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대리를 수행하다보면 삶의 희노애락을 간접적으로, 그리고 너무나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각 사건마다 숨겨진 사연은 있기 마련! 그 중에서도 가족간의 법정싸움은 가장 안타까운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님’이라는 글자에 피와 눈물로 얼룩진 점을 찍어 ‘남’이 되는 이혼사건도 물론 안타깝지만, 개인적으로 이혼보다는 망인의 재산을 둘러싼 가족간의 유산 상속 사건이 훨씬 안타깝다.

개업 이후 맡았던 첫 사건은 소유권이전등기말소였는데, 실질은 40년 전의 상속재산분할을 두고 여동생이 오빠를 상대로 소를 제기한 상속싸움이었다. 나는 피고였던 오빠분의 소송대리인으로 사건을 맡게 되었다.

여동생인 원고는 무병을 앓고 있어 가족들과 연락을 끊은 지 오래이고, 부모님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사건의 내막을 알아보니 보험을 하는 원고의 자녀들이 돈이 궁해지자 외삼촌인 피고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 피고는 한 가정의 장남으로 돌아가신 부모님뿐만 아니라 동생들에게도 최선을 다 했다고 했고, 이는 나머지 형제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피고는 형제들뿐만 아니라 그 형제들의 자녀들에게도 외삼촌으로써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했던 상황. 그런데 배은망덕한 조카들, 그것도 불혹이 훨씬 넘어 본인들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된 자들이, 조용히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힘 없는 외삼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피고에게 조카들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고 조정으로 끝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었다. 어떻게든 원만하게 해결해서 가족의 인연을 이어나가도록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고도 이미 마음이 돌아선 상황인지라 설득이 쉽지 않았다. 나 또한 답변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원고가 보내는 준비서면의 내용을 보고 있자니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어 괘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괘씸한 마음을 자양분으로 열심히 소송을 준비했고, 다행히 원고청구가 기각되면서 진실이 승리하게 되었다. 본안 소송은 끝났지만 원고를 상대로 소송비용확정판결을 청구한 상태라 외삼촌과 괘씸한 조카들과의 질긴 인연은 아직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법륜스님께서 “쓸데 없는 인연은 만들지도 말고, 그 인연에 집착하지도 마라. 정말 소중한 인연들만 이어가기에도 인생이 벅차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인생을 살다보면 우연히 인연을 맺어 가족이 되기도 하고, 또 그 인연이 끊어지면서 남이 되기도 한다. 가족, 친구, 지인 기타 등등 그 어떤 인연을 막론하고 인연을 끊는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고 당사자들에게도 평생 상처로 남는다.

그런데 그 쓸데없는 인연 중에 가족이 포함된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될수록 더욱 조심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를 넓혀두고 관망하면서,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신, ‘관망하는 즐거움’과 ‘기다림’을 가질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하게 하는데도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고, 특히 부모의 역할이 크다고 할 것이다. 세상 모든 부모는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자식이 애틋하다. 그런데 한국부모들의 자식사랑은 지나친 면이 많다. 거액의 상속재산을 둘러싼 분쟁도 물론 있지만, 대다수의 유산상속 사건에서 가족들이 서로를 상처 입히면서 다투는 금액은 결코 거액이 아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많지 않은 돈이라도 자식에게 물려줘서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여유를 찾기를 바라기 때문에 사단이 나는 것이다.

부모가 후대에 남겨야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위대한 정신’이어야 한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오는 지혜, 그 가문의 역사, 그리고 그들이 한평생 일궈온 소박하지만 담대한 인생을 물려주기에도 한평생이 짧다. 자녀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바란다면, 상속재산분할로 인하여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싸움을 하지 않도록, 지금 당장이라도 물질적인 무엇인가를 물려줘야 된다는 ‘착’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문득 내게 남겨진 ‘위대한 유산’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 소중한 저마다의 인연들, 영육간의 강건함 등등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위대한 유산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위대한 유산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7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병환으로 생사를 오가시면서도, 당신의 머리맡을 지키다 잠든 내게 팔베개를 해주시고 이마에 입맞춤을 하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그리고 오롯히 사랑해 주셨다. 할아버지의 사랑은 아낌없는 나무 같았고, 쉼이 없었으며, 그리고 결코 실망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할아버지의 삶처럼 ‘늘 깨어 사랑’하는 삶이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사랑’, 결코 실망하는 법이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랑’, 때로는 기다릴 수 있는 ‘사랑’. 그런 ‘사랑’으로 한평생을 살고, 그 ‘사랑’을 내 자식들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부모님,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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