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는가?”

고대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하늘에 가면 신이 두 가지 질문을 했는데, 대답에 따라서 천국에 갈지 말지가 정해졌다고 한다.

영화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2007)’에 등장하는 대사이다. 이 영화에서는 암에 걸려 길어야 1년 정도 살 수 있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아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른 두 노인(잭 니콜슨, 모건 프리먼)이 우연히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가 함께 병원을 탈출한 뒤 마음 속으로만 간직해왔던 ‘해보고 싶은 것’들을 목록에 적고, 하나씩 지우면서 유쾌한 여행을 떠나며 진정한 우정을 나눈다.

그들의 버킷리스트는 ‘눈물나게 웃기’ 등 소소한 것부터 ‘타지마할 구경하기, 카레이싱, 아프리카 세렝게티 사냥, 스카이다이빙, 이집트 피라미드 내려다보기, 문신하기’ 등 평소 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주중에 재판, 접견, 서면작성, 의뢰인 면담으로 일상을 보내는 내 모습과 대비되었다. 늘 습관처럼 사무실에 매일 ‘해야 할 일 목록’을 적어놓고 다 했을 때마다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도 나름대로의 즐거움이라 여겼었는데, 정신없이 살다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야 뒤늦게 깨닫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찾고 싶다 라고, 인생을 좀 더 폭넓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고, 해보고 싶은 것들에 대한 목록인 ‘버킷리스트’를 기록하여 하나씩 지우면서 기쁘게, 즐겁게 살아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행에 옮겨보았다. 그 결과 ‘바이올린, 골프, 중국어’등 새로운 배움의 즐거움부터, ‘소설 쓰기’등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들과 ‘터키 여행, 캐나다 루이스 호수에서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음악 ‘Lake Louise’를 들으며 걷기, 아프리카 사파리투어, 페루 와카치나 사막에서 미끄럼타기, 카리브 해 크루즈’ 등 대부분이 여행인 버킷리스트가 만들어지고야 말았는데, 업무 시간 외 틈틈이 시간을 내서 배우거나, 취미로 삼고, 매년 여름 휴가를 보내며 위 리스트 목록을 하나하나 실천하고는 한다.

그래서 영화 속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지만, 두 번째 질문을 마주하니,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아봐야 될 거 같고, 앞으로 살면서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도 생각해 봐야 될 문제였다.

당장 떠오르는 생각으로는, ‘난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인가?’ ‘평소 난 주변 사람들과 타인을 배려하고 도우면서 살아왔는가?’부터, ‘변호사로서 좋게 해결된 사건의 의뢰인들은 인생의 그 순간만큼은 기쁘지 않았을까?’ 등등이었다. 내 인생을 열심히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보람되고, 가치있게 사는 인생일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변호사라는 직업은 의사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인생 어느 한 순간,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아프고 힘든 순간에 등장하여, 함께 고민하면서 원인을 살펴보고, 앞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지 변호사 특유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으로 판단해주어야 되는 입장이다.

이혼 사건을 수임하였을 때 일이다. 의뢰인 여자분은 결혼생활 동안 남편의 외도, 가정폭력을 겪으며 이혼을 결심하였는데, 바람핀 상대여자가 남편에게 보낸 하트가 그려진 휴대전화 문자를 본 순간, 술 취해 귀가한 남편으로부터 멍들도록 맞은 기억과 폭언들을 떠올리며 내내 괴로워하면서 사무실에 방문할 때마다 매번 울고 갔었다(필자의 기억으로는 결혼 생활 내내 그 사건의 남편은 유난히 각서를 많이 썼는데, ‘바람피지 않겠다. 술마시고 때리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쓸 때는 언제고, 그 이후에는 그런 약속을 하나도 안 지키고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 바람에 결국 이혼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마침내 법원에서 본소에 의한 이혼과 위자료 및 재산분할이 인정된 뒤 다시 만난 그 여자분의 얼굴은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닌, 편안하고 밝은 표정으로, 이제 남편과 지긋지긋한 악연이 끝나, 자신은 고향으로 내려가 집을 새로 짓고 식당도 차려 열심히 살아볼 생각이라면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는 걸 보자, 마음 한 구석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이처럼 각종 사건으로 인연이 된 의뢰인들에게 현재 직면한 소송에서 변호사로서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과 아울러, 소송에서 힘들었던 지난 날을 뒤로 하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는 인생에서 기쁜 나날을 더욱 많이 보낼 수 있게 살아갈 힘을 주는 역할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사무실 책상으로 돌아와 쌓인 기록더미를 보며, 여기에 얽힌 당사자들의 주장과 사연, 그리고 그 배경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꼼꼼히 살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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