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우 협회장… 누구를 위한 4심제? 대법원 ‘순혈주의’ ‘기득권’ 포기하면 국민 위한 길 보일 것
송기춘 회장… 상고법원 용역보고서는 한국공법학회 공식의견 아니다, 개인적으로 상고법원반대

강 : 최근 상고법원 설치 문제를 두고 법조계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자전거 홍보, 지하철 광고, 버스정류장 전광판 무료 홍보 요청 등 올 가을 내 관련 법안 통과를 목표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대로 변협은 상고법원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토론회 개최, ‘상고법원 반대 및 대법관 증원 10문 10답’ 책자 발간 등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는 대법원이 한국공법학회에 의뢰한 연구용역의 중간결과가 나와 논란에 불을 지피기도 했는데요, 여기에 한국공법학회 송기춘 회장과 대한변협 하창우 협회장을 모시고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우선 송 회장님, 상고법원에 대한 한국공법학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무엇인가요?

송 : 한국공법학회는 헌법과 행정법에 관한 학문연구를 통해 법학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유진오 박사님을 중심으로 1956년에 설립된, 우리나라의 헌법과 행정법 분야의 연구자들이 대부분 참여한 공법학 분야 최대의 연구단체입니다. 우리 학회에는 다양한 견해와 입장을 가진 연구자들이 참여해 활발한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회원들 사이에 특정 사안에 대해 다수 또는 소수가 동의하는 의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학회가 공식적으로 채택하는 공식입장이 있는 건 아닙니다. 소수가 택하는 의견도 가치가 있고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이번에 발표된 ‘상고법원 제도 도입에 관한 대법원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연구보고서’의 경우도 우리 학회 이름으로 발표된 보고서이지만, 이 보고서가 학회의 공식적 입장은 아닙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 보고서는 ‘상고법원에 찬성하는 입장을 가진 연구팀’의 연구결과이며, 이 보고서가 학회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하여 학회가 그러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만, 이 역시 학회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닙니다.

강 : 상고법원의 경우 위헌논란이 일고 있고, 특히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 : 대한변협은 상고제도개선 TF를 구성하고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왔습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상고법원 설치는 명백히 헌법에 위배됩니다. 헌법 제101조 제2항에서는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된다’고 규정하고 있어, 대법원과 각급법원의 심급을 달리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고법원을 대법원과 같은 상고심에 둔다면 위헌이 됩니다. 제110조 제2항에서는 ‘군사법원의 상고심은 대법원에서 관할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상고법원이 도입될 경우 이 법안과 충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 대법원은 ‘공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나 ‘대법원이 심판하는 것이 상당한 사건’은 대법원에서 심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 분류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대법원 심판사건과 상고법원 심판 사건 사이에 형평성 문제가 초래될 수 있고, 실질적 4심제로 운용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강 : 단순히 사건 수 폭증이 문제라면 다른 대안도 많은데 왜 유독 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주장한다고 보십니까?

송 : 법원이 상고법원 설치에 집중하는 이유는 대법원장이 임명을 주도하는 고위법관직이 다수 신설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도개선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은 국민의 관점인데, 이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이지요. 법원은 상고법원 도입 이유로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 신장’을 들고 있지만, 정작 사법불신의 원인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고가 폭증하는 이유는 1~2심 재판이 충실하게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작 5~10분만에 재판이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불만이 없을 수 없습니다. 위로 올라가서 제대로 된 재판을 받아보겠다고 다짐합니다. 또 하급심 판사들의 짧은 연륜도 문제입니다. 단독사건의 경우 소액사건이거나 비중이 작은 사건이니 경력 2~3년의 판사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소송 당사자에게는 소가가 적어도 일생이 걸려있는 문제일 수 있는 겁니다. 본인이 옳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도 있을 테고요. 그러니 경륜있는 판사, 이를 테면 대법관 등에게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충실하지 못한 법원의 판결문도 문제입니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합리적 판단도 부족한 판결문은 국민의 진정한 승복을 이끌어내지 못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고법원을 도입한다 해도 국민의 사법불신이 해소되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상고법원을 설치할 것이 아니라 법관을 증원해 재판을 충실하게 하고 연륜 있는 판사를 하급심에 다수 배치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 : 사법부의 ‘상고법원’ 설치 주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현 사법부의 ‘법관 순혈주의’와 ‘보수화’ 경향뿐입니다. 이는 법조일원화가 시행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법조일원화의 구체적 내용과 방향이 모두 정해졌음에도, 최근 법원은 3년제 경력법관을 선발하면서 로클럭 2년에 대형로펌에서 나머지 기간을 채운 변호사 출신을 임용했습니다. 사법불신을 해소하겠다면서 후관예우를 조장한 겁니다. 또 법원행정처 출신이 주요 보직을 독점하고 있지요. 최근 대법관으로 임용된 인물들만 봐도 모두 서울대, 법관 출신, 50대 남성으로 대법관 구성 다양화를 위한 노력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변협에서는 재판실무를 담당할 대법관을 두배 증원해 24명으로 하고, 법원행정처장과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을 총 26명으로 증원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대법관 수를 늘리면 전원합의체 토론을 통해 국민이 원하는 결론을 찾아내가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대법원장을 포함해 민사대법관 17명으로 대민사부를, 형사대법관 9명으로 대형사부를 구성하면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는데도 별로 어려움이 없을거라고 봅니다. 또 요즘처럼 전자적인 방식의 의사교환이 원활한 시대에 30여명의 의견합치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대법원은 대법관 수 증원이 아닌 상고법원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대법관들이 소수의 엘리트 권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

강 : 상고법원과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하 : 상고법원은 10여년 전에도 그 도입이 검토되었다가 위헌성 문제 때문에 폐기된 제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관 수 증원을 거부하고 상고법원 도입을 다시 추진한다는 것은 기득권 유지와 대법관 권위에만 관심이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사실 이렇게 중요한 재판제도를 변경할 때에는 변협, 법무부, 국민 의견을 모두 수렴해 정부입법을 했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법원은 법조삼륜 중 두 축인 변협과 검찰에서 반대하는 상고법원을 ‘의원입법’을 통해서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실 변호사 입장에서만 보면 사건 수가 증가하니 이익입니다. 하지만 변호사가 돈벌이를 위해 위헌적 제도를 이용해서야 되겠습니까.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당연히 철회해야 하는 제도입니다. 4심제에 따른 추가비용과 재판지연은 누가 보상해 주겠습니까. 결국 이런 문제 때문에 국회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송 : 저는 상고법원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법원의 태도가 법원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이론적으로 보면, 하급심 법원은 모두 독립된 법원으로서 그것이 최종심이 될 수 있는 독립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법관들은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여 그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얼마 전 ‘제1회 법원의 날’ 행사 기념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초청돼, 토론문에 상고법원 도입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상고법원 관련 내용을 빼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발표문에서는 빼고, 구두발표만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그것조차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더군요. 토론자로 초대해 놓고 말할 내용까지 주문하는 모습이, 법원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법원이 재판사무도 아니고 행정에 관한 특정 사안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기조차 어려운 분위기라면, 이것이 법원의 근본적 문제가 아닐까요?

또 대법원이 정책법원이 되려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정책법원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중요 사안에 관한 최종적인 판결을 하게 되기 때문인 것이지 본래부터 대법원이 그런 정책결정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책결정은 입법부와 행정부의 몫입니다. 대법원은 사법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 법원도 신속한 재판, 편리한 전자소송, 우수한 법관 등 자부심을 가질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법 해석에서 나타나는 편향된 사고, 노동자 등 약자에게 가혹한 판결, 정치적 성격의 사건 판결에서 펼치는 교묘한 ‘논리’ 등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훌륭한’ 법원의 법관들이 재판을 하는데 국민이 억울해 하는가를 살피는 것을 ‘상고심제도 개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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