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1다49981 판결

 

 I. 사실관계

 甲이 乙 종친회와 토지 매수계약을 체결한 후, 乙 종친회를 상대로 매매를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청구 등의 소를 제기하였는데, 소송계속 중 변론종결 전에 위 토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지정해제되었음에도 甲이 이를 알지 못하여 주장하지 아니한 채 그대로 소송이 진행되었고, 법원 역시 이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위 토지가 허가구역 내에 위치함을 전제로 (위 매매계약이 유동적 무효)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 청구는 기각되고, 토지거래허가신청절차의 이행 청구는 인용한 판결이 있었다. 이에 대해 피고가 패소 부분에 관하여 항소하였으나, 항소심은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고, 위 판결은 그 무렵 확정되었다. 그 뒤 甲이 토지거래허가를 받은 다음, 乙 종친회를 상대로 다시 매매를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하는 소(이하 이 사건 후소)를 제기하였다. 이 후소에 대하여 乙 종친회는 甲이 패소한 이 사건 전소 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어 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Ⅱ. 쟁점

쟁점은 전소 변론종결 이전에 존재하고 있던 공격방어방법을 동일한 소송물에 대한 후소에서 주장하여 전소 확정판결에서 판단된 법률관계의 존부와 모순되는 판단을 구하는 것이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반하는 것인지 여부이다.

Ⅲ. 법원의 판단

1. 원심(서울고등법원 2011. 5. 27. 선고 2010나85579 판결)

이 사건 전소 중 소유권이전등기청구 부분과 이 사건 후소는 그 소송물이 동일하다고 할 것이나, 전소에서도 이 사건 매매계약의 유효성은 인정되었으므로 후소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해제로 인해 위 매매계약이 확정적으로 유효하게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전소 판단과 모순되지 않고, 그 후 해당 토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제외되었다는 우연한 사정에 기초하여 후소는 기판력에 저촉된다는 주장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렇다면, 원고에게는 후소 제기에 따른 권리보호의 이익이 있고,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

2. 대상판결 - 원심 파기환송

동일한 소송물에 대한 후소에서 전소 변론종결 이전에 존재하고 있던 공격방어방법을 주장하여 전소 확정판결에서 판단된 법률관계의 존부와 모순되는 판단을 구하는 것은 기판력에 반하는 것이고, 전소에서 당사자가 그 공격방어방법을 알지 못하여 주장하지 못하였는지 나아가 그와 같이 알지 못한 데 과실이 있는지 여부는 묻지 아니한다(대법원 1980. 5. 13. 선고 80다473 판결, 대법원 1992. 10. 27. 선고 91다24847, 24854(병합) 판결 등 참조).

후소의 소송물과 전소의 소송물은 모두 이 사건 매매계약을 원인으로 하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으로서 동일하므로 후소는 기판력에 저촉되어 허용될 수 없고, 비록 전소는 이 사건 토지가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음을 전제로 한 반면, 후소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해제되었음을 전제로 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이 사건 토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되어 위 매매계약이 확정적으로 유효하게 되었다는 사정은 전소의 변론종결 전에 존재하던 사유이므로, 원고가 그러한 사정을 알지 못하여 전소에서 주장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후소에서 새로이 주장하여 위 매매계약에 기한 원고의 피고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의 존부에 대한 판단과 모순되는 판단을 구하는 것은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원고가 전소의 변론종결 후에 이 사건 토지에 대한 토지거래허가를 받았으나, 그 허가는 해당 토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됨으로써 토지거래허가의 대상에서 제외된 후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이 사건의 결론에 영향을 미치는 사정변경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기판력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원심의 판단은 기판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한다.

Ⅳ. 대상판결의 분석

1. 기판력의 정당화 근거

확정판결의 판결내용에 부여된 후소에 대한 통용력 내지는 구속력을 기판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판력 이론에서 최근 당사자가 전소에 주장하지 않았던 사실을 후소에 있어서 주장하는 것이 왜 기판력에 의하여 구속되는가, 어떻게 그 구속이 정당화되는가에 대한 기판력의 정당화 근거론이 문제되고 있는데, 대상판결에서도 이러한 쟁점이 도사리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입장이 있다.

(1) 제도적 효력설(=법적 안정설)

기판력은 법원의 공권적·강행적 분쟁해결이라는 민사소송의 제도목적에 불가결한 제도적 효력으로 권리관계의 법적 안정을 위하여 동일한 분쟁의 반복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기판력의 근거=제도적 효력=법적 안정. 국내에서 이러한 입장은 김홍엽, 756면; 정동윤/유병현, 720면). 전통적인 이론 가운데 기판력의 근거를 일사부재리나 분쟁해결의 일회성으로 보는 때에는 대체로 이러한 입장으로 이해한다.

(2) 절차보장설

헌법상 보장되고 있는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전제한다면, 당사자가 법원의 판단의 형성을 위한 재판자료를 제출할 기회가 제한되는 것은 헌법의 이념에 반하고 기판력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그리하여 기판력의 근거로 절차보장의 이념이 원용된다. 즉 당사자는 전소에서 자기가 제기한 소송상의 청구를 이유 있게 하기 위하여 사실주장을 행하고, 다툼이 있는 사실에 대하여 증거를 제출할 기회가 부여된 이상, 법원이 행한 판단을 수용하여야 할 자기책임을 진다는 것이다(기판력의 근거=제출책임효=절차보장. 이러한 관점은 Henckel, Prozessrecht und materielles Recht, 1970).

(3) 이원설

법적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효력으로서의 기판력의 근거와 함께 당사자 쌍방이 변론할 지위와 기회, 즉 절차보장을 받은 이상, 패소한 결과를 다시 다투는 것은 공평의 관념에 반한다는 것에서 생기는 자기책임에서 그 근거를 구하는 입장이다(국내에서 이러한 입장은 이시윤, 596면; 정영환, 988면). 법원의 판단인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의해 당사자에게 구속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당사자에게 그 구속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할 정당화 사유가 존재하여야 한다. 따라서 기판력의 정당화 근거론으로서는 법적 안정을 위한 제도적 효력만이 아닌, 이원적 파악이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대법원 1995. 4. 25. 선고 94다17956 전원합의체 판결의 ‘별개의견’에서도 법적 안정성의 관점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절차보장의 관점에서 전소의 소송절차 내에서 문제로 된 당해 소송물에 관하여 변론을 하고 또 그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받을 기회가 있었느냐 하는 점을 당연히 고려하여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이원적인 입장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2. 기판력의 표준시와 실권효

소송물인 권리관계의 존부에 대하여 수소법원은 변론주의의 원칙에 따라서 당사자가 제출한 사실과 증거에 기하여 판단을 행한다. 그리고 사실심 변론종결시(기판력의 표준시=기준시)까지의 사유는 전부 당사자가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어서 그 사유에 대하여 당사자에게 반복을 금지하여도 부당한 것은 아니다. 변론종결시의 권리관계가 기판력으로 확정되면, 당사자는 표준시 뒤에 생긴 사유를 가지고 판결내용을 다투는 것은 무방하나, 표준시 전에 생긴 사유를 주장하여 판결내용을 다툴 수는 없다(민사소송법 제218조 제1항, 제2항, 민사집행법 제44조 제2항 참조).

3. 기판력과 당사자의 절차적 지위

기판력의 표준시와 실권효와 관련하여, 당사자가 표준시 전의 사유를 주장하여 변론종결시의 권리관계의 존부를 다투는 것은 획일적으로 배척되고, 전소에서 제출하지 못한 데에 대한 과실의 유무를 묻지 않고 실권된다는 것이 통설이고, 대상판결도 마찬가지 취지이다. 앞에서 살펴본, 기판력의 정당성의 근거에 대하여 법적 안정을 위한 법원의 공권적·강행적 분쟁해결의 제도적 효력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당연히 이렇게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판력의 시적 한계에 있어서 표준시 전의 사유는 무엇이든지 일체 실권되는가. 전소에서 제출하지 못한 데에 대한 과실이나 특별한 사정의 유무를 묻지 않고 실권되는가 등에 대하여 좀더 검토하고자 한다. 앞에서 기판력의 정당성의 근거에 대하여 최근 전소에서 당사자에게 절차보장이 주어진 것에 의한 자기책임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게 주장되고 있다고 언급하였는데, 이 입장에서는 일반적으로 당사자에게 전소에서 그 제출을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사유에 한하여 후소에서 다시 이를 내세우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달리 보게 된다. 전소의 절차 내외의 구체적 경과나 사정을 고려하여 전소부터 후소에 이르는 분쟁경과나 분쟁전개를 주시하면서 기판력에 의해 실권시키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를 당사자 사이의 공평으로부터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책임을 따짐에 있어서 당사자의 知·不知, 고의·과실 등의 사정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사안에서 甲이 해당 토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지정해제된 사실을 알 수 없었고, 그에 대하여 아무런 고의·과실이 없었다면, 다시 매매를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하는 소는 전소 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대상판결에서 기판력 이론은 좀 더 상세한 접근의 필요성이 크다.

결국 기판력의 표준시라는 개념은 기판력에 따른 실권을 위한 하나의 지표에 머물러야 하고, 어떠한 이유에서 무엇을 차단하여야 하는가는 기판력의 원점으로 돌아가 실질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게 된다. 실권효가 당사자 사이의 소송에서의 공정한 행동을 규율하기 위한 이론이라고 한다면, 전소에서 甲이 어떠한 이유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지정해제된 사실을 주장하지 못하였는지를 고려하면서 다시 甲과 乙 사이의 공평을 저울질하는 조치를 강구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4. 마치며

따라서 사안과 같은 상황이라면, 대상판결의 결론적 판단과 달리, 사정에 따라서 실권시킬 수 없고, 기판력 저촉 여부를 좀 더 살펴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甲은 ‘전소 변론종결시까지 해당 토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지정해제된 사실을 알지 못하였고, 또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지정해제되었다는 주장을 제출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귀책사유가 없는’ 것의 구체적 사정을 주장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사견으로서 이러한 입장은 동태적·상황관계적인 이론을 취하는 것으로 종래의 기판력의 법사고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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