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의 첫 해외 여행지는 2000년 여름에 떠난 일본이었습니다. 당시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일본의 무더위, 지하철에서 조용히 책을 보고 있는 일본인들, 조금만 옷깃이 스쳐도 “스미마셍”을 말하던 그들, 휴지 조각 한장을 보기 힘들 정도로 매우 깨끗했던 일본 거리, 편의점 가는 방향을 물었는데 친절하게 편의점까지 함께 가주신 동네 아주머니. 평소 역사책으로만 알았던 일본의 이미지와는 달리 생각보다 깨끗하고 친절한 일본이었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서 1년 가까이 지내면서 예전에 여행하면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면도 발견하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영리더 프로그램은 아시아 각지에서 온 법조인을 상대로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수업 중에는 일본에 온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수업 이외에 일본 문화 속에서 생활하면서 보고 느꼈던 점 일부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섬나라와 와(和)

일본의 가장 큰 특징은 '와(和)’를 중요시한다는 것입니다. '와'는 인간과 인간의 부드러운 관계를 의미하는 일본의 건국이념인데, 604년경 쇼토쿠(聖德)태자가 제정한 일본의 최초 헌법인 17개조의 제1조가 바로 '와(和)’입니다. '와'를 통해 '메이와쿠 금지’, ‘키쿠바리’ 뿐 아니라, 자신과 타인의 것을 확실히 구분하여 자신의 본분을 명확하게 지킨다는 의미의 ‘이치닌마에(一人前)’ 문화도 나옵니다. 친구들과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시려고 2-3인분의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눌렀더니 한 개의 커피가 나오는 동시에 잔돈이 나와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이치닌마에’에서 소위 와리깡(割り勘)이라고 불리는 더치패이 문화가 파생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와'를 굳건히 지키지 위해서 말보다는 명확한 부시(武士) 문화가 발달한 점이나, 막부 시절에도 천황을 제거하는 대신에 그를 상징적인 신성불가침 존재를 만들어 놓고, 쇼군이 섭정을 펼친 것도 ‘와’의 전통과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히노마루(日の丸)와 기미가요(君が代)

일본(日本)은 말 그대로 ‘해가 뜨는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은 해를 상징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일상에서 많이 쓰지 않는 한자인 ‘둥글 환(丸)’을 일본에서는 자주 보게 되는데 이는 둥근 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일본 천황이 거주하는 동경 에도성의 중요한 건축물의 이름이 '혼마루(本丸)'이고, 동경역 주변거리를 '마루노우치(丸の内)'라고 합니다. 특히, 일장기의 이름을 '히노마루(日の丸)'라고 하는데, 메이지 시대에 '기미가요(君が代)'와 함께 군국주의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기미가요에서 기미(君)는 상대방을 뜻하기도 하지만 군국주의 시절에는 천황을 의미하였습니다. 따라서 패전 이후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일본 내에서도 이를 사용하지 말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1999년 일본 국회는 이를 공식적인 국기와 국가로 인정하였고, 그 이후에 학교 조례 시간에 히노마루에 대한 경례와 기미가요 제창을 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히노마루 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여러 차례 위헌 소송이 있었지만, 일본 최고 재판소는 이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현재까지 견지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일본 최고 재판소가 위헌을 판정한 경우가 10건을 넘지 않는다는 점을 볼 때, 이러한 일본 사법부의 소극적 태도는 국회와 사법부 사이의 '와(和)'를 고려해서 나온 것은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저작권자 © 법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