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우먼 인 골드’는 마리아 알트만이라는 미국 할머니가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클림트 그림 반환소송을 다룬 영화이다.

오스트리아에 정착한 유대인으로 미술애호가였던 그녀의 가족은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게 소장 그림을 모두 빼앗겼고, 마리아 알트만은 극적으로 미국으로 탈출한다. 50여년이 흐른 뒤 마리아 알트만은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던 구스타프 클림트 그림 5점을 반환 받기 위해 어려운 소송을 벌였고, 그 과정에 일어난 극적이고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법정 드라마가 ‘우먼 인 골드’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극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소송의 대상이 된 그림 중 아델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영화제목이 그러하듯이 그림 전체가 금빛 모자이크로 가득 차 있어 화려하고 우아하기 그지없다. 모델 아델은 마리아 알트만의 숙모였는데 클림트와 연인관계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소송은 외국정부를 상대로 미국법원에 제기한 반환소송이라서 미국법원에 관할권이 있는지가 다투어졌고, 마리아의 신참변호사 쇤베르크가 넘어서기 매우 어려운 쟁점이었다.

결국 미국법원은 관할권이 있다고 결정을 내렸으나, 쇤베르크는 다시 난관에 부닥친다. 아델 생전에 그림 소유권이 오스트리아 정부에 증여되었는지에 관해 심각하게 다투어졌고, 소송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알트만과 쇤베르크는 오스트리아에서의 중재를 선택한다. 오스트리아에서 행해진 중재는 알트만 측에 불리하게 진행될 수 있으나 오스트리아 중재패널은 놀랍게도 클림트 그림을 알트만에게 반환하라고 결정을 내린다. 중재판정문이 40여 페이지가 넘는데 소유권의 귀속과 관련하여 매우 치밀한 분석을 담고 있다. 중재결정에 따라 2006년 미국으로 반환된 클림트의 그림은 경매에 붙여지고 이 그림은 1억3500만 달러에 클림트 그림 애호가인 로날드 로더에게 낙찰되어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극적인 소재에 극적인 반전과 결말이다.

‘우먼 인 골드’는 그 자체로 미술품 반환에 관한 법적인 쟁점을 공부하기에 좋은 소재이기도 하지만, 영화제작자가 미술작품을 영화에 담을 때 어떤 방법으로 그 허락을 얻는가도 흥미로운 쟁점이 된다. ‘우먼 인 골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감독 사이먼 커티스는 배경에 나오는 많은 그림들(이를 테면 마리아의 숙모집 벽에 걸려있던 많은 명화들)에 대한 촬영을 위하여 그 그림들을 새로 만들어 촬영을 했는지, 아니면 그 그림들을 모두 빌려와 촬영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림의 소재를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그 비싼 그림을 촬영장소로 옮기는 것도 수백만 달러가 소요되는 작업이 된다. 이러한 미술 관련 영화 촬영을 위해서는 비용 문제 등으로 인하여 미술품은 영화촬영용으로 새로 그려서(복제)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촬영 후 그 복제 그림은 철저히 외부 공개를 차단하거나 파기한다고 한다.

일례로 장미셀 바스키아의 인생을 다룬 1996년도 영화 ‘바스키아(Basquiat)’에는 피카소나 앤디워홀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배경으로 나온다. 감독 줄리언 슈나벨은 진품을 촬영하고자 하였으나, 바스키아 재단이 복제 허락을 해주지 않고 터무니 없이 과도한 돈을 요구하여, 감독은 그 영화에 보여지는 모든 그림을 바스키아풍으로(in style of) 새로 창작하여 촬영하였다. 또한 피카소 그림 ‘게르니카’는 새로 복제하여 촬영하는데, 복제품을 촬영 후 바로 파쇄하는 것을 조건으로 피카소 재단으로부터 복제허락을 얻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영화 ‘바스키아’를 제작하는데 뒷 배경으로 나오는 명화를 촬영하는 데에는 쉽지 않은 저작권 처리문제가 숨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를 간과하고 영화촬영을 하게 되면 뜻하지 않게 소송을 당해 재난에 가까운 결과를 맞게 되기도 한다. 알파치노와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데블스 애드버킷’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배경 조각작품은 워싱턴의 한 성당에 전시된 ‘엑스 니힐로’라는 조각작품과 너무나 흡사하였다. 조각가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연방법원 판사의 결정에 따라 워너브라더스는 비디오 출시 전에 필름엔딩 장면을 모두 바꾸어야 할 상황에 직면하여 어쩔 수 없이 조각가와 합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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