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지게 가난했던 선배는 그 지독한 가난 때문에 대학교도 가지 못했다. 변변한 직장도 갖지 못했지만 타고난 성실성으로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는 작은 집도 하나 마련했다. 그의 어머니는 원래 다리가 불편하였는데 나중에는 거동도 자유롭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졌다.

그는 힘들게 모은 3000만원을 어머니께 드렸다. 그 돈으로 좋은 병원에 가서 치료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드시고, 어디 경치 좋은 곳으로 구경도 다니시라고 하였다.

어머니는 그 중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평소 다니던 교회에 그 3000만원을 몽땅 헌금했기 때문이다. 그 소리를 들은 선배는 기가 막혔다. 고민 끝에 교회를 찾아가서 목사님을 만났다. 다는 아니더라도 절반인 1500만원만 돌려 달라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처럼 착한 선배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섰다. 얼마 후 어머니는 교회에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다리가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이다.

파스칼인가 누군가가 신을 믿는 것이 이득이 된다고 하였다. 막상 죽었을 때 신이 없으면 본전이지만 만에 하나 신이 있다면 어떻게 감당하겠는가가 그 논리다.

그 계산법은 맞지 않다. 만일 천국이라는 것이 정말 없다면, 있다고 생각하여 현세에서 누릴 즐거움을 미루고 산 것이야말로 엄청난 손실이 되기 때문이다.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얼마 전에 방영된 넥스트 휴먼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불치병 유전자를 가진 부모에게서 건강한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엄마의 난자 6개를 채취하고 아빠의 정자 6개를 채취하여 시험관에서 수정시켜 6개의 배아를 만든다. 배아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다. 그 중 4개의 배아에 불치병 유전자가 있고 나머지 2개의 배아에는 그 유전자가 들어있지 않다. 그 2개의 배아 중 더 건강한 배아를 엄마의 자궁에 착상시킨다. 10개월 후에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고 지금 잘 자라고 있다.

지금까지는 범죄 현장에서 수집한 머리카락 등에서 DNA를 채취하고 범죄전력자 DNA를 담아 놓은 데이터베이스에 그 DNA를 넣고 돌려 비교검색하는 방법으로 범인을 검거해왔다. 데이터베이스에 일치하는 DNA가 없으면 그 방법은 범인 검거에 무용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DNA 자체에서 범인의 주요 신체 특성을 분석해낸다. 조만간 DNA만으로 범인 몽타주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반면, 과학을 빙자한 엉터리 장사도 많다. 예를 들어 임신 중에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태교에 좋다는 것 등이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가계 지출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교육비도 과연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만큼 아이들의 학업성적에, 일류 대학교 입학에, 나아가 인생 전반적인 성공에 도움이 되는지도 과학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과학 역사상 둘째가라고 하면 서운해할 만한 천재인 아이작 뉴턴은 엉뚱하게도 연금술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뉴턴이 그 망상 때문에 낭비했던 시간만 없었다면 그는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또 다른 과학적 업적을 이루어냈을 것이다.

현세의 삶이 중요하다면 시간과 돈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내가 쓰고 있는 시간과 돈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를 위해서 제대로 기여하고 있는가를 측정해봐야 한다.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서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한다. 그래서 이름을 알리는 것, 고급차를 사는 것, 권력을 쥐고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돈은 더 있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게 해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그만한 돈을 벌기 위해서 죽어도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사양하겠다. 개같이 벌면 절대로 정승처럼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어머니, 내 아내, 나의 아들들, 내 사무실 직원, 그리고 일로 만난 고객들에게 괜찮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내 안팎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앙드레 지드는 “사람의 행복은 자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의 수용에 있다”고 말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면 격하게 동감한다. 내가 이행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면 그 의무를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지난 2년 동안 이곳에서 글을 써왔다. 기회를 주신 대한변협신문에게 감사를 드린다. 덕분에 그동안 소식 없이 지내왔던 대학 동기, 검사 선후배 등으로부터 이메일도 받았고 전화, 문자로 오래간만에 인사도 나눌 수 있었다. 특히, 몇 분께서는 빠짐없이 읽어주시고 의견도 주셨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매월 어김없이 다가오는 마감 기일에 압박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헤어질 때의 감정은 어떤 경우든 항상 ‘시원섭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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