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5. 7. 9. 선고 2014도16051 판결

구 도로교통법 제44조 제2항, 제3항의 취지 및 이 규정들이 음주운전에 대한 수사방법으로서의 혈액 채취에 의한 측정 방법을 운전자가 호흡측정 결과에 불복하는 경우에만 한정하여 허용하려는 취지인지 여부(소극) / 음주운전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음주운전 혐의가 있는 운전자에 대해 구 도로교통법 제44조 제2항에 따른 호흡측정이 이루어졌으나 호흡측정 결과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 혈액 채취에 의한 측정 방법으로 다시 음주측정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여부(한정 적극) 및 이때 혈액 채취에 의한 측정의 적법성이 인정되는 경우

1. 사실관계

피고인은 승용차를 운전하고 이 사건 사고 장소인 편도 4차로 도로의 1차로를 진행하다가 전방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승용차의 뒷부분을 세게 들이받았는데, 그 차량이 앞으로 밀리면서 다른 차량 2대를 연속으로 충격하게 하였다. 피고인은 곧바로 그 자리에서 1, 2m 후진한 후 중앙선을 넘어 다시 진행하면서 왼쪽으로 원을 그리듯 회전하여 중앙선을 또다시 넘은 다음 당초 진행방향의 차로 쪽으로 돌진하였고, 그곳 2, 3, 4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다른 차량 3대를 잇달아 들이받고 나서 보도 경계석에 부딪혀 멈췄다. 이 사고로 인하여 피해차량들에 승차하고 있던 10명의 피해자들에게 2~3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었다.

교통조사계 소속 A 경사는 사고 직후 현장에 출동하여 사고 경위를 파악한 다음 피고인과 함께 경찰서로 이동하였고, 그곳에서 호흡측정기로 음주측정을 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024%로 측정되었다. 당시 피고인은 얼굴색이 붉고 혀가 꼬부라진 발음을 하며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한 채 비틀거리는 등 술에 상당히 취한 모습을 보였다. A 경사가 경찰서 내에 대기하던 피해자들에게 피고인의 호흡측정 결과를 알려주자, 일부 피해자들은 측정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A 경사에게 혈액 채취에 의한 측정을 요구하였고, 이에 A 경사는 피고인에게 호흡측정 수치를 알려주고 “피해자들이 처벌수치 미달로 나온 것을 납득하지 못하니 정확한 조사를 위하여 채혈에 동의하겠느냐. 채혈 결과가 최종 음주수치가 된다”고 말하며 혈액 채취에 의한 음주측정에 응하도록 설득하였다. 이에 피고인이 순순히 응하여 ‘음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자 혈액 채취를 승낙한다’는 내용의 혈액 채취 동의서에 서명·무인한 다음 A 경사와 인근 병원에 동행하여 그곳 의료진의 조치에 따라 혈액을 채취하였다. A 경사는 이와 같이 채취된 혈액을 제출받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송부하여 그에 대한 감정을 의뢰하였는데, 혈중알코올농도가 0.239%로 측정되었다.

2. 법원의 판단

(1) 하급심의 판단

제1심은 피고인에 대한 혈액채취가 피고인의 진정한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고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위험운전치사상),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의 점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였다(인천지방법원 2014. 6. 27. 선고 2013고정3588 판결).

원심은 구 도로교통법 제44조 제2항, 제3항의 해석상 경찰관이 호흡측정이 이루어진 운전자에 대하여 다시 혈액 채취의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경우는 운전자가 호흡측정 결과에 불복한 경우에 한정된다고 보아, 피고인이 호흡측정 결과에 불복하지 아니하였음에도 경찰관의 요구로 채혈하여 획득한 혈액과 이를 기초로 한 혈중알코올 감정서, 주취운전자 적발보고서, 수사보고(혈액감정결과 등), 수사결과보고가 모두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한 채 수집한 위법수집증거이거나 위법수집증거의 2차적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인천지방법원 2014. 11. 5. 선고 2014노2303 판결).

(2) 대법원의 판단

“구 도로교통법 제44조 제2항, 제3항, 제148조의2 제1항 제2호의 입법연혁과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구 도로교통법 제44조 제2항, 제3항은 음주운전 혐의가 있는 운전자에게 수사를 위한 호흡측정에도 응할 것을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한편 혈액 채취 등의 방법에 의한 재측정을 통하여 호흡측정의 오류로 인한 불이익을 구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데 취지가 있으므로, 이 규정들이 음주운전에 대한 수사방법으로서의 혈액 채취에 의한 측정의 방법을 운전자가 호흡측정 결과에 불복하는 경우에만 한정하여 허용하려는 취지의 규정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음주운전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음주운전 혐의가 있는 운전자에 대하여 구 도로교통법 제44조 제2항에 따른 호흡측정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그에 따라 과학적이고 중립적인 호흡측정 수치가 도출된 이상 다시 음주측정을 할 필요성은 사라졌으므로 운전자의 불복이 없는 한 다시 음주측정을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운전자의 태도와 외관, 운전 행태 등에서 드러나는 주취 정도, 운전자가 마신 술의 종류와 양, 운전자가 사고를 야기하였다면 경위와 피해 정도, 목격자들의 진술 등 호흡측정 당시의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호흡측정기의 오작동 등으로 인하여 호흡측정 결과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그러한 호흡측정 수치를 얻은 것만으로는 수사의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할 수 없어 추가로 음주측정을 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경찰관이 음주운전 혐의를 제대로 밝히기 위하여 운전자의 자발적인 동의를 얻어 혈액 채취에 의한 측정의 방법으로 다시 음주측정을 하는 것을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 경우 운전자가 일단 호흡측정에 응한 이상 재차 음주측정에 응할 의무까지 당연히 있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운전자의 혈액 채취에 대한 동의의 임의성을 담보하기 위하여는 경찰관이 미리 운전자에게 혈액 채취를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거나 운전자가 언제든지 자유로이 혈액 채취에 응하지 아니할 수 있었음이 인정되는 등 운전자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하여 혈액 채취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정에 의하여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혈액 채취에 의한 측정의 적법성이 인정된다.”

본 사안의 경우 피고인에 대한 호흡측정 결과 처벌기준치에 미달하는 수치로 측정되기는 하였으나, 당시 피고인의 태도 등에서 술에 상당히 취한 상태임이 분명히 드러났던 점, 피고인이 비정상적인 운전행태를 보인 점, 피고인의 모습을 목격한 일부 피해자들이 호흡측정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혈액측정을 요구한 점 등 여러 구체적 상황으로 보아 처벌기준치에 미달한 호흡측정 결과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정이 있었고, 나아가 피고인이 처벌기준치 미달로 나온 호흡측정 결과를 알면서도 혈액채취에 순순히 응하여 혈액 채취 동의서에 서명·무인하였고, 그 과정에서 경찰관 등의 강요를 받은 정황이 없는 점, 피고인이 혈액 채취를 거부하는 의사를 표시하였다는 사정이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에 대한 혈액 채취는 피고인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으므로, 혈액 채취의 측정방법으로 다시 음주측정을 한 조치를 위법하다고 볼 수 없고, 이를 통하여 획득한 혈액측정 결과 또한 위법수집증거라고 할 수 없다고 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였다(대법원 2015. 7. 9. 선고 2014도16051).

3. 판례해설

이 사건에서는 먼저 도로교통법 제44조 제3항, 제2항에 따른 측정 결과에 불복하는 운전자에 대하여는 그 운전자의 동의를 받아 혈액 채취 등의 방법으로 다시 측정할 수 있다”의 해석론이 문제되었다. 원심은 이 조항을 ‘경찰관이 호흡측정이 이루어진 운전자에 대하여 다시 혈액 채취의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경우는 운전자가 호흡측정 결과에 불복한 경우에 한정된다’고 제한적으로 해석하였다. 법률 규정의 문언에 충실한 해석론이라 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를 경우 호흡측정 결과 도로교통법상 형사처벌 대상 이하로 측정되어 불복하지 않았는데도 경찰관의 요구로 재차 채혈을 하여 취득한 혈액과 이에 기초한 2차적 증거들은 모두 위법수집증거이거나 위법수집증거에 기반한 2차적 증거가 되어 증거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런데 대법원은 입법연혁상 제44조 제3항 등은 호흡측정에 대한 운전자의 불복절차를 규정한 것으로 혈액 채취 등의 방법으로 재측정하여 호흡 측정의 오류로 인한 불이익을 구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고 보면서도, 호흡측정결과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운전자의 자발적 동의를 전제로 하여 ‘승복하는 운전자’에 대하여 혈액 채취 등의 방법에 의한 재측정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불복하는 운전자’라는 명시적 규정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승복하는 운전자’를 대상으로 하여 예외적으로 혈액 채취 등의 방법에 의한 재측정을 허용하는 길을 열어준 것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에서 수사상 필요가 인정될 수 있음을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대법원은 호흡측정에 응한 경우 재측정을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허된다고 보면서도, ‘호흡측정기의 오작동 등으로 인하여 호흡측정 결과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정’이 있고, ‘경찰관이 미리 운전자에게 혈액 채취를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거나 운전자가 언제든지 자유로이 혈액 채취에 응하지 아니할 수 있었음이 인정되는 등 운전자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하여 혈액 채취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객관적 사정에 의하여 명백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적법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하여 혈액 채취 등의 방법에 의한 재측정의 임의성 인정 기준을 제시하였다.

대상판결은 호흡 측정의 방법에 의한 음주측정에 응한 운전자라 할지라도 일정한 요건 하에 혈액 채취의 방법에 의한 재측정을 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점을 판시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다만 혈액의 임의제출과 관련한 종래 판례들(대법원 1999. 9. 3. 선고 98도968 판결, 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1도15258 판결 등 참조)에서 임의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바, 제출의 임의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압수거부권의 고지 의무를 명확히 선언하였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 판결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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