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로 사망한 경우 사인을 파악하는 일이 우선이다. 왜 사망하였는지를 알아야 어떤 의료행위상 잘못이 있는지를 주장·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법 제683조 수임사무경과보고의무규정에 따라 수임인인 의사에게 사인의 입증책임이 있다고 보아야 하지만 아직 판례가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하여 명백하게 판시하지 않고 있다.

판례는 유족의 반대로 부검을 하지 못한 사건에 대하여 ‘의사인 피고가 부검으로 의료행위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었는데 부검을 거부하여 사인규명을 못하게 된 데에 대하여 원고들이 불이익을 져야 한다’고 한 바 있다.

사망의 결과나 현상 등으로 사인을 기재하여서는 아니됨에도 불구하고, 사인란에 ‘다장기부전증, 심장마비, 호흡부전, 연수마비, 패혈성 쇼크, 미만성 혈액응고장애’ 등을 기재한 사망진단서를 흔하게 볼 수 있다. 패혈성 쇼크라는 사망의 결과가 나타난 경우에는 그 원인이 된 충수염이나 자궁파열 등을 직접사인으로 써야 한다. 만약 사망의 결과만을 기재한 경우에는 변사체이므로 부검을 하여 사인을 밝혀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검을 하는 것은 유교문화와 매장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을 두번 죽인다는 생각으로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의학에서는 사망자 중 15% 가량을 변사체로 볼 정도로 사인이 불명인 경우가 많다. 연간 약 27만명이 사망하는 우리나라에서 3만건 이상이 사인불명임에도, 현실적으로 부검되는 사체는 6000~7000여구 정도로 적다. 나머지 사체 2만여건은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묻혀지는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변사체를 부검하면 적지 않은 사체가 범죄행위에 의하여 사망함에도 부검을 실시하지 않아 다수 범죄가 은닉되기 때문이다. 가수 신해철 사망사건에서 보듯이 의료사고시 부검을 통해 의료행위와 사인 사이의 인과관계가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의료기관이 오히려 먼저 부검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의료분쟁시 환자의 기저질환이나 기왕증을 입증하여 인과관계 단절, 여명단축, 책임제한을 주장하기 쉽기 때문이다. 유족이 반대하면 의료기관에서는 사인미상으로 사망진단서를 발급하여 자연스럽게 부검을 유도하기도 한다.

환자 측으로서는 어쨌든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주장을 하려면 최소한 추정되는 사인을 전제로 사건을 진행하여야 하는 입증부담이 있으므로 의료과실이 의심되면 적극적으로 부검을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체해부는 사법해부, 행정해부, 병리해부 등으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수사를 전제로 한 사법해부가 주를 이룬다. 유족이 부검을 거부하여도 수사기관은 변사자에 대한 압수수색검증영장을 받아 강제수사를 시행하고, 검시를 방해하는 유족에게는 형법 제163조 변사체검시방해죄로 처벌하고 있다. 변사신고방식은 법에 따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 유족이나 의료기관 누구든지 경찰서장에게 전화, 전송, 직접 방문신고 등 어떤 방법으로도 할 수 있다. 변사신고를 한 후에는 관할경찰서장으로부터 변사사실확인원을 발급받을 수 있다.

변사신고는 사인을 밝히는 단계이고, 부검으로 살인이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밝혀지면 그때 고소를 하는 것이 순리이지만, 실무상 경찰에서는 형사고소를 하지 않으면 변사신고를 받아주지 않아 간혹 시비가 된다. 변사신고접수가 늦어지면 3일장을 지내는 우리나라의 장례문화상 이를 대리하는 변호사가 항의를 받고, 시작부터 불신을 갖는 원인이 되므로 사전에 절차에 관하여 충분히 설명해주고, 고소장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또 다른 문제로 1차 의료기관에서 사고가 발생하여 대학병원으로 전원된 후 사망한 경우 1차 의료기관과 대학병원 관할 경찰서가 모두 관할이 되지만 일부 경찰서에서는 변사접수를 서로 미루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부검시 변호사에게 입회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는 적극적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실에 출장 가서 참관을 하는 것이 좋다. 당사자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고, 부검입회에 대하여 변호사 보수도 수령할 수 있음은 물론 부검 직후 부검의가 유족, 변호사, 담당경찰에게 1차적 부검소견을 설명해주어 사고경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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