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마음에 택시를 탔다. 택시운전기사가 반갑게 웃었다. 가만보니 뭔가 말을 건네고 싶은 눈치였다. 말을 섞기 시작하면 피곤할 때가 많았던 기억에 나는 애써 모른 척 하였다. 그때 옆을 달리던 버스가 경적을 심하게 울려댔다. 택시속도가 맘에 들지 않았나 보다. 나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놀란 내 모습을 보고 택시운전기사가 말했다.

“저 성질하고는…그렇게 누른다고 뭐가 달라질까! 내가 30년 운전을 했는데, 운전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우.”

“그래요? 그게 뭔데요?” 내 한마디에 운전기사분이 ‘그럼 그렇지’하고 웃는다. ‘거봐! 결국 나하고 말을 섞이게 되어 있잖아!’ 아주 흡족해 하는 얼굴이다.

“우리나라 도로구조상 교통법규를 어기게 되어 있을 때가 많잖아요. 거기다가 운전을 다 잘하남! 잘하는 사람도 있으면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 아녀요. 경적을 백날 눌러봐요. 자기만 손해지요. 나도 내가 누르는 경적소리에 기분이 좋지 않을 때가 많았거든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을 때는 눌러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안 눌러요. 안 누른지가 10년도 넘었어요. 누르면 계속 누르게 되어 있는 것이, 요 경적이거든요. 앞차가 늦으면 나도 좀 늦으면 되고, 운전을 못하는 앞차가 있으면 옆 차선으로 얼른 추월해 버리면 되지요. 그것도 안 되면 기다려야 하고요. 안 그러면 어쩌겠어요. 경적을 아무리 눌러봐도 달라질 건 하나도 없고, 성질만 버리지요.”

경적을 누를 법도 하건만 그 기사분은 정말로 한번도 경적을 누르지 않았다. 예정보다 늦는 바람에, 법정으로 바삐 올라갔다. 10년동안 경적을 누르지 않았다는 말이 계속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러면서 어느 스님이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한번 화를 내면 다음에 화를 내는 것은 더 쉬워집니다. 한번, 두번 거듭해서 화를 내다 보면 화를 낼 상황과 더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기사분도 ‘경적도 이와 다르지 않아요’라고 말해 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날 때가 많고, 그때 내 마음의 경적을 누르게 된다는 것을. 인생이 모두 내 뜻대로 될 것으로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 된다는 것을.

류종목 교수가 쓴 ‘논어의 문법적 이해’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자산에 관하여 물었다. 공자께서 “자혜로운 사람이다”라고 하셨다. 이번에는 자서에 관하여 물었다. 공자께서 “그 사람! 그 사람!” 하셨다. 다시 관중에 관하여 물었다. “인물이다. 백씨의 변읍 삼백 호를 빼앗아버려 그가 빈궁한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백씨는 죽을 때까지 관중을 원망하지 않았다”라고 하셨다.

공자가 세 사람의 정치인을 비평한 내용이다. 정나라의 자산은 엄격하고 혁신적이었다. 백성들에게 유익한 정치를 하여 정나라 백성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가 죽었을 때 공자가 눈물을 흘렸다.

자서는 초나라의 공자로 불렸다. 평왕(平王)이 죽은 뒤 소왕(昭王)에게 왕위를 양보했다. 그만큼 인품이 훌륭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역량이 대단치는 않았다. 자서는 소왕이 공자를 중용하려 할 때 이를 막아 나섰다. 그래서일까. 공자는 그에 대한 평가를 유보했다.

공자는 관중의 위인에 대해서는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의 정치적 공적에 대해서는 인정해주고 있다. 백씨는 관중 때문에 식읍을 빼앗겼지만 평생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말이 ‘몰치무원언(沒齒無怨言)’이다. 이가 빠져 죽을 때까지 원망의 말이 없다는 뜻이다.

공자는 이 사실을 들어 관중을 평가하였다. 백씨는 제나라의 대부였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환공이 관중의 청을 받아들여 그의 식읍인 변읍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논어의 위 글에서 백씨의 마음이 몹시 궁금했었다. 처음에는 화도 났으리라.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음도 알았으리라. 더 이상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원망의 마음도 없어졌으리라. 관중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수록 관중을 이해하게 된 것이었을까. 백씨는 역지사지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보면 변호사로서의 직업은 양날의 칼을 쥐고 있는 것 같다. 잘 살리면 역지사지를 배우지만, 여차하면 경적을 누르고야 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내 마음의 경적을 몇 번이나 누를까 궁금해졌다. 그러면서도 오늘만은 내 마음의 경적에 손이 가지 않겠다고 단단히 벼려본다. 내 마음의 경적! 이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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