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 변호사를 보러 가는게로구만.”

대한변협 이사회를 마치고 서둘러 자리를 뜨는 나를 보고 협회장님께서 웃으신다. 그러고 보니 내가 협회에만 들르면 이 변호사를 찾았던 모양이다. 내가 뻔질나게 찾아대는 이 변호사는 변호사협회가 있는 건물 3층에서 일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10여 년 전, 내 의뢰인 기업의 사내변호사였다. 1년차 파릇한 새내기였던 이 변호사를, 기업회장님의 소송사건을 수행하면서 처음 만났다. 특별한 친분은 없었지만, 이 변호사는 가끔 아주 가까운 후배처럼 자잘한 사연을 담은 친근하고 긴 메일을 보내오곤 했다. 때로는 즐거움을, 때로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소연을 하거나 의견을 구하기도 하면서. 이 변호사는 그 때 나에게 왜 그랬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나로서는 의뢰인이었던 이 변호사가 나를 자매처럼 살갑게 대하고 의지하는 것이 기쁘고 고마웠다. 따로 만나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이 변호사의 메일에는 아무리 내 코가 석자라도 이 변호사 못지 않게 긴 답장을 쓰곤 했던 것 같다.

이 변호사를 알게 된지 1년쯤 후 나는 소속 법인을 나와 한동안 외국에 체류하였는데, 어느 틈엔가 이 변호사와도 연락이 끊겼다. 전화번호도 이메일 주소도 바뀌었으니 적어도 나는 소식이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귀국 후 4년이나 지나서, 정말 뜻밖에도 이 변호사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변호사님 저 기억하시나요. 잊으셨는지도 모르지만, 저는 변호사님 늘 생각했어요. 가끔 인터넷 검색하면서 변호사님 기사도 보고, 직장 소식도 종종 들었어요.”

어찌나 반가웠던지, ‘내 전화번호는 어찌 알았느냐, 당장 한번 만나자’ 답장을 했는데 바로 소식이 없다가, 한달 쯤 후에야 다시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해서 여러해 만에 아기 엄마가 된 이 변호사를 다시 만났다. 이 변호사는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여전히 친근하게 그간의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듣고 보니 당시 이 변호사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재회였지만, 주책없게도 나는 이 변호사가 어려운 순간에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이 고맙고 기뻤다.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후 다시 한동안 만나지 못하였다.

2014년, 나는 연이은 분쟁과 사고와 질병에 시달리며 전에 없는 침체기를 보냈다. 심한 스트레스로 산산조각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던 어느 저녁, 문득 이 변호사를 떠올리고 전화를 했다. 힘들다고 말하지도, 나와 달라 하지도 않았지만, 이 변호사는 맥풀린 내 목소리를 알아챘던지 만사를 제치고 바로 뛰어나와 자정이 되도록 나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남편과 함께 커다란 그림을 한 폭 들고 집까지 찾아왔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서양화가의 아름다운 판화작품이었다.

“이 그림을 걸어둔 후에 저희 집에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서, 변호사님께도 행운을 가져다줄까하여 드리고 싶었어요.” 무거운 그림을 내려놓으며 배시시 웃는 이 변호사의 얼굴을 보고 나는 순간 콧잔등이 시큰했다.

거실에 걸어두었던 오래된 그림을 내리고 대신 이 변호사가 준 판화를 걸었다. 정말 행운을 주는 그림이었을까, 아니면 이 변호사의 따뜻한 마음에 내가 힘을 얻은 탓일까, 이후 신기하게도 하나 둘 좋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 쯤 후, 나는 긴 스트레스와 질병을 벗고 완전히 기력을 되찾았다.

이후 나는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하였는데, 이 변호사는 그 때마다 내 부탁이 마치 마지막이고 유일한 것인양 정성을 아끼지 않고 앞장서 주었다. 그제서야, 만난지 10년이나 지나서, 이 변호사가 남의 일을 얼마나 진실하게 자기 일처럼 열심히 돕는 사람인지를 알았다. 겉만 번질하고 별 쓸모없는 조언들만 반복해온 나는 한 번도 이 변호사를 그리 열심히 돕지 못했었는데.

2014년이 저물어가던 무렵, 나는 이 변호사에게 내 책의 공저자가 되어 줄 것을 청하였다. 만약 나에게 행운이 있다면, 그것을 나누어 준 이 변호사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리고 2015년, 무사히 빛을 보게 된 ‘우리들의 책’은 고맙게도 우리를 더욱 가깝게 한 진짜 행운이 되어 주었다.

이 변호사와 함께 해온 10여년을 돌이킨다. 어찌 이리 나에게 잘하느냐 하였더니, 이 변호사는 내가 귀국한 직후 이 변호사를 찾아 결혼 축의금을 주었다면서, 오히려 그것이 그리 고마웠다 한다. 그러나 정작 나는 이 변호사에게 축의금을 준 기억이 없다. 나도 기억하지 못한 작은 호의를 기억해 준 보석 같은 사람. 나에게 최근의 어려움이 없었더라면, 이 사람이 보석인 것을 내가 어찌 알았을까.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보니 사람을 얻었다. 이래서 인생은 남는 장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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