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중등교과서 국정화 고시로 정치권과 사회세력간의 논쟁이 뜨겁다. 정부가 검정제인 한국사 중등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고시를 발표하자, 역사학계와 교육계에서 반발하고 야당도 이에 반대한다. 국정화를 찬성하는 단체와 반대하는 정당과 사회단체의 집회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그런데 현대 인지심리학이 밝혀낸 수많은 인식론적 오류에 대한 연구는 여러 사람이 동일한 사실(事實)을 인식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사실을 진술하는 언명(言明)이 달라질 수 있음을 증명한다. 우리는 관심이 있는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순수한 객관적 기술(記述)이라고 보는 관점이 학계에서 배척된지는 오래다. 단순한 사실(事實)을 기술(記述)한다고 해도, 항상 사료의 불완전과 부족, 글을 적는 이의 주관이 개입하여 발생한 사실(事實)과 기록된 사실(史實)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객관적인 사실로 알고 있는 사건 중 어디까지가 실제로 발생한 일이고, 어디까지가 사후에 왜곡된 사실인지는 새로운 사료의 발굴과 그 사료의 신빙성에 관한 연구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렇듯 과거의 사실에 관한 인간의 인식이, 그 인식을 기록한 자료가, 그 자료를 해석한 역사기록이 불완전하고 주관적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면, 교과서를 단일화하여 하나의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정책은 건전한 상식과 역사라는 학문의 본질에 반하는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역사만 그러하겠는가? 최근 지난 유신체제와 제5공화국 하에서 확정된 대법원의 판결이 재심에 의하여 번복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보도된다.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재판을 겪으면서 법률가들이 부딪히는 문제는 사실을 근거지우는 증인의 신빙성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법정에서조차 위증이 적지 않게 발견되고, 십계명에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는 계명이 포함된 것을 보면,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은 재판관만의 몫은 아니리라. 어제의 확정된 판결이 오늘은 불법(不法)적 공권력의 행사로 평가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모든 제도와 이론은 잠정적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고 인간의 제도는 늘 그 제도가 전제하는 숨은 가정 하에서 작동한다.

지난 7월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변호사의 보수는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자유로운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원칙이나, 형사소송은 국가형벌권을 실현하는 절차로서 당사자의 생명, 신체의 자유, 명예 등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형사사건에 관한 변호사의 보수 중에서…이른바 ‘성공보수약정’은 형사사법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공정성·염결성이나 변호사에게 요구되는 공적 역할과 고도의 직업윤리를 기준으로 볼 때, 선량한 풍속 내지 건전한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하고 나아가 “종래 이루어진 보수약정의 경우에는 보수약정이 성공보수라는 명목으로 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민법 제103조에 의해 무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대법원이 이 판결을 통해 형사사건에 관한 성공보수약정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음을 명확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향후에도 성공보수약정이 체결된다면 이는 민법 제103조에 의해 무효”라고 판시하였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의 구체적 결론에는 동의하지 못할 바 아니지만, 그 판결의 이유 가운데 “이 판결 이후에 체결되는 성공보수약정은 민법 제103조에 의해 무효”라는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보더라도 지나친 것이다. 헌법은 사법권을 법원에 주었을 뿐 입법권을 준 것이 아니다. 더구나 대법원 판결이라 하더라도 그 판결이유에 구속되는 인적 범위는 당해 사건의 당사자와 그 사건의 파기 환송심에 한정된 것이 아닌가?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구체적 분쟁해결과정에서 일관된 법해석을 통해 일반적인 법원리를 천명하는 것은 그 본질에 맞는 일이지만, 대법원의 판결이 있은 후에 이루어진 새로운 약정은 무효라고 미리, 일반적으로 선언하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분쟁의 효력을 미리 언명하는 것은 지나친 행동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나친 것은 부족함에 미치지 못한다. 역사를 독점하려는 행정부의 시도나 입법으로 정하여야 할 사항을 판결이유로 정하는 시도는 지나친 것이다. 국가기관은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은 제도가 부여한 권한의 한계를 인식하는데서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행정부, 스스로의 권한을 자각하는 사법부를 보고 싶다. 국가기관의 자기 절제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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