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년 전의 일이다. 당시 기자는 모 방송사의 노조위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회사의 보도국장의 소개로 L변호사와 점심 식사를 하게 됐다. 보도국장이 ‘이 친구가 우리 회사 노조위원장’이라고 소개를 하자 L변호사는 대뜸 “내가 노조 파괴 전문가”라고 응수했다.

노조위원장을 앞에 두고 자신을 ‘노조 파괴 전문가’라고 소개하는 그에게서 적잖이 당황스러움을 느꼈지만 처음에는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간혹 일부 법조인들이 기자를 처음 만날 때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약간의 엄포성 발언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역시 그런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날 식사 도중 그는 자신의 ‘실적’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당시 유명했던 K사 노사갈등 사태에서 노조를 파괴한 것이 자신이라고 자랑한 그는 노조파괴기법을 공개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사소한 이유를 가지고 노조위원장이나 사무국장 같은 주요간부를 징계해 노조를 자극하고 과격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라는 것이 그가 밝힌 ‘비결’이었다.

심지어 노조 측이 당장 반응하지 않으면 계속 소소한 행정상의 문제를 만들어 노조를 자극해야 한다는 팁까지 제시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시비를 걸어야 하는데 ‘법률전문가가 나서서 해석의 여지가 있는 단협조항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K사는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 노사간의 이견이 갈등으로 번지고 갈등이 악성분규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L변호사는 “노조가 생각보다 멍청하더라”며 노골적으로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노조 집행부는 함정이라는 것을 알고 다른 대응방식을 찾으려 하지만 ‘노조마다 꼭 강경파들이 있기 마련이어서 결국에는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먹혀들고 말더라’는 것이었다.

노조가 파업 등 강경한 투쟁에 나서면 회사는 여론전을 통해 노조를 고립시키고 뒤이어 직장폐쇄를 한 다음 공권력을 투입하는 순서를 밟으면 “노조 정도는 쉽게 박살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L변호사에 따르면 그런 방식으로 노조가 박살난 곳은 K사를 비롯해 7~8곳에 달했다. 그는 그러한 ‘노조 파괴 프로세스’를 자신이 설계했다면서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기자가 “오래 전부터 활용되고 있는 노조파괴 작전으로 별로 특별하지는 않은 것 같다”라고 하자 그는 “비슷해 보이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노하우가 있다”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참다못한 기자가 “변호사가 노조파괴를 전문으로 한다는 것은 좀 심한 것 아니냐”라고 일침을 놓으려 했지만 그는 오히려 “그게 돈이 된다”며 전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노조는 이제 약자가 아니다”라거나 ‘법을 먼저 어긴 건 노조”라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그 충격은 “노조파괴 작업이 돈이 된다”는 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당시 기자가 소속됐던 방송사의 이사장과 먼 친척뻘이 된다는 그는 “이사장님이 나를 회사의 자문변호사로 선정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확인사살’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변호사도 직업이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호구지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길은 아니다. 법률 전문가로서 정의와 인권, 사회적 약자보호를 신중히 고려해야 하는 공익성이 있는 직업이다.

‘정의의 붓으로 인권을 쓴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L변호사가 과연 법조인으로서 기본적인 자질과 품성을 갖췄는지 의문이다. 아울러 그런 사람이 법조인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는 점에서 법조인 양성제도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지울수 없다.

최근 일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사법시험 존치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로스쿨 제도가 당초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가진 자들만의 ‘현대판 음서제’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사법시험이 됐든 로스쿨이 됐든 법조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걸러내는 기능이 없다는 점에서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자는 논의가 앞서지 않는다는 점은 매우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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