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 소매치기를 만났습니다. 여행가이드는 저 여자가 범인이니까 빨리 잡으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녀는 그저 가이드였고 내가 사건의 해결사였습니다. 그 범인을 잡으라니 어떻게 잡는다는 말인가. 나는 달려가서 우선 그녀의 길을 막았으나 어디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다행스럽게 일행 중의 여자선생님이 그녀의 팔을 잡았습니다.

범인으로 지목된 여자는 자신의 핸드백을 열어 보이면서 ‘나는 범인이 아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행동을 보면서 나는 그녀가 범인인 것을 확신하였는데 그 핸드백은 뒤져보아야 소용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훔친 물건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학년부장이신 선생님은 그녀의 허리춤에서 문제의 지갑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너 왜 그랬니?” 물으면서 그 소매치기를 혼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그 선생님은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자의 팔목을 잡거나 소지품을 검색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교육자로서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법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그 분은 잘못을 찾아내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은 내게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활동범위’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내가 평소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수도 있고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삶에는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고 살아갈 힘도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상반기에 나는 대한변호사협회장 명의로 보내진 이메일 세통을 받았습니다. 중견변호사들이 개인적으로 인턴변호사를 받아 실무수습지도를 담당하기를 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단체메일을 받았는데 나는 그 메일이 내 개인에게 보내진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오죽했으면 세번씩이나 이메일을 보낼까 생각하고 이에 반응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법인인 에이펙스에는 이미 충분한 수의 인턴변호사가 있었으므로 나는 개인적으로 인턴변호사를 받는 일에 대하여 대표변호사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습니다. 나의 선택은 내게 주어진 삶을 넓혀보려는 시도였습니다.

이제 인턴변호사들의 채용도 결정되고 새롭게 출발을 모색하는 모습들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희망사항과 고민들을 보면서 다시한번 주어진 삶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서비스 공짜시대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재화와 서비스가 넘쳐나고 웬만한 서비스는 돈을 받고 팔 수 없습니다. 인터넷은 정보의 홍수를 만들었고 모범적인 법률서식은 넘쳐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많은 법을 알고 있고 이를 표현할 줄 아는 인문학적 소양들도 갖추었습니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어느 정도를 갖추어야 전문가의 능력을 채울 수 있을까요.

청년변호사들을 바라보면서 갖추어진 틀에 너무 일찍 들어간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삶의 굴레 속에 너무 일찍 들어간 것은 아닌가요? 내게 주어진 삶이 과연 이 모습인가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요?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의 삶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왔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의 재능을 발휘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환경과 재능을 뛰어넘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자신의 생각 안에 머물면서 이를 환경이라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생각 너머를 바라보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것과 자신의 생각 안에서만 머물게 됩니다. 마치 조련된 코끼리가 발에 매인 줄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자신의 삶은 무언가를 돌파하지 않으면 변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돌파하여야 할 대상은 고정관념일 수도 있고 선배들이 걸어왔던 발자취일 수도 있고 가끔은 리걸마인드일 수도 있습니다. 청년변호사들이 겪는 무한경쟁과 협소한 진로를 바라보면서 이들을 진정으로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우선 마음을 글로 표현합니다. 이들을 응원하는 것은 나 자신을 응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내가 무언가를 다 이루어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이들을 응원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나 자신도 생각의 범위를 뛰어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내가 생각하던 방식대로만 살지 않겠습니다. 나는 영성, 지성 및 체력을 증진하기 위한 100일 계획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일기를 쓰면서 나를 관찰하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나는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가 아니라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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