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유럽의 위기는 우리나라에게도 낯설지 않다. 폭증하는 난민과 망명신청자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유럽의 모습은 수년 전부터 울려대던 경고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이다. 미리 대비하지 못한 후과(後果)가 크다.

현재 유럽의 사태는 정치적 박해로 인한 난민(refugees) 문제와 일반적인 이주민(migrants) 문제가 혼재되어 있다. 선을 긋듯 구분하긴 어렵지만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난민 문제의 근인(近因)은 시리아 분쟁이다. 시리아 분쟁이 5년을 넘어서면서 2200만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산(離散) 되었다. 500만명 이상의 시리아인들이 터키, 레바논, 요르단 등 주변국들에 수년째 체류하며 국제사회의 지원에 생존을 의탁하고 있다. 분쟁 종식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가져온 돈이 떨어지고 난민생활의 고단함을 견디지 못한 시리아인들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을 향하고, 경제위기에 처한 그리스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인해(人海)가 발칸반도를 넘어 헝가리에 닿은 것이다. 금년말까지 약 80만명의 시리아인들이 유럽을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리아 난민 위기는 규모나 인도적 여건에 비추어 그 자체로 심각하지만 시리아 내전이 종식된다면 잦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즉, 장기적인 도전은 아니다.

이주민 문제는 보다 복잡하다.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던 2013년 10월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 섬 인근 이민선 좌초 사건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에리트레아와 소말리아 출신이었다. 이들은 오랜 분쟁과 정치적 불안정, 기후변화로 인해 잦아진 자연재해를 피해 안정과 일자리를 찾아 유럽을 향한 것이다. 지금 이순간도 많은 이들이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고 있다. 이는 일면 유럽과 아프리카의 인구 불균형으로 인한 불가피한 현상이며, 원천국에서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해결이 불가능한 장기적인 과제이다. 수년 전부터 이미 심각한 문제였지만, 피해가 스페인,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국에 한정되어 있어 유럽차원의 대비책 마련이 미비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전유럽적인 혼란이다.

유럽의 위기는 우리에게 몇 가지 화두를 던진다. 먼저 난민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 7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난민법을 제정, 시행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난민 수용 규모는 미미한 수준이다. 현재까지 800여명의 시리아인들이 먼 우리나라까지 와서 난민지위를 신청하였으나, 정치적 박해 우려를 입증한 단 3명만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물론 우리나라가 600여명의 시리아인들에게 내전이 종료될 때까지 우리나라에 체류하고 직업도 구할 수 있도록 인도적 체류를 허가한 것은 이웃국가들보다 진보한 모습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기대는 더 크다.

그렇다면 난민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여 보다 많은 이들을 수용해야 할까? 쉬운 문제는 아니다. 난민이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지 못한다면 난민들을 위해서도,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터키 해변에 떠밀려온 한 소년의 주검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따뜻하지만, 우리 사회의 난민에 대한 인식은 그렇지 않다. 이는 이주민 일반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결국 보다 근본적으로 이주민 문제로 귀결된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180만명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결혼하는 10쌍 중 한쌍은 국제결혼이다. 우리나라의 인구감소 추세를 볼 때 이주민 유입과 다문화 가정의 증가는 피할 수도 거스를 수도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보면 이주민들이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범죄를 일으키며, 문화를 어지럽힌다는 주장이 담론을 장악한다. 21세기 들어 2억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이주하는 세계화된 인간대이동의 흐름과 이주민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역행하는 인식이다.

이주민을 포용하고 성공적으로 통합시키지 않으면 그들은 주변화되고 극단화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프랑스처럼 이민자 출신 자국인에 대한 테러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심치 않게 들리는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끼리의 폭력사태는 주변화된 그룹들이 폭력화될 수 있다는 경고음일 수 있다.

사회 전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권과 정부는 이주민들에게 포용적인 정책을 마련하고, 이주민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불법체류 외국인 자녀에게 한시적으로 기본적인 교육 및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주아동 권리보장기본법안’의 제정은 그 첫 걸음일 수 있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중견국을 자처하면서 자국내에서 아동의 무국적화를 방기하고, 교육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나아가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를 범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학교에서 다른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한국인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단일민족에 대한 강조는 시대착오일 수 있다. 언론도 이주민에 의한 범죄를 조명하며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지 말고, 이주민들의 긍정적 기여를 강조해야 한다. 이러한 포괄적인 노력은 통일을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이처럼 유럽의 위기가 던져주는 과제는 생각보다 현실적이며, 시급하다. 미리 대비하지 않는다면 그 대가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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