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사법연수원을 마치던 무렵이니까, 십여년 전쯤의 일이다. 연수원 수료를 하고 나서 만 3년간의 군생활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잠정적으로는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할 처지였다. 대학을 마치고 어렵사리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그동안 너무 힘들었으니까 잠시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합격자 발표 후 별로 쉴 틈 없이 바로 연수원에 들어갔다. 연수원에서의 생활은 빠듯했다. 타율적으로 수업을 들었고, 과제물을 제출했다. 동료들과 몰려다니다보니 2년이라는 시간은 금세 지나 있었다. 시험합격 이후 그보다 더 앞날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장래에 대한 대비라는 것이 없었다.

2002년 사법연수원 2년차는 월드컵의 한해였기에 흥분의 연속이었다. 4학기 시험을 마친 2002년 12월에 결혼식도 올렸다. 대학을 마치고 고시에 합격하면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여전히 미래는 비관적이고 불투명했다. 사회에서는 아직도 법조인들이 기득권층이고 특권층이라고 본다. 미안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법조인들의 미래는 장밋빛이라 할 수 없고, 그게 엄연한 사실이다.

갑자기 점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우연한 일이었다. 사법연수원 32기는 1년차 때는 서초동, 2년차 때는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연수원 수료를 즈음해서 지도교수님과의 면담을 마친 후 저녁에 구파발 어딘가에서 저녁 약속이 있었다. 일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향하는 동안 갑자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하였다. 그런데, 창밖으로 ‘사주, 팔자, 궁합, 관상’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를 따라서 두어번 점집을 가본 일은 있었지만, 어디를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잘 몰랐던 데다가, 복채(卜債)로 얼마를 주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모르면 물어보면 될 터. 마침 약속시간까지 여유도 있어서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구두방에 가서 구두를 닦으면서 주위에 용한 점쟁이가 있는지를 물었다. 구두방에서 구두를 닦던 초로의 아저씨는 인근의 한 점집을 추천했다.

구두방 아저씨가 추천한 인근의 점집으로 갔다. 풍선을 꽂은 대나무를 대문 앞에 세워놓은 가정집 2층이었다. 잘 되는 점집은 사람을 가려서 받고,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이 오면 바로 돌려보내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접수를 하고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몹시 불편하게 기다렸다. 그냥 일어나서 나와 버릴까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지만 거기까지 마음먹은 게 아까워서 한 시간 정도 기다린 후, 얼굴이 동그랗고 하얀 도사를 만날 수 있었다.

“뭐가 궁금합니까?” 그 도사의 첫 질문이었다. “글쎄요. 앞날이 답답하네요.” 그는 생년, 생월, 생일, 생시를 물었고, 책을 찾아가면서 알 듯 모를 듯한 한자를 종이에 써 가면서 내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도사는 자기가 적어놓은 해독불가한 한자를 들여다보면서 나에게 그랬다. “당신은 나무입니다. 나무라서 튼튼한 토양이 있어야 합니다. 사주에는 토양이 부족해서 여태까지는 떠돌아 다녔을 겁니다. 하지만 나이를 볼 때 앞으로 어딘가에서 정착을 합니다. 나무는 크면서 건강해지고 유순해질 겁니다”라고 했다. 이 나무와 토양의 비유는 꽤 그럴 듯 했다. 당시까지의 삶이 부초처럼 떠다닌다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그럼 저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겠습니까?” “사주에 배울 학자가 두개 들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책을 보고 말과 글로 먹고 살 겁니다. 그쪽으로 가면 길할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점괘가 아닌가? 특별할 것도 없고, 누구나 충분히 예측을 할 수 있는 미래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도사의 말을 듣고 꽤 안심을 했었다. 사주팔자 이외에 사전에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으니 그 도사는 용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향에 자리를 잡고 책을 보면서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일을 하고 있다.

꽤 시간이 흐른 후, 고용변호사로 일하다가 개인개업을 생각하면서 한번 더 점을 보러갔었다. 당시 법무법인을 그만두고 개업을 한다는 심정은 확고했지만,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해서 미래가 궁금했었다. 다소 허무했지만 마찬가지로 점괘는 내가 예측하고 의도한 그대로였고.

행(幸)과 불행(不幸)이라는 것은 스스로가 의도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타고 나는 것만도 아니다. 또, 인생이라는 것이 대체로 방향은 정해져 있지만 점을 쳐서 들여다보기엔 너무나 무겁고 진지하기도 하다. 뻔한 점괘를 받더라도 사람이 미래를 점쳐보려는 것은 미래가 가진 불확실함이 불안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가진 삶에 대한 애착은 결코 비난할 수 없다. 업계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가는 이 시기에, 문득 이전에 점을 보러 갔던 때의 절박한 심정이 잠깐 마음에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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