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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法情]두 남자 이야기
김외숙 변호사·부산회  |  busandik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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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호] 승인 2015.09.21  1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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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3일, 상고를 기각하는 대법원 판결이 송달되었다. 피상고인을 맡았던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며 당사자 L을 떠올렸다. 그리고 몇 년 전 나의 당사자였던 K가 생각났다. L과 K의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았었다. 1심 패소 사건이었다는 점, 항소심부터 맡았다는 점, 재판 결과가 좋았다는 점이 그랬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공통점은, 그들에게 일어난 일의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나중이 아주 엄청났다는 것이다. 살면서 어느 날 일어난 별 일 아닌 것 같았던 사건이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를 나는 두 남자에게서 보았다.

K는 경남지역에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에는 곧바로 중공업회사에 취직이 되어 농사짓는 부모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그는 선박부품을 만드는 그 곳에서 20대의 청춘을 오롯이 바치었다.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아이들도 태어났으며 풍족하진 않아도 순탄하였다.

근속한지 17년째, 그의 나이 만 35세이던 해 3월 24일 오후 4시경 그는 대형선반 작업 중 발판과 함께 미끄러진다. 엉덩방아를 찧고 왼쪽 손을 바닥에 짚는 바람에 요추부 염좌, 경추부 염좌, 좌측 견관절 염좌의 진단이 나왔다. 근로복지공단도 군말 없이 승인하는 전형적인 업무상 재해였다. 그는 물리치료를 좀 받으면 곧 낫겠거니 하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통증은 온 몸으로 번져갔고 사지를 제대로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악화되기만 하였다. 더 기가 막힐 노릇은 어째서 이런 지경이 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속 시원히 알지도 못한다는 거였다.

의사들의 말은 제각각 달랐고 보상을 더 받으려고 꾀병 부린다는 눈총도 있었다. 회사에 복귀하기로 한 시한은 계속 늦추어졌다. 그는 속이 타들어갔다. 어서 병을 고쳐보겠다고 그는 서울의 대학병원과 유명의사를 찾아가 몸을 보였다. 외상후통증증후군, 근근막통증증후군, 어깨충돌증후군, 이상근증후군이라는 복잡한 진단을 받고 추가요양을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흔히 있는 사고와 이 길고 어지러운 병명들은 서로 상관이 없다 하였다. 요양급여는 끊어지고 복귀명령을 내리던 회사는 마침내 해고통보를 보내왔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내는 두 아들을 남긴 채 집을 떠났고 얼마 안 있어 이혼소장이 송달되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양쪽 목발에 의지해 간신히 움직이는 상태였다. 잠깐의 동작에도 그의 얼굴엔 땀이 비 오듯 흘렀고 숨이 가빴다. 그럼에도 반드시 엉킨 실타래를 풀고 삶을 되찾겠다는 그의 투지만은 꿋꿋이 살아있었다. 나는 그를 돕고 싶었다. 그날의 사고가 지금 내 눈 앞의 그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함께 밝혀내고 싶었다.

힘겹고 지난한 싸움 끝에 우리는 항소심에서 승소하였고 대법원에서도 그 승리가 확정되었다. 그가 인사를 하러 힘겨운 발걸음을 했을 때 나는 아이들의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 두 아들이 제 손으로 밥해먹으며 학교를 잘 다닌다고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 후로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나는 가끔 그의 안부가 궁금해지며 삶이 그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L은 인테리어업체에 속한 40대 후반의 근로자였다. 2009년 4월 15일 오전 11시경 아이스크림 가게의 실내 공사현장에서 천장작업을 하던 그는 사다리에서 추락하게 된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어깨통증이 심해져 그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어깨수술이 무사히 끝난 것 같았는데 뜻밖에도 그의 몸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의 걸음걸이는 이상해졌고 계단을 오르기도 힘겨웠다. 감각이 둔해진 그는 소변을 다 보기도 전에 바지를 올리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점점 일상생활조차도 그는 힘에 부쳐하였다. 그에게 의사들은 횡단성척수염이라 진단했다. 사고가 난 지 한참 뒤에 내려진 그 진단에 근로복지공단은 뜬금없다 하였다. 항소법원에서 소송구조결정을 받고 나를 찾아온 건 그의 아내였다. 그녀는 환자인 L을 대신해 온갖 자료를 찾고 의사를 만나고 법률사무소와 법원을 연신 드나들었다.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삶을 그래도 그녀는 씩씩하게 헤쳐 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와 나에겐 믿음이 있었고 결국 우리의 믿음대로 사건은 풀려나갔다. 이제 그녀와 가족은 도시를 떠났다. 그녀가 한숨 돌리기도 전에 딸이 아프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난 그녀가 잘 견뎌낼 것을 믿는다. 이미 연단된 그녀이기에.

살다 보면 어떤 일로 뜻하지 않게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때가 있다. 그러나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버리지 않을 때 삶은 더 성숙해지고 여무는 법이다.

변호사에게 책상 위의 사건들이 세상의 전부가 될 수는 없지만 내 책상 위에는 세상이 있고 오늘도 나는 의뢰인들의 이야기에서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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