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삶을 예측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게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면서 우리는 의미 없는 일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에너지의 대부분을 가치 없는 것들로 소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째는 헛된 꿈입니다.

“Boys, be ambitious.” 위 말의 뜻을 헤아리면서 마음을 설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꼭 이루고 싶은 사춘기의 첫 사랑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때는 큰 야망과 큰 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큰 야망을 품는 것은 마치 짝사랑과의 결혼을 마음에 품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춘기 소년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야망과 그 짝사랑이었고, 나는 본능적으로 야망과 짝사랑은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질풍노도의 시절을 살게 하였던 에너지는 야망이나 짝사랑이 아니라 그 때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인생의 섭리’였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본받아 인생의 청사진을 단계별로 그려보기도 하였고 새마을운동에 버금가는 새마음운동을 세워보기도 하였습니다. 연초에는 신년다이어리를 구입하여 연간계획표를 채워 나갔고 변호사로 개업하고 나서는 매출신장계획을 세우고 인맥확장에 필요한 팁을 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계획을 세워서 이룰 수 있는 일들은 실제로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훈을 얻자면 후진국이 국가개발계획을 세우지 않아서 선진국이 되지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계획을 세우지 못하여 돈을 벌지 못하였다거나 재테크계획이 없어서 부자가 되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단순하게 계획을 짜고 큰 야망을 품는다고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붉은 악마’를 표방하면서 전 세계를 향하여 붉은 응원전을 펼쳤던 시절을 되돌아봅니다. 국민 대다수가 붉은 옷을 입고 국가대표팀을 응원하였고 악마를 그저 귀여운 캐릭터쯤으로 과소평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때 단순히 야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월드컵 4강에 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새마을운동을 새롭게 독려하고 붉은 악마 응원을 계획한다면 국민 대다수의 호응과 참여를 다시 얻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을 견인하는 힘은 욕심차원의 야망이나 로드맵이 아닙니다. 진정한 비전을 얻기 위해서는 진정한 삶의 인도자 또는 진정한 삶의 나침반이나 내비게이터를 찾아야 합니다. 그저 욕심에 이끌릴 때 삶의 에너지는 심각하게 소진되어 갑니다.

그 둘째는 헛된 좌절입니다.

헛된 야망을 불필요한 엔진과열에 비유할 수 있는데, 잘못된 좌절은 불필요한 엔진냉각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목표물을 향하여 달려가야 할 상황에서 잘못된 좌절은 인생의 시동을 끄고 멈춰 서게 합니다. 그것은 귀중한 시간과 기회를 잃어버리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합니다. 그 좌절에서 소실되는 정신적 에너지는 얼마나 큰지요.

좌절을 막는 비결은 정확한 상황판단능력입니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에게 또는 동료들에게 묻고 최종적인 권위자에게 묻습니다. 내가 잘 하고 있습니까?

마치 좌절금지를 써놓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저항하라. 상황이 불리해졌더라도 아직 패배로 기울지 않았다면 너무 일찍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지 말라.’

그 이유는 때이른 좌절이 향후 더 큰 좌절을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셋째는 헛된 친절입니다.

친절은 항상 희생이나 위험을 수반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상대방의 친절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상대방의 친절을 이용할까요. 자신 내면의 기준대로 행동하지 않고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서 대응하려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있고 의뢰인들에게도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친절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주변에 많다면 삶의 에너지는 생산적인 부분에서 비생산적인 부분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것들은 헛된 꿈, 헛된 좌절과 헛된 친절이었습니다. 세 가지의 공통점은 그 본질이 진실하지 않고 거짓이라는 점입니다. 거짓은 실체가 없어서 공허하고 어둡고 파괴적입니다. 거짓은 내 에너지를 빼앗기 때문에 내 인생의 적입니다.

그래서 나는 매일 같이 올바른 비전을 찾고 새로운 원동력을 기다리며 참된 친절만을 밖으로 내놓습니다. 그것이 에너지를 아끼면서 인생을 올바르게 가동할 수 있는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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