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맡았던 살인사건이 있었다. 피고인은 24세 남자. 수차례 재수에 삼수, 사수를 하다가 군대를 다녀와 어렵사리 본 수능으로 대학생이 되었다. 피해자는 그의 여자친구. 남자는 어머니에게 여자친구를 소개해주겠다며 여자친구를 집으로 불렀고, 어머니가 잠시 장을 보러 간 사이 여자친구와 단둘이 있게 되었다. 둘은 이야기를 주고 받던 도중 사소한 문제를 두고 다툼이 있었고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여자의 목에 손을 얹어 조르게 되었다. 그 와중에 서로 중심을 잃고 쓰러져 남자의 무게가 여자의 목에 오롯이 실리면서 여자가 사망하게 된 것이다.

얼마전 연극무대에 다시 오른 ‘에쿠우스’라는 작품이 있다. 앨런이라는 17세 남자아이가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찔렀다. 그의 심리치료를 맡게 된 이는 자신의 치료행위에 염증을 느껴가던 정신과의사 다이사트다. 둘은 앨런의 과거를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연극은 초연 이후 지금까지도 최고의 연극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앨런 역을 맡는 배우는 대성한다는 얘기도 낳았다. 그만큼 어려운 배역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연극은 앨런의 과거를 따라가면서 앨런의 부모를 보여준다. 그들은 아들을 사랑했으나, 앨런은 달리 느꼈다.

앨런은 아버지의 권위에 짓눌리고 어머니의 도덕적 잣대로 억압된 청년임이 드러난다. 어릴적부터 말을 타고 싶었지만 위험하다는 부모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고 사랑하는 여인과의 육체적 관계를 갈망하지만 어머니의 종교적 율법은 그의 모든 욕구를 억압한다.

결국 억압된 앨런의 자아는 사랑하는, 갈망하는 것에 대한 파괴로 나아간다. 그가 말의 눈을 찌른 행위는 어려서부터 가장 동경하던 존재, 아버지의 율법과 어머니의 정언명령에서 자유로운 존재, 관능의 상징이기도 한 말들을 파괴한 것이다.

다이사트 박사는 이런 앨런을 마주한다. 그는 분명 앨런을 정상적인 사회구성원, 다시 말해 욕망을 억누를 줄 알며, 이를 파괴적인 형태로 분출시키지 않아야 하는 회색빛의 개인으로 환원시켜야 한다. 그러나 다이사트는 앨런을 치료하면서 비록 반사회적으로 표출되기는 하였으나 앨런 속에 내재한 순수한 형태의 욕망, 열정에 끌려가고 동화되어간다. 다이사트의 갈등은 자신이 치료라는 이름으로 사람에게서 욕망을 거세하던 위치에 대한 고뇌에서 비롯된다. 다이사트는 자신이 재단하고 억압하고 순응시킨 열정이 순수한 인간 본연의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관객은 앨런의 순수함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앨런이 왜 반사회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지나친 억압, 그것도 ‘부모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억압이기에 앨런은 정상적인 몸부림을 칠 수도, 쳐서도 안 되는 시간과 공간을 살아온 것이다.

살인 사건의 피고인은 시종일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사람을 죽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모습이다. 그런데, 서면을 보면 볼수록 살인이라기 보다는 과실치사로 볼 여지가 많아 보였다. 그러나 피고인은 다소 과한 1심 양형을 다툴 생각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식을 잘못 두었다는 말로 첫 미팅의 말문을 열었다. 그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살인을 저질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의 어머니 역시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어머니이기에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떡하지’라는 말이 덧붙여질 따름이었다. 다만, 한 가지 지금도 기억에 남는 어머니의 말은, “저러면 지옥 가는데 우리 아들 어쩌지”라는 말이다.

과연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얘기들인가 싶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에는 우리는 바로 키웠는데 아들이 저 모양인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오히려 종교적으로 지옥에 가면 어떡하냐는 말이 먼저였다. 피고인이 설 자리가 저 집에 과연 있었을까.

접견을 갔다. 부모에 대한 얘기를 하라고 했다. 좋은 얘기만 한다. 몇번을 더 갔다. 아마 부모보다 접견횟수가 많아졌을 때였다. 피고인은 울면서 집이 싫다는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새벽마다 엄마 손에 이끌려 나가던 교회도 싫고 집에 들어가면 대학에 제대로 못간 자신을 쳐다보는 아버지의 시선이 재수, 삼수, 사수보다 싫었다고 한다. 그는 재수를 하기 전 최상위권 성적이었다. 여자친구 목에 왜 손이 올라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그 때 잠깐의 스킨십이 오갔고, 여자친구가 더는 안 된다고 했고, 갑자기 며칠간 철야기도를 하러 갈 것이라 했단다. 그는 가지 말라고 했다가 말다툼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다툼 와중에 여자친구는 그에게 헛살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피고인을 보면서 앨런이 떠올랐다. 목에 손이 올라간 순간 그 앞에는 부모가 보이지 않았을까? 분명 사랑이지만 그에게는 숨쉬기 조차 어려운 그런 공간이 펼쳐지지는 않았을까? 앨런은 말의 눈을 찌를 때 무엇을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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