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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실]오심은 없다
이경원 국민일보 기자  |  neosar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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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호] 승인 2015.09.07  10: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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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확정판결의 효력을 함부로 배제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건전한 비판은 많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인복 대법관이 5년 전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 밝힌 고견을 받들어 이 글을 쓴다. 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포함된 지난 광복절 특별사면에 대해 운운하려 한다. 과연 국민이 보기에 힘이 난 사면이었는지 따져보고자 한다. 누구든지 건전히 많이 비판하라니, 이게 꼭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형식논리에 대드는 짓은 아닐 것이다. 사면권이 명시된 헌법은 국민이 만든 최고법임을 안다. 다만 나는, 그저 야구경기를 보는 사람의 마음으로 최 회장의 특별사면을 한번 바라보고 싶다.

나는 최 회장의 특별사면이 잘못됐다 말하지 않겠다. 이의제기가 불가한 그 엄숙한 재정(裁定)은 야구경기의 볼 판정과 매한가지일 것이다. 흔한 분노와 달리, 야구경기에서 스트라이크-볼 오심(誤審)이란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경기규칙상 스트라이크의 정의부터가 “심판원이 ‘스트라이크’라고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잘못 심판된 스트라이크가 영영 없듯, 잘못 심사된 특별사면도 애초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지나가버린 야구공을 쳐다보는 사람의 심정으로 그의 특별사면을 바라보고 싶다. 규칙을 잘 알아도, 번복을 기대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여전히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 공만 진짜 스트라이크라고 침을 튀겨대지 않던가.

따라서 알아보겠다. 정부가 던진 특별사면은 국민의 마음 중심을 꿰뚫었을까, 아니면 선언된 것뿐일까. 굴절 없는 국민의 법 감정을 파악하는 데 여론조사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사면 직후 모바일리서치 기관 ‘오픈서베이’에 성별·연령별 동수로 꾸려진 전국 성인 1000명의 설문을 의뢰했다. 얼마간 돈을 지불하니 1000명의 스마트폰으로 같은 질문이 배달됐다. “정부의 최 회장 특별사면은 적절했습니까?” 그렇다는 이가 181명, 아니라는 이는 3배를 넘는 585명이었다. 모르겠다는 이가 234명이었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가 ±3.10% 포인트였다. 오차범위 한참 바깥에서 국민 정서가 정부와 갈라져 있었다.

많은 국민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경제 활성화’의 대의를 피곤해했다. 오너가 없어 기업이 멈추고 경제가 침체했다는 재계 주장에는 70%가 냉소했다. “‘경제 살리기’를 위해 비리 기업총수를 사면하는 일이 필요합니까?” 198명이 고개를 끄덕일 때, 694명은 가로저었다. “경제인 14명의 특별사면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정부는 ‘쪽지 사면’이 없었던 유일한 사례라며 자찬했지만, ‘어느 정도 문제 있다’는 평가가 326명으로 가장 많았다. ‘보통’이 270명, ‘매우 문제 있다’는 214명이었다. ‘매우 잘했다’는 응답은 38명이 했는데, 대개 50대와 60대에서 나왔다. 30대에서는 200명 중 2명이 이번 사면을 크게 칭찬했다.

“한국사회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아직 통합니까?” 784명이 ‘현재 진행형’이라 답했다. ‘이젠 옛말’이라는 이는 129명에 불과했다. 국민은 국가가 최 회장을 이종이금(二縱二擒)했다는 걸 잘 안다. 그 면죄의 이유가 매번 같다는 건 더욱 잘 안다. 광복 63주년에도 70주년에도, 그의 자유가 합당한 근거는 재력이었다. 2008년 8월 사면심사위원회가 먼저 이렇게 말했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 선진 일류국가 도약을 위해…” 이 대단한 자유는 과연 일류로의 도약으로 화했던가? 국가의 선물을 받아 한 일이 선물투자였다. “사면복권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범행에… 실형의 처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재판부는 다시 법정에 선 그를 개탄했다.

분노하는 대신 이 흐름에 어느 정도 학습된 세상도 있다. 이번 특별사면에 최 회장이 낀다는 건 여의도 금융투자업계가 먼저 알았다. SK 관련주를 사두면 광복절이 지나 이익을 얻을 거라고 증권시장 애널리스트들이 역설했다. 사면의 화답으로 ‘통 큰 투자’가 이뤄질 거란 예상은 분석 축에도 못 들었다. 성경책을 든 최 회장이 교도소를 나서자 과연 거명되던 주식들이 날아올랐다. 언론은 어떤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한국의 재벌 집착증(Chaebol Fixation)을 일갈할 때, 국내 언론은 회장님의 절치부심과 공격적 옥중경영을 전했다. 그가 벤처 대표들과 도시락을 먹자 ‘광폭 행보’를 격찬한 신문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이며, 잘못 심사된 특별사면이란 없을 것이다. 다만 2010년 8월 11일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 회의의 한 발언을 그대로 소개하고 싶다. “과연 제가 여기에서 얼마나 거부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이 없지 않습니다… 지난번 사면할 때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들은 다 되었죠. 그게 상당히 국민 정서에 반한 것은 분명했어요.” “대상자들이 아무래도 대기업 위주”라는 외부위원의 지적에 정부측 위원은 “우리 경기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 답했다. 나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 담담히 말하는 투수가 늘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경기는 끝까지 보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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