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조선조 말. 장소와 배경은 충남 아산.

의정부 공찬을 지낸 윤득실이 사색당파의 정쟁을 피해 아산에 낙향한다. 윤득실은 선비로서 무식한 백성을 일깨우고 선한 일을 해 자녀들에게 본받게 하였다. 그러나 많지 않은 재산으로 선한 일을 하다보니 가세가 기울었고 깨끗한 선비로서 일생을 마친다. 윤득실이 죽자 자녀들은 생계유지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윤득실의 셋째 아들 윤취동은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선비의 후손답게 도리를 다하며 선하게 살기에 온 힘을 다한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어느 겨울 날, 칼날 추위에 자신의 몸조차 추스르기가 싫을 정도인 날이었다. 이날 윤취동은 이웃 둔포에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길가에 쓰러져 죽어가는 걸인. 누추한 옷에 기력이 쇠잔해 송장과 같은 몰골. 윤취동은 걸인을 발견하고 등에 업는다. 집에 와서 걸인을 따뜻한 방에 누이고 미음을 쑤어 먹이는 등 정성껏 보살핀다. 윤취동의 간호로 죽어가던 걸인은 얼굴에 화색이 돌아오고 건강도 회복된다.

걸인의 몸이 건강해 짐과 함께 어느덧 추운 겨울이 지나고 꽃피는 봄이 왔다. 건강을 회복한 걸인은 윤취동에게 감사의 말을 건넨다.

“이 사람은 본래 절에서 수도하는 사람입니다. 소승이 추운 겨울에 사경에 이르렀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저의 죽을 목숨을 살려 주셨을 뿐만 아니라 겨울 한철을 편안하게 지내게 해주셨습니다. 어르신께서 베풀어 주신 은덕에 제가 보답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소승이 그동안 풍수를 공부하였는데, 묘 자리나 하나 잡아드리고 가겠습니다.”

윤취동은 스님을 따라 동네 동구 밖으로 나섰다. 스님은 산골짝을 들어서더니 봉우리를 넘어 산자락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더니 한곳을 가리키며 말한다.

“월랑산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봉황이 찾아와서 둥지를 트는 비봉귀소의 혈이 있고, 남쪽에는 닭이 알을 품는 금계포란의 혈이 있으며, 북쪽에는 배가 떠나가는 행주의 혈이 있고, 서쪽에는 용이 날아 하늘에 오르는 비룡등천의 혈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비룡동천의 명당입니다. 이곳에 어르신의 선친 체백을 모시지요.”

윤취동은 깜짝 놀라며 스님에게 반문한다. “이 곳은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덕수 이씨의 사패지지(나라에서 하사하여 준 땅)가 아닌가요? 바로 이산 너머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묘소가 있지 않습니까.”

이에 스님은 응대한다.

“그 묘소도 당초에는 저기 보이는 금성산에 모셨던 것을 이장한 것이요. 땅에는 임자가 따로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모두 전생의 인연으로 이어집니다. 어르신의 집안에서 몇 대를 두고 덕을 쌓았습니다. 어찌 하늘이 무심하겠습니까. 일단 몰래 평장으로 어르신 아버님의 체백을 모십시다.”

스님의 권고에 따라 윤취동은 야밤을 틈타 아버지 윤득실의 체백을 스님과 함께 그곳에 이장하였다.

그 후로 후손들은 군부대신을 지낸 윤웅렬 씨를 비롯하여 그의 아들 윤치호 씨는 학부대신을 지냈다. 서울대 총장이었던 윤일선 씨, 장관 윤치영 씨 등도 모두 이 집안 출신이다. 윤보선 대통령이 바로 윤득실의 고손자이다. 이와 같은 해평 윤씨 집안의 부귀가 윤득실의 묘와 무관하지 않다.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윤득실의 묘. 좌향(坐向)과 득수득파(得水得波)를 보니 계좌정향정파(癸坐丁向丁波). 좌수(左水)가 도우(倒右)하여 백보전란(百步轉欄)하여 거(去)하니 발부발귀(發富發貴)한다.

간방(艮方) 주산의 모양을 보니 용이 고개를 들고 하늘로 오르는 모습이다. 이름하여 비룡산(飛龍山). 왼쪽의 청룡은 구름 속에 감추듯 힘차게 감싸 안고 있다.

임해방(壬亥方)·오방(午方) 등에 국사봉·광덕산 등의 명산이 드리우고 있다. 병방(丙方)을 보니 일자문성(一字文星)의 안산 너머 온양시내 뒤에 촛불과 같은 문필봉(文筆峰)이 5개가 보인다. 조산인 설화산(雪華山), 일명 오봉산(五峰山)이다.

윤씨가문에 많은 인재가 나오는 이유이다. 백호쪽을 보니 서남쪽 곤신방(坤申方)으로는 일자문성의 안산 뒤로 일월(日月인 무명산이 놓여있다. 서쪽에 지는 해로 윤보선 대통령이 잠시 집권한 이유이다. 또한 외백호로 정미방(丁未方)에 봉수산이 솟아있다.

오랜 덕행으로 인하여 얻은 명당. 마땅히 누려야 할 후손들이 차지하여 복을 받고 있구나. 그리하여 선인(先人)이 말씀하시기를 ‘명당을 얻으려고 하기에 앞서 선업(善業)을 쌓고 사람을 구하라’고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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