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어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변하였다. 작열하는 태양의 더위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하던 때가 언제였는가 싶을 정도로 세월의 흐름은 빨라서 조석으로는 한기가 온몸을 타고 폐부로 흐른다. 한해의 시작은 1월부터이지만, 검찰에서는 상반기 인사가 2월 하순경에 이루어지므로 여름 휴가를 지나고 나서는 사실상 하반기가 너무 빨리 스쳐지나가 버린다. 여름 휴가를 지나고 나면 을지훈련, 추석연휴, 국정감사로 이어지면서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연말이 다가온다.

나이가 어릴 때에는 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하였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생각해보니 아무리 힘들었다고 하더라도 어린 시절이 훨씬 좋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시간의 흐름은 쏜살과 같아서 정말 시간이 빨리 흐른다.

어릴 때에는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점이 많아서 머리에 많은 사진을 찍기 때문에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것처럼 느끼지만, 나이가 들수록 일상에 너무나 익숙해지고 궁금한 일이 적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은 아무리 호기심이 많아도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하는 걸 보면 명확하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인생은 두루마리 화장지와 같아서 뒤로 갈수록 빨리 풀린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개봉한 사도라는 영화에는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왕이 되지 못한 왕자의 운명을 아는가’ 하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배역을 받지 못한 배우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람들의 주목과 각광을 받는 무대가 아닌 컴컴한 관객석이 배역을 받지 못하는 배우의 자리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 사람이 인생을 떠날 때 그의 일생이 훌륭하였는가 아닌가를 평가하는 문제는 참으로 지난(至難)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망자의 관을 덮고 나서 그 사람을 평가하게 된다고들 말을 한다. 다만 주위의 사람들에 의한 평가가 어떠하든 스스로의 삶에 후회가 적다면 그의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생의 행복은 수학적으로 말하면 후회의 양에 반비례한다고 할 수 있겠다.

현실의 순간마다 최선을 다한다면 설사 내일 세상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여한이 없는 만큼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맑은 가을 하늘이 높아 보인다. 가끔 하늘에는 기묘한 구름의 모습이 경이로운 형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온갖 모습으로 가려진 인생의 구름 사이로 환하게 비치는 한줄기 햇살처럼 몰입하여 순간에 최선을 다한 후에 이루어진 결과를 설레이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개업지 제한, 형사사건 성공보수 금지, 변호사 수의 급증, 사내 변호사의 증가, 경제 불황 등으로 변호사 시장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인터넷을 통하여 검색하면 시시각각으로 모든 판례의 내용을 샅샅이 상세하게 알 수 있는 시대에, 법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지금 배우는 것들이 과연 장래의 시기에 유의미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일까에 고민하게 된다. 수즉다욕(壽則多辱)이라는 말과 같이 오래 살면 욕먹을 일도 많다더니, 수명은 길어지는데 앞에 놓인 난관은 적지 않다. 인류가 삶을 영위하는 동안 손쉽고 편한 시절이 얼마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요즘은 더욱 힘이 드는 모양이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고 하지만, 아버지처럼 되기도 어려운 시기가 되었다. 세계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고, 성장시대의 모든 기준은 그 수명을 다하였다. 새로운 체제와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오래 사는 것보다는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임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뼈아픈 간난(艱難)의 시기를 지나게 되면 비로소 인간 세상의 이치가 조금씩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인생에 있어 고난과 역경은 누구나 만나게 되는 존재이므로, 어려움은 항상 끝이 있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시간의 흐름을 즐기며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듯하다.

욕망이 적을수록 인생은 행복하다. 이는 모든 사람이 인정하지는 않는 오래된 진실인 것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항아리에 담긴 값비싼 술을 마시는 사치스러운 생활과 명예 따위의 육신적 누림을 갈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전쟁에서 병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용감할 수 있는 것이고, 옛 고승은 기다란 천 한조각으로 몸을 가리고 흰 죽 한그릇으로 배를 채웠기 때문에 세상사에 얽매이거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한낱 필부에 불과한 사람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눈에 보이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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