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부자들은 선진국의 부자들에 비해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들 한다. 최근 롯데그룹 창업자 가족들 사이의 경영권 다툼은 볼썽사납다. 큰 규모의 경제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갔던 대기업 총수가 국민경제 활성화라는, 국민이 그다지 공감하기 어려운 명목으로 사면되어 석방되었다.

과연 사면 및 석방된 대기업 총수가 자신의 이익에 앞서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 경제를 위해서 보답할까? 거기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은 결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우리나라 부자들이 선진국의 부자들에 비해서 존경을 받지 못하고, 대기업의 총수·창업자 및 그 가족들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우리 국가·사회 공동체에 기여하는 정도가 미약하거나 가식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부자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이나 많은 재산 등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를 실천하는 것에 소홀하기 때문에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의 징표로서 우리나라 부자들은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서 매우 인색하다. 현 집권층도 부자 증세에 대해서는 강한 방어선을 치고 선거 공약을 어겨가면서까지 물러서지 않는다. 세금은 국가·사회 공동체의 유지·발전을 위한 비용의 거의 유일한 재원이다. 국민들을 위한 폭넓은 복지를 지향하는 현대 국가는 경제적·사회복지적 안정기반을 적극적으로 구축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하기 때문에 공동체 유지·발전 비용을 많이 필요로 하고, 그 재원 마련을 위해 세금을 많이 거두어야 한다.

그런데 그 세금은 대부분 부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털어 봐도 먼지만 나는 서민의 호주머니를 더듬는 것은, 경제적·사회복지적 안정기반의 구축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이를 해치므로, 아니한 것만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부자는 이 사회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하여야 하고, 세금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어떤 부자들은 내가 잘나서 내가 돈 잘 벌어 내가 쓰는데 국가가 웬 간섭이고, 서민들은 웬 불만이 그리도 많으냐고 불평한다. 그들은 벌어들이는 돈이나 가진 재산에 비해 실제로는 쥐꼬리만큼 적은 세금만 내거나 탈세를 일삼으면서, 내가 낸 세금 덕분에 잘 살고 있는 서민들이 왜 우리들을 미워하냐고 투덜거린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어떤 부자라도 국가·사회 공동체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는 어떤 돈도 벌 수 없고 어떤 부(富)도 쌓을 수 없다. 경제의 구조를 면밀히 살펴보면, 부자가 부자로 행세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돈이나 부동산과 같은 재산 그 자체가 아니라, 알고 보면 돈이나 부동산이 부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국가·사회 공동체 시스템이다. 무인도에 홀로 남아 영원히 외부와 아무런 교류가 없게 된다면 돈이나 부동산은 아무런 경제적 가치를 가질 수가 없다.

우리 국가·사회 공동체는 국민의 생명·신체와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외적으로는 국방·외교 등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고, 내적으로는 치안·복지 등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 그 시스템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만약 그와 같은 시스템이 무너지게 된다면 부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서민들은 가진 것이 적으므로 잃을 것도 적을 것이다. 부자들이 만약 그런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쌓아온 부를 지키려고 한다면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만 한다.

외부의 침탈로부터 부를 지켜내기 위해 담을 높게 쌓아야 하고 많은 경비원을 두어야 하며 출입문을 단단히 잠가야만 할 것이다. 그런 개인적 차원의 방어시스템을 국가·사회 공동체 시스템 및 사회안전망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중복된 비용을 줄임으로써 부자들 개개인에게 할당 부과되는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잃을 것이 적은 서민들에 비해 국가·사회 공동체 시스템 및 사회안전망의 혜택을 훨씬 더 많이 받는 부자들이, 국가·사회 공동체 시스템과 사회안전망 구축·유지·발전을 위한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자들은 그 비용에 충당하기 위한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게 되면 국가·사회 공동체 시스템과 사회안전망은 튼튼하게 유지·발전될 것이고, 그 혜택은 부자들에게 가장 많이 돌아갈 것이므로, 부자들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세금을 많이 내는 등으로 이 사회에 충분한 기여를 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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