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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실]서소문에서 서초동까지
김태훈 세계일보 기자  |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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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호] 승인 2015.10.26  10: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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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에서 서초동까지.’ 한국일보 법조팀 기자로 오래 일한 이창민 전 법조언론인클럽 회장이 1993년 펴낸 책의 제목에 우리나라 법조계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 덕수궁 옆에 있었다는 서소문 일대는 1948년 출범한 신생 대한민국의 법조 관련 기관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의 경성공소원(현 서울고법)과 경성지방재판소(현 서울중앙지법) 건물이 광복 후 그대로 우리 사법시설로 쓰였기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 옆의 높다란 변호사회관 건물도 서소문 법조타운 시대의 산물이다.

그 시절에는 ‘서소문’이 곧 법조계와 동의어였다. 정부수립 후 41년이 지난 1989년에야 변화가 생겼다. 한강 이남 서초동 땅에 새로 지은 서울법원청사 건물로 서울고법과 서울민·형사지법 등이 일제히 이전했다. 법원만이 아니다. 서울고검과 서울지검 역시 40여년의 서소문 시대를 마감하고 서초동 새 검찰청사에 둥지를 틀었다. 이제 한강 이북에는 대법원과 대검찰청,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신설기관이었던 헌법재판소만 남았다.

법조기자실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1980년대 후반&sim1990년대 중반의 법조계 사정에 정통한 한 검찰 관계자가 “그 시절에는 언론사 법조팀도 ‘서초동팀’과 ‘서소문팀’으로 나뉘어 있었지”라고 회상하는 것을 들었다.

서초동에 상주하며 서울고·지법과 서울고·지검을 담당하는 기자들을 ‘서초동팀’, 서소문 부근에 머물며 대법원과 대검, 헌재를 취재하는 기자들을 ‘서소문팀’이라고 각각 불렀다는 것이다. 수학 공식처럼 표현하면 ‘법조팀=서초동팀+서소문팀’인 일종의 과도기였다.

그때는 법조팀 기자들이 지금처럼 매일 얼굴을 마주하기 어려웠으리라. 휴대전화도 없었을텐데 팀장이 멀리 떨어진 팀원과 기사 방향 등을 놓고 의견을 나누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초동팀 후배한테 “야 이 XX야, 당장 뛰어와”라는 서소문팀 선배의 불호령이라도 떨어진 날이면 그 후배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검사들도 사정이 비슷했나 보다. 서초동 이전 직후 서울지검장을 지낸 김경회 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은 회고록에 이렇게 적고 있다. “1주일에 두번씩 검찰총장께 보고를 해야 하는데 그런 날은 아침에 서초동 대신 서소문으로 출근했다. 서울지검은 규모가 크고 직원도 많다 보니 가끔 사고가 생겨 총장께 꾸중을 듣곤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서초동으로 이동하며) 한강을 건널 때 강물에 다 흘려버리고 부하들에게는 일일이 전달하지 않았다.”

천하의 서울지검장이 상사에게 불려가 혼쭐이 나고 복귀하는 길에 한강을 바라보며 홀로 분을 삭인 것이다.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이 서초동 반포대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있는 모습에만 익숙한 요즘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얘기다.

이런 ‘이산가족’ 같은 상태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95년 대법원과 대검이 함께 서초동으로 건너왔다. 서소문 법조타운의 상징과도 같았던 옛 대법원 건물은 여러해에 걸친 전면적인 보수작업 끝에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으로 거듭났다. 숱한 거물급 인사들을 불러 조사하고 붙잡아 구치소·교도소에 보냈던 옛 대검 건물도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으로 탈바꿈했다. 이제 서울지검장은 총장에게 보고하러 갈 때 한강 대신 도로 하나만 건너면 된다.

대법원과 대검의 이전으로 서초동 법조타운이 완성된 지 꼭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서초동’이 새롭게 한국 법조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선지 한때 과천의 법무부도 서초동 이주를 고려했다고 한다. 헌재의 경우 지금의 재동 청사를 짓기 전 서초동에서 2킬로미터쯤 떨어진 양재동에 입주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재판관들이 ‘대법원과 너무 가까워 싫다’는 다수의견을 내 기각되고 말았다는 후문이다.

법조계의 서소문 시대는 영영 끝났지만 법조기자실에는 서소문 시절의 유산이 하나 남아 있다. 언론사마다 사정은 좀 다르겠으나 대검 출입기자가 헌재도 함께 취재하는 관행이 바로 그것이다. 대검과 헌재가 가까웠을 때 생겨난 규칙이 아직도 법조기자단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서울시교육청 출입기자가 기상청도 같이 챙기는 언론계의 오랜 전통과 흡사하다. 기상청은 동작구 보라매공원 부근으로 옮기기 전 오랫동안 교육청 바로 옆에 있었다. 편의상 교육청과 기상청을 한 출입처로 묶은 선배 기자들의 결정이 그대로 ‘관습헌법’이 되었다.

한달에 한번 헌재 선고가 있는 날 대검 출입기자들은 지하철 3호선 교대역에서 열차를 타고 안국역까지 30분 이상을 이동한다. 기사를 마감한 뒤 짬을 내 옛 서소문 일대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서초동에서 서소문까지’ 가는 뜻깊은 여정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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