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그야말로 축제의 계절이다. 5월 그린 플러그드 페스티벌, 서울 재즈페스티벌을 시작으로, 6월에는 월드디제이 페스티벌, 울트라뮤직페스티벌이 열리고, 7월 말, 8월 초면 국내 최대 락 페스티벌인 안산벨리 락 페스티벌과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일주일 간격으로 열린다.

고시생 시절부터 연수원시절은 물론, 변호사가 된 지금까지도 나의 여름은 음악 페스티벌과 함께였다.

음악 페스티벌의 관객층은 대중없다. 대학생, 직장인들은 물론, 요즘엔 중학생, 고등학생도 많다. 귀 보호용 헤드폰을 낀 3살 유아부터 베레모를 쓴 멋있는 할아버지가 함께 즐기고, 해외 유명 밴드가 내한하는 날에는 인기 아이돌 가수나 연예인이 보이기도 한다.

페스티벌은 보통 3일에 걸쳐서 열리고, 하루 만명 이상의 관객이 몰리는데, 자유를 찾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몰리는 만큼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몸매를 한껏 드러낸 숏 팬츠에 나시는 기본, 스모키 화장을 한 시선강탈 언니들이 지나가고, 상의 탈의에 근육 자랑하는 멋진 훈남과, 온몸에 멋있게 타투를 한 외국인들, 꿀벌 머리띠와 귀여운 원피스를 맞춰 입은 여고생들, 슈퍼마리오, 피오나 공주 복장을 한 락 동호회 회원 무리도 보인다.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올해로 10주년이 되었는데, 연차가 쌓인 만큼 아티스트 라인업도 풍성해졌고, 공연 외에 놀 거리도 많아졌다.

맥주회사가 협찬하여 만들어 놓은 풀장에는 비키니를 입은 섹시한 언니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고, 그 옆에는 깜찍한 미키 머리띠를 한 언니들이 시원한 에너지드링크를 무료로 나눠준다.

그리스식 핫도그, 타코야끼, 컵밥, 김치말이국수 등 다양한 메뉴의 음식점 천막과 푸드 트럭이 늘어서 있고, 그 앞 파라솔에는 데낄라, 보드카에 한껏 취한 언니, 오빠들이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며 밤을 지새운다.

축제의 공간은 나의 업무와 철저히 분리된다. 그 공간에서는 재판장 앞에서 무리한 주장을 태연스럽게 하던 나는 없고, 변론 준비가 늦다는 의뢰인의 불만에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하는 나도 없다.

맥주에 취해 잔디밭에 누워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동안 힘겨워했던 일들은 다 잊혀지고, 의뢰인과 함께 짊어진 고민의 무게도 한결 가벼워진다. 자유, 열정, 젊은 기운만이 스며들고, 변호사로 일하며 훼손 되었던 자아가 돌아오는 기분이다.

처음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동기들과 나누었던 고충이 일상과 업무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무실을 떠나서도 사건 생각이 나고 집에서 씻는 중에도 내일 재판이 걱정돼 한숨이 나온다.

하루에 한번 이상 변론기일을 챙기고, 의뢰인들과 전화통화, 미팅에, 변론 준비까지 하다보면 야근이 일상이고, 쓰던 서면이 생각나 집에서도 업무가 이어진다. 재판 때문에 미처 못 본 기록은 주말에 보려고 무겁게 들고 가지만, 한 글자도 읽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다고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도 일상과 업무의 분리가 쉽지 않다. 아이패드와 내 몸만 있으면 업무가 가능하니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다. 언제나 무언가 놓친 것이 없는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계속 생각하게 되고 좀 더 열심히 할걸 후회하고 자책한다.

그러다 보니 일상이 업무고, 내 사생활은 어디론가 사라진 기분이다. 피로가 쌓이면 즐겁고 보람찬 일도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패소한 판결문을 들고 의뢰인과 미팅하는 날은 진짜 곤혹스럽다. 과정이 어떠했든 결과가 이러하니 미안하고, 사정을 아니까 더 죄송하다. 그날은 진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변호사로서 오래 일하기 위해서 체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신 건강이 가장 중요한 듯하다. 특히나 변호사와 같은 정신노동, 감정 노동자에게는 스트레스 관리능력은 필수다. 업무와 분리되어 있는 자신의 공간을 갖는 것, 업무를 벗어던지고 몰입할 수 있는 자신만의 취미를 가지는 것은 정신 건강을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다. 내 경험상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여름이 지나간다. 이번 주에는 한강 난지공원에서 레츠락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인천 펜타포트 페스티벌에 이은 가을 축제의 시작이다.

EDM(Electronic Dance Music) 매니아와 클러버들의 축제인 글로벌 개더링(Global gathering), 재즈 팬들이 기다려온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끝나도, 달달한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과 15주년을 자랑하는 쌈지사운드 페스티벌 등이 계속 이어진다.

하늘도 맑고, 바람도 살랑거리는 이 좋은 가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젊은 기운 받으러 페스티벌 나들이 나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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