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딸아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자 고민이 너무 많아서 혼자 힘으로는 어찌 할 수가 없는지 기도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오래 전 세례를 받고 성당을 다니다 어린 아이들 양육을 핑계로 수년 전부터 냉담자로 지내던 나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함께 교회를 가리라 생각 중이었다. 교회를 보내달라는 녀석의 말은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얼마나 고민이 많길래 저러나 걱정도 되었다.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 딸아이와 의도적으로 더 많은 대화를 시도했다. 과연 저 조막만한 머리 속에 담긴 고민들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었고 도와주고 싶었다. 사춘기가 된 건가 의심하던 작년 무렵부터 “하나님은 기도하면 다 들어주시냐”고 수도 없이 질문하고, 웬만해선 엄마한테조차 자신의 비밀을 잘 털어 놓지 않는 터였다. 어렵게 녀석의 고민에 하나씩 접근할 때마다 이상한 희열이 느껴졌다.

커서 뭘 해서 먹고 살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아니 대학생인가? 벌써 왜 이런 고민을 하나 궁금했다. 여러 매체에서 청년실업을 얘기하고 있으니 녀석도 당연히 아는 건가. 그런 고민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면 먹고 살 길은 다 열리게 되어 있다는 상투적인 충고는 녀석의 마음에 조금의 위로도 되지 않는 듯하다. 학원 숙제에 스트레스를 잔뜩 받을 무렵에는 뜬금없이 대학을 안 가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겠다고 한다.

수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녀석은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다가 풀리지 않으면 닭똥 같은 눈물을 똑똑 떨구며 나는 공예가나 작가가 되고 싶은데 왜 수학공부를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묻는다. 자신이 교육부장관이면 이런 교육 다 없애고, 하고 싶은 거 실컷 공부해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할 텐데 어른들은 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며 분개하기도 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수학적인 논리성이 필요하고 수학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라고 말해 주고 돌아서면서, 어찌 보면 틀리지 않은 녀석의 말에 마음이 아프고 이 시대 못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녀석에게 진정 미안하다. 어느 때인가는 녀석의 고민상담이 교육정책에 대한 논쟁으로 번져 한참 티격태격하다가 궁해지고 미안해진 나는 농담으로 “엄마가 지금이라도 교육학을 공부해서 교육정책개선에 여생을 바쳐볼까?” 했다가 녀석에게 핀잔만 들었다.

“엄마가 설사 성공한다손 치더라도 그건 우리 다음 세대들이나 혜택을 받겠지. 그게 지금 내 고민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냐고.” 그래, 지금 너의 고민해결을 위해 대화하던 중이었지? “네가 혜택을 못 받더라도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다면 장기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지, 안 그러냐?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이냐?”하며 꽁무니를 빼고 만다.

녀석의 또 다른 고민은 나를 정말 부끄럽게 했다. 녀석은 3학년 남동생을 걱정하고 있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남동생이 컴퓨터와 태블릿을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생긴 고민인 모양이다. 해맑은 남동생이 게임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려고 컴퓨터를 하다가 만에 하나 소위 야동이나 음란정보를 접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귀엽기도 하고 공감도 가고 마음이 착잡했다. 컴퓨터에 유해정보 차단프로그램을 설치하고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차단서비스도 이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차단은 힘든 것 같다.

심지어 인터넷포털이나 신문사 사이트에서 뉴스만 몇 번 클릭해도 좌, 우, 아래 심지어 기사를 덮으면서 뜨는 광고배너들, 최근 늘어난 움짤광고들은 참으로 민망하고 어른인 나도 눈 둘 곳 없게 만든다.

어른들은 컴퓨터에 그런 정보가 넘쳐나는데 왜 제대로 막아주지 않느냐며 눈시울을 붉힌다. 인간의 몸이나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무조건 부끄러워할 대상은 아니며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즐길 수도 있는 거다, 아직은 어려서 잘 알지 못하겠지만 인터넷이든 다른 매체에서든 자연스러운 성인문화에 대해 무조건 통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그건 또 다른 통제사회나 감시사회로 가자는 얘기가 될 수 있다는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다가 결국 수습이 안 되는 국면에 봉착. 다시 방향을 바꾸어, 어른들이 청소년유해물, 음란물 차단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어떻고…장황한 설명을 하고는, 엄마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아보고 더 노력하겠다고 약속해 본다.

녀석의 고민을 알아내도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다만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고라도 있으니 마음은 다소 편해졌다. 아직도 털어 놓지 않은 녀석의 고민은 많을 것이다. 그 고민들에 하나하나 다가가다 보면 녀석은 어느새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 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녀석의 귀엽고 예쁜 고민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못난 엄마는 더욱 더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녀석은 자신보다 더 제대로 된 세상의 잘난 어른이 되길 꿈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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