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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바른소리]복면가왕처럼 복면피고인 할까요?
노경희 변호사  |  kikiru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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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호] 승인 2015.09.21  10: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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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주말 오후. 특별히 할 일도 없어 맥주를 홀짝거리며 TV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 우연히 접한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두어 달 전의 일이다. 별의별 희한한 가면을 쓴 출연자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면 그 직후 방청객과 판정단이 투표를 해서 승부를 가리는 토너먼트 형식의 대결이다. 노래를 부를 때 빼고는 음성변조 처리까지 되어 가면 속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가늠하기 힘든 구조다. 총 3라운드의 서바이벌을 거치는데 승자는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고 패자는 가면을 벗어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해당 회차 결승전에서 우승을 하면 이전 대회의 가왕이 방어전을 갖고 둘 중 방청객과 판정단에 의해 뽑힌 사람이 최종 우승자, 즉 복면가왕이 되는 형식이다. 현란한 춤사위로 무장한 댄스가수나 인형같은 외모의 아이돌 그룹이 판을 치는 시대에 일체의 시각적인 편견이나 선입견을 거부하고 오로지 가창력만으로 정면승부를 하겠다하니 나름 기특하다는 생각도 든다.

공정한 사회, 공정한 평가. 우리 사회의 화두를 되새기다 복면가왕의 원조는 ‘정의의 여신’이 아니었던가 하는 지점에서 잠시 침묵에 빠졌다. 일체의 선입견과 편견을 배제하고 공정한 평가를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할 목적이라면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 불편한 가면을 씌우는 것보다 그 노래를 평가할 판정단의 눈을 가리는 좀 더 쉬운 방법도 있다. 전국민을 상대로 한 예능 프로그램에는 적절치 않겠으나 인류가 정의를 이야기한 이래 로마 신화에까지 거슬러 역사를 구할 수 있는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다.

최근 집권 여당 대표 김무성씨의 사위에 대한 형사판결을 두고 시끄럽다. 코카인, 필로폰, 엑스터시, 대마초, 스파이스 등 구할 수 있는 마약은 모두 구한 그는 2011년 12월부터 작년 6월까지 서울 강남의 클럽이나 강원도 리조트, 자신의 승용차 등에서 15회에 걸쳐 마약을 투약했다는 것인데, 작년 5월에는 이틀 연속으로, 6월에는 이틀 간격으로 승용차 안에서 코카인과 필로폰을 흡입했다고 한다. 구속기소 되었으나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160시간과 40시간의 약물치료 수강명령이 내려졌다. 이를 두고 초범이라고는 하지만 상습성이 엿보이는 자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이례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나는 김무성씨의 사위에 대한 선처에 재판부의 법과 양심에 따른 판단 외에 다른 요소가 개입되었을 것이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집권 여당 대표의 사위가 아니었어도, 그의 변호인이 전관에다 재판장의 고교 동창이 아니었어도 집행유예의 선처를 받을 수 있었겠느냐는 논란이 이는 것을 보고 전관예우나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지칭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법불신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법률가라면 저울과 칼을 손에 들고 눈가리개를 한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 동상이 익숙할 것이다. 저스티스(Justice)라는 단어도 이 유스티티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디케(Dike)라고 불리기도 한다.

보통 왼손에는 ‘평등의 저울’을, 오른손에는 ‘양날의 칼’을 들고 눈은 가리개로 가린 모습이다. 저울과 칼, 그리고 눈가리개의 의미에 대해 저마다 조금씩 해석이 다를 수 있을 것이나, 저울은 엄정한 정의의 기준으로 심판을 내리되 그 전에 당사자들의 입장을 충실히 듣고 형량하라는 의미다.

그냥 저울이 아니라 평등의 저울이라 부르는 것은 설령 잘못이 있는 사람을 벌하더라도 그에 합당한 처벌을 할 것이지 과도한 처벌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칼은 판정에 따라 정의가 실현되기 위한 힘을 뜻하지만 양날을 갖고 있으므로 심판권을 남용할 경우 자신도 그 칼에 다칠 수 있다는 경고를 내포한다. 마지막으로 눈가리개가 뜻하는 바는 법과 정의를 실현할 때 관련자의 지위, 심판자와의 학연, 지연 등 개인적 연고를 고려치 않고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연일까. 우리 대법원 청사에서 만나는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지만 다른 손에는 양날의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고, 특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우리 법원이 원하는 정의의 여신은 눈을 뜬 채 심판하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공정한 재판에 대한 신뢰회복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차라리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복면을 씌워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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