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손자가 돈을 만지면 꼭 두 손을 씻도록 가르쳤다. 온갖 사람들이 번갈아서 꼭 쥐는 게 돈인데, 어느 지저분한 것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노파심이었다. 할머니가 동네 시장에서 돈을 쓰는 모습을 보면 그 당부의 속뜻을 알 것 같았다. 할머니는 무얼 사면 혹시 지폐 한장을 더 내 줄까 싶어 엄지에 침을 묻혀 구기듯이 문질렀다. 막 생선을 손질한 아주머니도 거스름돈을 돌려줄 때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나 아주머니나 자기 것이 된 지폐들은 앞뒷면과 방향을 맞춰 조심스레 지갑에 접어 넣었다. 구겨서 주고, 받아 문질러 펴고… 아끼면 아낄수록 더러워지는 게 돈의 숙명인가 싶었다.

그렇게 더러워도 끌어안는 건 또 사람의 숙명일 테다. “돈 냄새 잘 맡는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 한곳에 오래 묵은 돈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풍긴다고 한다.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현금 1억원이 쌓인 집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안다”고 했다. 온습도를 조절하는 최신식 김치냉장고에 묻어 둬도, 지폐더미 특유의 역한 냄새는 숨김없이 비어져 나온다고 그는 말했다.

허풍인지 아닌지 후각적 심상에 공감할 방법이 도통 없었는데 수년전 신문기사에 한 국회의원 부인의 증언이 실려 있었다. “돈 냄새가 진동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신권은 휘발유 냄새, 구권은 퀴퀴한 냄새…” 서재를 꽉 채운 사과상자 냄새가 그리 향긋하지는 못했나 보다.

돈의 악취 때문에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어느 지폐계수기 제조업체는 기계 안에 살균·탈취장치가 내장됐다고 광고했다. 지폐에서 나오는 각종 악취, 섬유먼지와 세균 때문에 은행 창구직원들이 호흡기질환에 시달린다는 진단과 함께였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뒤 금고에 넣으면 역한 냄새가 싹 빠진다며 천연소재 탈취제를 판매하는 업체도 영업 중이다.

마치 빨래처럼 돈을 세탁한다는 표현은 이제 어엿하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돼 있다. 비자금이나 뇌물과 관련된 돈을 정당한 돈처럼 탈바꿈해 자금 출처 추적을 어렵게 하는 일이라는 게 ‘돈세탁’ 뜻풀이다. 분냄새를 지우며 귀갓길 알리바이를 마련하는 음험한 불륜남 같다. ‘검은돈’도 표준어다. 붙여 써야 부정자금의 뜻이라 한다.

만사가 법조계로 모이지만, 수사부터 재판까지 과정마다 이슈가 되는 사건은 역시 검은돈 사건들이다. 이 검은돈들은 면(綿) 화폐가 아니어도 기어코 주변에 악취를 남기는 모양이다.

부정한 자금흐름들을 자주 들여다본 한 특수통 검사는 “사람이니까 실수를 하고, 그 실수에 기대 비로소 수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길어 올려진 공소장과 판결문을 열람할 때 기자들이 내뱉는 말 중 하나는 “세상에 돈 버는 방법 참 많다”는 것이다. 그 문서들에 적힌 시점들은 대개 수년 전이고, 이른바 성의를 표현하는 방법들은 화폐의 형태만큼 다양하다. 일감 몰아주기, 사업부지 운영 위탁, 하청업체 임원 선임… 기사 경험이 많은 선배들마저 “예전보다 리베이트 흐름도를 그리기 어렵다”고 푸념한다.

전직 대통령의 친형이 검찰에 다시 불려온 이유도 포스코의 기발한 정치자금 제공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판결도 기다릴 일이나 현재까지 밝혀지기로는 원래 있던 협력업체의 일감을 빼앗아 정치인 측근의 업체들에 몽땅 넘겨준 구조다. 그 맛만큼은 짭짤하거나 달콤했겠지만, 누군가는 악취를 맡았다. 유착 의혹이 이는 포스코의 협력업체가 너무 많아서, 검찰은 정준양 전 회장 취임 이후 신설된 법인, 서울 중앙의원과 연결되는 법인들로만 수사 범위를 좁혔다. 그렇게 간추린 3곳에서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쪽으로 흘러간 냄새를 풍기는 돈이 30억원 가량이란다.

그리 흐르기 이전에는 누군가 침을 묻혀 세고 앞뒷면을 맞춰 품었던 돈일 테다. 그나마 검찰은 “과연 이것이 전부겠느냐”고 말한다.

돈 만지고 손 씻으라 한 사람이 우리 할머니뿐이겠는가, 돌고 도는 돈을 무서워하라는 당부는 돈의 태생부터 있었다. 머니(money)의 어원은 라틴어 모네레(monere), 경고하고 기억한다는 뜻이다. 이 라틴어가 파생된 말 중에는 몬스터(monster)가 있다. 갑자기 떼돈을 버는 장면을 두고 영어권에서 ‘메이크 어 킬링(make a killing)’이라는 관용어를 쓰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화폐수집 전문업체인 화동양행이 경매에 부친 조선 후기 ‘1원’ 은화에는 태극 휘장과 함께 ‘1WARN’ 영문 표기가 선명하다. 1888년에 경성전환국에서 독일 기술진이 제조했다는데, 개화기 조선에 들어온 서양인들을 위해 들리는 대로 적지 않았을까 싶다. 1원마다 경고를 새겼다면 억측일까, 3200만원이라는 은전 한닢의 평가가치에 입을 떡 벌렸다가 ‘WARN’ 사인 보고 정신 차린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