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공범자인 공동피고인의 법정외 진술의 증거능력에 대해 살펴보자. A가 C의 양팔을 잡고 B가 C의 얼굴을 때린 경우 A와 B는 폭행죄의 공동정범으로 공범인 공동피고인의 관계에 있다. B는 자신의 폭행사실과 관련하여 수사과정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같이 재판을 받은 공동피고인 A도 법정에서는 B와 같이 공동폭행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A는 경찰과 검찰 수사과정에서 수사관의 설득과 추궁으로 자백을 한 바 있다. 따라서 B에 대해 별다른 유죄의 증거가 없다고 할 경우, A의 자백진술이 담긴 사법경찰관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와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인정여부에 따라, B에 대한 유무죄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공동피고인 A가 법정에서는 부인하고 있지만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과정에서 자백을 해버린 경우 A의 자백진술이 담긴 수사상의 조서를 B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 문제된다(A가 법정에서 자백하고 있다면 공동피고인의 증인적격 내지 공범자의 법정진술의 증거능력 문제로 전환될 것이다).

B는 A의 법정외 진술이 담긴 사법경찰관 작성의 피신조서에 대해서는 증거의견으로 내용부인(실무상으로 대개 부동의라고 함)을 하여 해당 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정할 수 있다(대판 2004. 7. 15, 2003도7185). 하지만, B는 A에 대한 검사 작성의 피신조서에 대해서는 내용부인을 할 수 없고 증거부동의만 가능하다. 이와 같은 검사와 사경의 증거능력요건 차이는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될 때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A에 대한 검사 작성의 피신조서에 대해서는 B가 부동의 하더라도 법 제312조 제4항의 전문법칙의 예외 요건을 갖추면, 즉 A가 법정에 출석하여 그 진술의 임의성 및 성립을 인정하고 B에게 반대신문의 기회가 주어지며 A 진술의 특신상태가 증명되면 A의 피신조서를 B의 범죄사실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있다(대법원 1990. 12. 26, 90도2362).

이번에는 공범자 아닌 공동피고인의 법정외 진술의 증거능력 문제를 살펴보자. 굴지의 항공회사 임원인 B는 항공기 내에서 소란을 피워 항공보안법위반죄로, A는 B의 부하직원으로 B의 항공보안법위반죄의 증거를 은폐하려 한 혐의로 각각 기소되어 같이 재판을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A가 수사를 받던 중 조사관의 끈질긴 추궁에 못이겨 B의 항공보안법위반죄의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한 경우 A의 진술이 담긴 사경 작성의 또는 검사 작성의 피신조서를 B의 사건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 문제된다. A와 B는 공범자 아닌 공동피고인의 소송관계에 있으므로 A는 B의 범죄에 대해 순전히 제3자의 지위에 있게 된다. 따라서 B는 A에 대한 검사 작성의 피신조서뿐만 아니라 사경 작성의 피신조서에 대해서도 내용부인을 할 수 없고 증거부동의만 가능하다. 이에 따라 위 각 조서는 법 제312조 제4항의 전문법칙의 예외 요건, 즉 A의 법정출석과 진술의 임의성 및 성립 인정, B의 반대신문 기회 보장, 특신상태 증명이 충족되면 증거능력이 부여될 수 있다.

증명력과 관련하여서는 공범자인 공동피고인의 법정자백이나 법정외 자백에 보강증거가 필요한지 여부의 문제가 있다. 법 제310조는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의 증거인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피고인의 자백이 범죄사실의 유일한 증거인 때에는 보강증거가 있어야 유죄판결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공범자의 자백이 있는 경우에도 법 제310조를 적용하여 보강증거가 있어야 하는지 문제된다. A와 B의 공동폭행사안에서 폭행사실에 대해 B는 일관되게 부인하는 반면 A가 법정에서 자백하거나 혹은 A에 대한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에 A의 자백이 기재되어 있는 경우, A의 유죄판단에 대해 보강증거가 있어야 함은 당연하지만, 폭행을 부인하는 B의 유죄판단에도 보강증거가 필요한가이다. 판례는 법 제310조 피고인의 진술에는 공범자의 자백은 포함되지 아니하므로 A의 자백진술에 대한 보강증거가 없어도 B를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대법원 1985. 7. 9, 85도991). 더불어 공범자의 자백은 상호 보강증거가 될 수 있으므로 A, B 모두 자백하는 경우에는 A, B의 각 진술은 상호간에 서로 보강증거가 될 수 있다(대법원 1990. 10. 30, 90도1939). 이러한 공범자의 법리로 인해 A는 자백, B는 부인하는 경우 부인하는 B는 유죄로 처벌되지만 자백하는 A는 보강증거가 없으면 무죄로 될 수 있는 모순이 발생한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