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9월 4일 ‘SeMA 예술가길드 아트페어-공허한 제국’을 기획한 홍경한 예술감독님의 초대로 전시회 오프닝에 참석했다.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은 사당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로 강남에서 접근성이 매우 좋고, 대한제국시절 벨기에 영사관을 복원한 역사적 건물로 건물 및 정원이 참 아름다워 내가 무척 좋아하는 곳이다.

회사 일을 끝내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음에도 정원에서 펼쳐지던 개막 축하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시대정신을 다룬 많은 작품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작품은 솜을 주 소재로 작품활동을 하는 노동식 작가의 ‘2015년 희망고문’으로 까만 바다 위에 선미만 남은 침몰하는 배를 보면서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심승욱 작가의 ‘부재와 임재 사이’라는 세월호를 모티브로 한 폐허를 다룬 작품, 홍순명 작가의 ‘사소한 기념비’ 연작 등을 비롯한 다른 작품들 역시 공허한 제국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결코 밝지 않은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고, 주로 설치 미술작품이 많았지만, 회화와 행위 예술도 있었다.

이번 전시기획은 예술가 길드(artist guild)라는 예술인의 조합공동체를 만들어 시장자본에 종속되기보다는 자본주의시대의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작품들의 자생적인 판로를 개척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상업화랑이 관여하지 않고 관객과 컬렉터간 직거래를 주선해 주는 이런 대안적 아트페어는 처음 시도된 것으로 시장성과에서 독립적이며 실험적, 도전적 작품세계를 선보여 온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 작가들의 예술성을 재조명하고, 시대성을 함유한 주제의식을 공유하여 한국미술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간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이 전시는 짧은 기간(4~13일까지 10일간)에 비하여 여러 논쟁거리를 불러일으켰는데, 첫째는 화랑협회의 반발 및 비난이었다. 즉 아트페어라는 형식으로 공공미술관이 판매를 주선했다는 시도 자체는 시중 화랑들의 격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국내 147개 화랑연합체인 화랑협회는 공공기관인 서울시립미술관이 미술관으로서 본분과 기능에 어긋난 ‘상업적 아트페어’를 전시라는 명목 하에 진행했음을 개탄하며 판매행위 중지, 공개사과,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즉, 미술관은 시장기능에 개입하지 않도록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며 작품거래나 유통행위는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에서 금지하는 내용이라는 주장에 대해 서울시립미술관 측에서는 이는 예술가들의 지속적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자생적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작가와 컬렉터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 것일 뿐이라는 해명을 해야 했다.

개인적으로 동 전시의 작품들은 상업적 컬렉션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작품들이 대부분으로 도록 등에 작품가격이 표기된 것도 아니었고 별도의 판매부스 등도 설치되지 않았기에 이러한 화랑협회의 주장은 다소 과장된 점이 없지 않다고 보였지만,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을 살펴본 결과 제2조 제2호의 정의규정에서 ‘미술관’은 문화·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조각·공예·건축·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을 말하기에 화랑협회의 주장도 일견 타당해 보였다.

하지만, 화랑협회가 공개 성명을 내면서 서울시립미술관과 대립각을 세우고 아티스트 길드를 몰아세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만큼 우리 미술시장의 경기가 어렵다는 반증일 것으로 보여 위 전시의 취지인 비상업적 예술인들의 자생적 판로에 대한 지원을 할 방법이 없을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머지 하나의 이슈는 리퍼트 미 대사의 피습을 그린 홍성담 작가의 ‘김기종의 칼질’ 전시 논란이었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선두주자인 홍성담 작가는 작년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전시그림 철거와 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임까지 초래한 바 있었는데, 이번 출품작 역시 김기종이 리퍼트 대사를 공격하는 모습으로 테러를 미화했다는 비난을 받아 결국 작품을 전시 중단하게 되는 사태가 초래되었다. “김기종은 한민족의 운명을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울분과 절망감을 칼로써 표현했다”는 작품의 요지였는데, 전시를 관람할 당시 내게 이 작품은 미감 등에서 큰 울림이 전혀 없었으므로 작품 안에 적힌 빽빽한 글자를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스쳐간 작품이었다. 홍경한 감독은 이 작품으로 인한 논란으로 전시의 본래 취지가 이데올로기화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이 작품을 철거하였고, 홍성담 작가는 이를 “표현의 자유 탄압”이라고 비판하였으며, 한편 어버이연합 150여명은 테러를 옹호한 홍성담 작가의 자택을 방문해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풍경은 우리들이 싫어하는 생각의 자유를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의 현실이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