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2일 오전 11시 무렵, 서울시청 기자실은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들의 병역관련 의혹에 시달리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격적으로 ‘공개 MRI 촬영’을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 무렵 박 시장은 ‘아들 주신씨가 MRI 사진을 바꿔치기해 병역을 기피했다’는 의혹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분위기만 보자면 박 시장과 그 아들은 이미 병역비리 사범으로 낙인 찍힌 상황이었다.

강용석 의원(한나라당 탈당)은 자신의 국회의원직을 걸고 “박 시장의 아들 주신씨가 가짜 MRI자료로 병역면제를 받았다”라고 주장하고 있었고, “박 시장의 아들 주신씨가 뛰어다니는 장면이나 병역비리에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주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여기에 몇몇 등 보수성향의 대형신문들까지 합세해 강 의원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 “의혹을 벗으려면 공개적으로 MRI를 찍으라”는 사설과 기사를 연거푸 내놓기도 했다.

며칠 동안 강 의원과 보수성향 신문들에 시달리던 박 시장이 자세를 바꿔 공세에 나서면서 서울시청에 모인 기자들의 관심은 몇 시간 뒤에 공개될 박 시장 아들의 MRI 자료에 집중됐다.

당시 기자들은 “MRI 결과에 강 의원이나 박 시장 중 어느 하나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 의원을 부추킨 보수신문과 한나라당 역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오후 12시 무렵, 몇몇 언론사들이 박 시장 아들이 서울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MRI 촬영에 들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각, 각 언론사 기자들은 오후 2시에 시작될 촬영에 앞서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하고 많은 병원 중에 하필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 선정된 것은 박 시장 아들 병역문제를 거론한 사람 중에 그 병원 주요 간부급 의사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오후 2시, 박원순 시장의 아들 주신씨가 MRI실 앞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의 눈에 들어왔다. 그 자리에는 60여명의 기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주신씨가 MRI를 찍으러 들어가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

특히, 기자단 전체간사를 비롯해 경제지, 석간신문, 방송사 등 언론사별 특성에 따라 선임된 부간사와 기자단 총무를 포함한 기자 4명은 MRI실에 따라 들어가 모든 과정을 직접 참관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CCTV를 통해 브리핑실에 모인 전체기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1시간 쯤 지나, 세브란스 병원은 “병무청에 제출된 MRI자료는 박주신씨의 것이 맞고, 주신씨는 심한 허리디스크를 앓고 있다”고 공식발표했다. 박 시장에 대한 의혹제기에 앞장섰던 모 교수도 직접 언론 앞에 나와 “기초자료를 잘못 알고 의혹을 제기했다”며 “박원순 시장과 그 가족에게 사과한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2012년 2월, 정국을 뒤흔들었던 박원순 시장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끝났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무책임한 폭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며 공세에 앞장섰던 강용석 의원과 한나라당을 비난했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대응을 안한 박 시장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마지막까지 비난을 멈추지 않았던 모 보수신문은 국민적인 조롱거리가 됐다.

당시 서울시를 출입했던 기자들은 그 문제가 완전히 끝났다고 봤다. “‘이제 다시 박 시장 아들의 병역문제’를 거론할 바보가 어딨겠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설령 있다고 해도 받아써주는 언론이 있겠느냐는 말도 나왔다.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MRI를 찍었는데 딴소리를 할 기자가 어디 있겠느냐”면서 “만약 나온다면 그건 ‘대한민국이 독재국가가 됐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 기자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정말 거짓말처럼 ‘박원순 시장 아들의 병역비리’를 거론한 언론이 등장했다. 그것도 국내 방송사 가운데 1, 2위를 다툰다는 곳이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가 떠오른다.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비속어도 떠오른다. 하지만 정말 걱정인 것은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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