관 변호사들이 단독개업을 하더라도 같은 경력의 변호사보다 사건 수임에 유리한 게 사실이다. 전관 변호사들이(혹은 그들을 영입한 로펌이) 중요 사건을 독식하다보니 전반적인 법률 서비스가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 아닐까.

법률 서비스를 ‘비용’으로 치부하는 한국 기업의 문화도 한몫하는 것 같다. 한국 기업들은 일상에서의 준법 경영에 관심을 갖기보다 ‘오너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을 중시한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를 찾다보니 전관 출신 변호사들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전관 변호사들 역시 “판·검사들은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생계를 포기하란 말이냐”고 항변한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필드에서 쌓은 경륜을 퇴직하고 썩히는 건 국가적으로 낭비”라고도 했다.

하지만 사회가 변화하면서 전관 변호사들의 영향력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검찰만 해도 “요즘 세상에 ‘전관예우’가 통하려면 재경지검 부장검사 출신으로는 어렵고, 못 해도 검사장 이상은 돼야 후배 검사에게 전화 한통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언론 등 보는 눈이 많아져 아무리 선배라도 터무니 없는 청탁은 하기 어렵다. 기자들이 쓰는 용어 중에 ‘얘기 된다’는 말이 있는데, 시의성·뉴스가치·논리 등 기사가 되기 위한 내적 판단 기준이 충족됐을 때를 가리킨다. 검찰, 법원으로 치자면 ‘얘기 되는’ 수준의 협상 내지는 청탁이 아니면 통하려야 통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검사 출신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한 변호사는 사건이 원하는대로 안 굴러가면 담당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런 식으로 사건 처리하면 안 된다”며 훈계조로 압력을 넣어 뒷말이 많다고 한다. 법원 역시 법관 제척·회피·기피신청 제도가 있고 매년 신청 건수가 늘고 있다. 이한성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민·형사사건 기피신청은 2011년 454건에서 지난해 1041건으로 크게 늘었다. 인용률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신청 건수가 늘고 있다는 건 그만큼 공정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로펌은 반대로 가고 있다. 법률시장이 개방될수록 외국 변호사들이 소화할 수 없는 인맥 비즈니스를 극대화시키고자 할 것이다. 실제로 한 로펌의 대표 변호사는 “전관 출신 변호사들이 사건 수임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송무시장에서는 외국 로펌들이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고 털어놨다. 이른바 ‘집토끼 지키기’ 전략으로 전관 중심의 변호사 업계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집토끼 전략에 안주하다보면 한국 법률시장은 점점 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것이다. 3조6000억원에 불과한 국내 시장에서 ‘작은 파이 나누기’에만 치중하게 될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법률시장 3단계 개방을 앞두고 있고, 로스쿨 도입으로 변호사 공급은 폭증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전관 변호사 중심의 시장은 변호사들 간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국제 경쟁력을 뒤처지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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