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의 일이다. 당시 서울고검장이던 A씨와 법조 출입기자들이 서울 근교에서 산행을 마치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명씩 일어나 자기소개와 더불어 건배사를 했다. ‘내 순서가 되면 뭐라고 해야 할까?’ 고심 끝에 이 자리를 주재한 A 고검장을 위한 덕담을 한 마디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웃나라 일본은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인사가 예측 가능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도 모름지기 선진국이 되려면 일본처럼 검찰총장부터 예측 가능한 인사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일본은 수도권을 책임지는 도쿄고검장이 검찰총장에 이은 서열 2위다. 이변이 없는 한 도쿄고검장이 차기 검찰총장에 오르는 게 일본 검찰의 확고한 관행이다. 서울고검장은 일본으로 치면 도쿄고검장에 해당한다. ‘일본처럼 예측 가능한 인사를 하자’는 말은 곧 서울고검장이 차기 검찰총장에 임명돼야 한다는 뜻이다. A 고검장에게 이보다 더 듣기 좋은 말이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기자는 그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너무 심한 아부 같아 황급히 다른 표현으로 바꿨다. “오늘 이런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검장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희망합니다.” 사실 서울고검장이면 검찰에서 올라설 만큼 올라선 것이다. 남은 자리는 총장 정도다. 그런 분한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자리를…” 운운한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총장이 되라는 덕담이다. 결과적으로 피장파장이지만 지나치게 노골적인 아부는 피했다는 안도감이 온몸에 퍼졌다.

잠깐 이야기가 딴 길로 샜는데, 기자는 종종 ‘일본의 검찰 출입기자들은 인사 예측 기사를 쓸 일이 거의 없으니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앞서 말했듯 일본 검찰은 늘 예측 가능한 인사를 한다. 법무성 관방장(한국의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형사국장(〃 검찰국장), 차관, 도쿄고검장을 차례로 거친 이가 결국 총장에 오르는 구조다. 다음 총장은 누가 될 것인지에 관해 한국 기자들처럼 머리 싸매고 예측 기사를 써댈 필요가 별로 없다. 일본 언론인들은 “검찰총장은 차기 4대(代)까지 다 정해져 있다”고 말하곤 한다.

한국은 어떨까. 검찰총장 바로 아래에 있는 9명의 고검장급 간부가 모두 차기 총장 후보다. 누가 청와대의 최종 낙점을 받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8층 총장실의 주인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서울고검장이 총장으로 올라선 사례가 상대적으로 많기는 하나 대구 등 지방 고검장을 총장에 기용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대검 차장과 법무연수원장 역시 강력한 경쟁자다. 2005년 서울중앙지검장 자리가 고검장급으로 격상된 뒤에는 중앙지검장이 가장 유력한 총장 후보로 떠올랐다.

일본 법무성 형사국장처럼 우리나라 법무부 검찰국장도 검찰 내 ‘빅4’로 불릴 만큼 막강한 직위다. 하지만 역대 총장 중에는 검찰국장을 거치지 않은 이도 많다. 현 김진태 총장을 비롯해 채동욱, 김준규, 정상명 전 총장의 경우 검찰국장과 인연이 없었다.

현 총장의 2년 임기가 오는 12월 초 끝나는 만큼 요즘 검찰 간부들은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10월 말, 늦어도 11월 초에는 차기 총장 후보가 지명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서초동에 근무하는 핵심 보직을 맡고 있는 고검장급 간부들을 거명하며 ‘3파전’이니 뭐니 말들이 많다.

박근혜 정부는 그간 총장 인사에서 특별수사 경험자들을 중용해왔다. 최근에도 공직비리 등 부정부패 단속 강화 방침을 밝혔으니 ‘특수통’ 중에서 발탁하리란 관측이 우세한 듯하다. 하지만 새 총장은 오는 2016년 20대 총선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선거법 위반사건 수사에 밝은 ‘공안통’을 낙점하리란 전망도 나온다.

지역도 중요한 변수다. 호사가들은 김현웅 현 법무부장관이 호남 출신인 점을 들어 새 총장은 영남권, 그 중에서도 대구·경북(TK)지역 출신이 될 것으로 점친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끊이지 않는 ‘TK 편중’ 논란을 의식한 청와대가 서울처럼 상대적으로 지역색이 약한 지역 출신을 선호하리란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마침 차기 총장 후보군이라 할 사법연수원 16, 17기 고검장들의 모교가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세 대학으로 압축되다 보니 학교를 따지는 시선도 감지된다.

우리나라 검찰의 총장 인사는 변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난이도도 무척 높은 고차방정식이다. 예측 가능성이 낮은 대신 반전의 묘미가 있다. 그래서 인사철을 앞두고 검찰 출입기자들이 저마다의 정보와 육감을 토대로 써낸 ‘답안지’를 서로 비교해가며 읽는 일은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그렇다고 인사가 재미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한국 검찰이 당면한 시대정신에 부합하고 국민에게 진한 감동도 주는 그런 총장 인사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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