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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法情]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불이 난다면?
이영진 변호사  |  yjlee@kangho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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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호] 승인 2015.10.12  09: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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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사를 했다. 아주 오래되지도 그렇다고 아주 새로 지은 것도 아닌, 입주한 지 12년쯤 된 아파트다. 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것도 싫고, 행여 고장이라도 나면 걸어서 계단을 오르기도 힘들까봐 항상 저층을 선호한다. 3층 내지 5층이 좋고, 7층만 넘어서도 탑 속에 갇힌 라푼젤이 된 것 같은 느낌…. 아무튼 살고 싶지가 않다. 고소공포증도 좀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뜻하지 않게 14층이라는, 나에겐 초고층인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내가 선호하는 저층엔 마땅한 집이 없었다. 남들 20층, 30층에도 사는데 뭐 십몇층 정도 가지고 그러냐 스스로를 다잡고 여러 차례 설득하여 결정한 집인데, 와보니 베란다에서 보는 풍경부터 조금 아찔하다.

‘휴우, 도대체 저 꼭대기 25층엔 어떤 사람들이 사는 거야?’ 며칠 후 우리 집과 마주보는 동의 25층집에 이사를 오는지 사다리차로 짐을 올리는 것을 보았다. 아…그 집 베란다에서 짐 내리는 아저씨를 보면서 어찌나 가슴이 졸밋거리던지.

그러던 어느 날 베란다 청소를 하는데, 이상한 노란 박스가 눈에 띄었다. 분명 우리 물건이 아닌데, 전에 살던 이가 놓고 갔나? 살펴보는데, ‘5층용 15M’라고 쓰인 종이스티커가 모서리에 조그맣게 붙어있다. 옆면을 살펴보니 완강기 사용법이라면서 복잡한 조작법 설명이 나오고, 화재나 이에 준하는 응급상황에서만 피난목적으로만, 그리고 1회에 1인씩만 사용하라 친절하게 경고하고 있다.

아, 불이 났을 때 이걸 사용해서 베란다를 통해 내려가라는 거구나. 그런데 왜 5층용일까? 15미터 밧줄에 매달려 9층 높이까지 내려가던 도중 액션영화 주인공처럼 아래층 베란다 유리를 파바박 멋지게 발로 차면서 들어가라는 건가? 아님 아래층에 사는 어느 멋진 자가 베란다에서 받아주기라도 한다는 건가? 우리 가족은 4인인데, 이거 하나로 대피를 할 수 있을까? 이걸 설치해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만약 아이들만 집에 있다면 어찌 되는 걸까? 별의별 생각이 마구마구 든다.

그러고 보니 전에 살던 아파트가 훨씬 더 안전했겠구나 싶다. 거긴 지은 지 30년이 다 되어 재건축 얘기가 나올 정도로 낡은 아파트였지만 전체 15층에 외부계단도 있었고 우린 3층에 살고 있었으니 지금과 같은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곳이었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새로 짓는 아파트들은 한층 더 고층인데다 대부분 타워형이라 가운데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을 빼고는 외부계단도 심지어 베란다 공간도 별로 없는 구조가 아닌가. 화재에는 어떻게 대비가 되는 건지 궁금하다. 소방차가 닿을 수 없는 고층엔 스프링쿨러가 다 설치되어 있는 거겠지? 건축에는 문외한인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안전설비는 되어 있겠지? 하면서도 몇해 전인가 부산 해운대 화재, 그리고 의정부 아파트의 화재 등이 떠오르면서 찜찜한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급한 마음에 되는 대로 건축법, 소방법도 검색해보고 관련기사들도 검색해 본다. 소방사다리가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몇층이고 소방호스가 닿을 수 있는 높이는 어디까지네, 건축법과 소방법의 소관 부처가 달라 부처간 갈등으로 문제가 많다는 기사며, 의정부 화재를 계기로 건축법상 외벽단열재 기준을 강화한다는 등의 철지난 기사들…. 검색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무서워지고 불안해진다. 고층아파트에서 불이 났을 때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아파트마다 외부계단을 설치하지 않는 이상 방법은 없어 보인다. 스프링쿨러도 좋고, 단열재도 좋고, 방화문도 좋지만, 가장 믿음직스러운 것은 아무래도 단연 외부계단같다. 그 좋은 외부계단은 왜 우리네 아파트 건설 역사에서 사라졌을까? 헐리우드 영화의 추격씬에서 흔히 보던 철제 난간같이 생긴 외부계단이라도 있으면 한결 마음이 놓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건축과 관련한 안전규제가 개발이익을 많이 발생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거주민의 안전을 보호하는데 충분한 방향으로 진일보할 수 있도록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고 문제제기하고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강변에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는 고층건물들, 그리고 부산 해운대에 구름을 뚫고 솟아있던 마천루가 재앙이 되지 않도록.

세월호를 포함해 크고 작은 안전사고를 겪으면서도 우리는 참 강심장이 아닌가! 오늘도 옆집, 아래윗집 사람들 포함 우리아파트 같은 동 주민들이 그저 불을 내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서로 믿고 살아가야 할 뿐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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