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여성 혐오 범죄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트렁크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일곤은 경찰 수사에서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저항해서 죽였다”고 진술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그는 평소에도 주변 사람에게 노출이 심한 여성을 가리켜 “저런 X은 다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 등 노골적으로 여성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 왔다.

지난 8월에는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복수한다며 배관공으로 위장해 그 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한 20대 대학생 장모 씨에게 대법원이 사형을 확정했다. 장씨는 “여자친구가 만나주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안 생겼다”고 피해자를 탓하는 발언을 했다.

이들 사건에는 공통적으로 여성에 대한 낮은 인식이 깔려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자신의 명예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됐다고 생각하면 ‘명예살인’에 가까운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들이 있다. 물론 범죄자 개인의 잘못이 크다.

그런데 최근 몇년 새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여성 혐오’ 현상을 들여다 보면 이들 범죄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치녀’ ‘맘충’ 등 무의미하고 소모적으로 반복되는 여성에 대한 비하와 욕설은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섰다.

24시간 스마트폰을 곁에 두고 인터넷을 접할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는 인터넷상 언어 폭력은 일상에서의 폭력이 되고 있다. 특히 포털 사이트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문제가 심각하다.

인종이나 성별 등 태생적으로 구분되는 특정 집단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고 폭력이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는 선진국인 한국이 내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해 용납해서는 안 되는 ‘열린 사회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는 국내 온라인 뉴스 시장의 70%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미디어광고업체인 DMC미디어의 2013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7%가 포털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뉴스를 소비한다고 밝혔다. 그 중 82%가 네이버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객관적인 수치가 아니더라도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누구든지 하루에 한번쯤은 네이버를 통해 온라인 기사를 접할 것이다. 네이버 기사들은 클릭 수와 댓글 수에 의해 노출 정도가 결정된다. 댓글이 많이 달릴 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네이버 기사에 내용과 관계 없이 여성 혐오성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 근거 없는 비난과 편견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은 소모적이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은 참고 있다. 그러다가 ‘미러링(mirroring·거울처럼 똑같이 보여주기)’, ‘폭력에는 폭력’이라면서 남성 혐오 댓글로 대응하는 현상이 최근 생겨났다. 남성들은 여성 혐오 현상에 대해 무관심 하거나, 동조 섞인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폭력성 댓글이 청소년에게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성인 인증 기능을 갖춘 검색어 제한과 달리 기사에 달린 댓글은 원치 않아도 노출이 돼 있다. 어린 학생들이 폭력적인 댓글에 얼마나 노출 돼 있는지, 영향력은 어떠한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없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청소년들이 남녀 성역할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여자 청소년의 경우 댓글만 보고서 ‘여자란 이래서는 안 된다’ 등 자기 비하나 검열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도 자체적으로 노력을 하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폭력적인 댓글을 삭제하기 위해 500명을 투입하고 있으며, 네티즌들이 자체적으로 정화할 수 있도록 신고 제도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 창에 욕설은 원천적으로 입력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시로 신종 욕설을 시스템에 등록하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만 개씩 쏟아지는 뉴스와 그에 따르는 댓글은 네이버 직원들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

네이버는 적어도 댓글만큼은 실명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 실명제로만 운영해도 혐오 댓글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익명성이 인터넷의 가장 중요하고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는 것은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실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표현의 자유 문제가 걸린다면 실명 댓글을 원칙으로 하되 뉴스에 대한 의견 표명을 하는 익명 게시판을 따로 운영하면 된다. 그 경우 게시판을 선택해 들어가는 사람만 글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지금보다는 노출 정도가 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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