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에서 변호인 의견진술 제지하는 경우 가장 많아
변협, 변호인 참여권 보장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 입법 추진

지난 한해 검찰 수사를 받다 자살한 사람은 22명으로 2013년에 비교해 2배 가량 늘었다. 검찰수사과정에서 피의자나 참고인 등에 대한 인권침해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고있다는 뜻이다. 그런 가운데 수사기관에서 피의자신문시 동석하는 변호인 또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한변협은 새정치민주연합 오영식 의원, 한국형사소송법학회(회장 한명관)와 공동으로 지난 23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피의자신문시 변호인 참여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하창우 협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형사소송법이 2007년 개정됐지만 검찰 수사과정에서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권은 매우 제한적인데다, 조사시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도 많다”며 “변협은 국민의 편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변호인 참여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혜진 변호사가 지난 6월 변협이 전국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피의자신문시 변호인의 참여권 침해 설문조사(이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는 전국 회원 중 1912명(회신율 11.95%)이 응답해 최근 3년간 변협이 실시한 설문조사 중 가장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설문은 피의자 신문시 참여 여부, 수사기관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험 및 유형, 변호인의 참여를 명시한 형사소송법 제243조의2 관련, 변호인의 참여 제한을 명시한 검찰사건사무규칙 제9조의2 제4항 관련, 입법론적 개선방향 등에 대해 묻고 있으며 총 17개 문항으로 이뤄졌다.

부당 대우 유형…의견진술 제지, 강압적 행동, 메모금지 등 뒤이어

설문조사에 따르면 피의자신문시 변호인으로 동석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1466명 중 716명(48.8%)이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표1참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답변자의 경우(중복응답 가능), 부당한 신문방법에 대한 이의제기 등 변호인의 의견진술을 제지함이 56.6%(405명)로 가장 높았고,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강압적인 행동 또는 월권행위가 46.5%(333명), 피의자신문 내용의 메모 금지가 45.1%(323명)로 뒤를 이었다.

김 변호사는 “피의자 신문에 참여한 변호사들이 위 세 가지 유형의 부당한 대우를 동시에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그 밖에도 변호인 또는 피의자가 옆자리 동석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금지하는 경우도 17.9%(128명)에 달했고, 변호인 참여권 자체를 불허했다는 의견(6.8%, 49명)도 있었다.

법 규정을 무시하는 수사기관의 태도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형소법 제243조의2 제4항은 변호인 의견이 기재된 피의자신문조서는 변호인이 열람한 후 그 조서에 기명날인 또는 서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23.6%(451명)가 수사일선에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변호인에게 간인이나 무인을 강요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그 이유에 대해서 응답자의 대다수(95.8%, 432명)가 ‘수사 관행상’ 간인 또는 무인을 변호인에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피의자의 인권이 직접적으로 침해된 사례도 있었다.

변호사들이 직접 기재한 피의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로 ‘성폭력 피해자조사 시 전문센터에서의 조사를 요구했음에도 묵살하고 남성 경찰관이 조사했다’는 사례, ‘긴 조사시간으로 인해 고령의 피의자를 위해 잠시 쉬었다 진행하자고 했으나 묵살당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또한 조사시간이나 조사방법, 대기시간 등에 대해 참여변호인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조사가 진행되거나 변호인이 선임돼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불시에 피의자를 찾아가 변호인 없이 신문한 일 등 명백히 부당한 절차를 통해 사실상 변호인 참여 자체를 배제한 경우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안에 대해 변호사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드문 것으로 드러났다. 김혜진 변호사는 “수사기관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변호인들은 추후 피의자에게 생길 불이익을 우려해 제대로 이의제기나 항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내용 기록 금지하는 관행 개선 시급

변호인 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신문내용 기록을 금지하는 관행 철폐’로 조사됐다(1384명,72.4%). 다음으로는 피의자 신문시 변호인 위치에 대한 자율권 보장(1138명, 59.5%), 신문조서에 변호인 간인 또는 무인을 요구하는 불필요한 절차 개선(679명, 35.5%), 변호인이 참여하는 경우 조서 등의 증거능력 강화(580명, 30.3%), 변호인 이의제기시 지검장 또는 경찰서장이 인용 여부를 최종 결정(564명, 29.5%)이 뒤를 이었다.

김혜진 변호사는 “그 밖에도 많은 수의 회원이 변호인 참여권 개선 방안에 대해 의견을 냈다”며 “가장 많은 회원이 제시한 의견은 법규 체제를 정비해 궁극적으로는 부당한 수사관행과 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사들은 개선 방향으로 ▲변호인 참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제한 ▲변호인이 신문 중 언제든 개입해 피의자와 상의하고 의견 진술 ▲ 자유로운 기록·메모를 보장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승인 규정 폐지 ▲참여권 제한이 가능한 구체적인 기준 마련 및 변호인 참여 제한에 대한 구제방법 구체적으로 규정 ▲변호인이 피의자 옆자리에 동석할 수 있도록 명확한 규정 마련 등을 꼽았다.

법 개정 통해 제도 개선해야

무엇보다도 변호인 참여권은 형사소송법과 검찰사무규칙 등에 의해 제도적으로 제한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대표적인 것이 검찰사건사무규칙 제9조의2 제4항이다. 설문조사 응답 변호사 10명 중 9명(1726명, 90.3%)이 이 조항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응답했다.

‘변호인 참여권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활성화를 위한 제안’을 주제발표한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변협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많은 변호사가 부당한 대우로 인해 신문과정에서 제대로 변호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애매한 형사소송법 규정과 이와 관련된 하위 규정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구체적 사유에 해당하는 각 호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모호해 검사의 자의적 판단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수사기관은 이 규정을 통해 변호인 참여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있어 형소법과 검찰사무규칙 등으로 제한돼 있는 변호인 참여권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 교수는 “변호인이 선임된 사건에서는 필요적으로 해당 변호인에게 신문일시 및 장소를 통지하는 조항과 신문에 참여한 변호인은 피의자와 동석해 신문 중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피의자에게 조언을 하거나 의견진술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신설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날 토론자로는 이범준 경향신문 기자, 정병곤 남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정웅석 서경대학교 교수, 박진식 변호사가 나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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