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5일부터 7월 3일까지 개최된 제29차 인권이사회 정례회기 마지막 날 오후, 유엔인권이사회 회의장에서는 각국 인권업무 담당자들 앞으로 재미있는 초청장이 전달됐다. 내용인 즉, 점심시간도 제대로 없는 혹독한 인권이사회 일정으로 지난 3주간 인권업무 담당자들의 인권상황이 인권이사회 의제 4수준(인권이사회의 관심을 요하는 인권상황)에 이르렀으니,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저녁파티에 꼭 참석해달라는 것이었다.

인권이사회는 기존 인권위원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유엔의 3대축(평화와 안보, 개발, 인권)의 하나인 인권을 더욱 보호하고 증진시켜나가기 위한 취지로 지난 2006년 출범하였다.

출범 이후 인권이사회는 ▲매년 3, 6, 9월에 각 4주, 3주, 3주 총 10주에 걸쳐 개최되는 정례회기뿐만 아니라 ▲가자사태, IS 및 보코하람 테러행위 등 긴급 인권현안 발생시 수시로 개최되는 특별회기 ▲전 세계 인권상황에 관해 유엔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55개 특별절차(Special Procedures) 및 193개 전 유엔회원국의 인권상황을 점검하는 보편적정례인권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등 다양한 인권메커니즘의 활동으로 지난 9년간 그 역할이 가시적으로 증대되었다. 이와 함께, 인권이사회 업무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인권이사회 정례회기 마지막 날이면 으레 위와 같은 파티가 개최되는 배경이 된 것이다.

인권이사회의 업무량 증가 및 역할 확대와 함께, 인권이사회 활동 전반을 지원하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도 현저히 바빠졌다. OHCHR은 인권이사회에서 매 회기 채택되는 결의가 원활히 이행되도록 여러 지원을 하고 있으며, 정치, 경제, 기후변화, 환경, 위생, 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인권 이슈를 분석하고 다루는 특별절차 활동뿐만 아니라, 연 3회 개최되는 UPR 수검 또한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OHCHR은 인권최고대표의 리더십 하 세계 각 지역에 설치된 현장사무소와 인력을 통해 국제 인권메커니즘 강화, 인권위반에 대한 불처벌 방지 및 책임규명 강화, 법치증진, 경제·개발분야에 인권개념 통합 추진, 민주주의 공간 확대 등 다양하고 강도 높은 인권업무를 수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소위 ‘인권 전성기 시대’를 누리고 있는 인권이사회와 OHCHR에게 작금의 현실은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인권이사회와 OHCHR의 역할에 대한 기대와 수요는 최근 급격히 증대된 데 반해, 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할 유엔의 재정적 지원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전체 정규예산의 3%만이 인권분야에 할당되고 있으며, 예산 대부분은 평화와 안보, 개발, 그리고 행정 등 기타 분야에 소요되고 있다. 정규예산만으로는 늘어나는 인권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OHCHR은 국가들의 자발적 기여금(비정규 예산)에 크게 의존해 오고 있는데, OHCHR의 전체 예산상 정규/비정규 예산 비율은 그간 거의 40%/60%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가들의 자발적 기여 수준마저도 하향세를 보이고 있어 OHCHR의 고민은 날로 깊어가고 있다.

2015년도 시작과 함께, 인권이사회와 OHCHR은 이러한 제약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올 초 의장 취임 이래 호아킴 뤼커(Joachim Ruecker) 현 인권이사회 의장은 인권이사회가 ‘스스로의 성공의 희생양(the victim of its own success)’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 하에 결의안 격년제화, 결의안 일몰조항 도입 등 결의안 감소를 통한 인권이사회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OHCHR 부담 경감을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Zeid Ra’ad Al Hussein) 현 인권최고대표 또한 OHCHR의 본부조직 재구성, 지역 현장사무소 통폐합 추진, 내부 보고절차 간소화 등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해 오고 있다.

2016년도인 내년은 인권이사회가 출범한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그간 인권이사회와 OHCHR이 전 세계 인권 보호와 증진에 기여한 바는 너무도 자명하고, 앞으로도 이러한 활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당위성과 함께, 이제 곧 겨우 10돌을 맞이하는 ‘어린’ 조직인 인권이사회와 이를 지원하는 OHCHR을 어떻게 활용하고 관리해 나갈지, 아울러 이들을 어떻게 보다 더 성숙한 조직으로 키워나갈지에 대해서도 국제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권이사회와 OHCHR이 현재 기울이고 있는 개혁노력은 좋은 출발점으로 본다. 책임 있는 인권이사국인 우리도 인권이사회가 탄생 10주년을 성장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이러한 노력에 적극 동참하고 지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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